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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한국적 미에 대한 오해

오병욱

일제 강점기에 조선과 그 예술에 크나큰 애정과 관심을 가졌던 류종열(柳宗悅, 야나기 무네요시)이라는 일본인 미술사학자가 있었다. 그는 1922년 [조선과 오키나와의 공예]라는 책을 썼고, 후일 이를 둘로 나누어 [조선과 그 예술, 1954]을 다시 발간했다. 이 소책자는 서구적 학문방법을 적용하여 쓴 최초의 한국미술 연구라는 점에서 중요하게 여겨졌고, 근대적 한국미술사의 모태가 되었다. 그러나 류종열이 그렇게도 흠모한다고 하던 한국미술품 연구와 방향설정은 어떤 계기에서 이루어진 것일까 하는 의문들이 꼬리를 무는 것은 그의 한국미술에 대한 평가가 매우 마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한국미술품의 미덕은 소박 검소 단순한데 있고,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잘 화합하며, 꾸미지 않은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다고 극진하게 칭송하고 있다.

3.1운동이 일어난 다음해, 무자비한 살상과 체포와 고문의 상처가 채 가시기 전인 1920년에 조선을 처음 방문하였던 그가 목격했던 조선의 비참한 상황들에 대한 충격이 조선의 미술에 애상, 소박, 유약함 같은 성격을 부여하는데 큰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그는 슬프고 단순소박한 예술품들이 조선인들의 전란의 역사와 척박한 자연환경을 바탕으로한 심성과 삶에서 나왔기 때문에 진실하다고 말한다. 그의 애상미, 소박미에 대한 사랑고백과 식민통치에 대한 박애주의적 죄책감이 절절히 묻어나서인지 그의 조선의 미에 대한 규정은 큰 저항없이 수용되고, 자기 복제하는데 성공했다. 우리가 아직도 단순 소박한 것이 우리의 미감이라고 믿고 있고, 그것이 무슨 큰 가치나 되는 것처럼 추구하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그의 미술사적 최면술은 정말 큰 효과를 발휘했다고 하겠다. 그러나 이 류종열의 미술사관은 19세기 후반 유행했던 뗀느의 (H. Taine, 1828-1893) 미술사관을 조선에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미술을 인종, 환경, 시대라는 항목을 기초 조사항목으로 삼고, 이것들에 의해 미술작품의 특성을 규명하려했던 그의 이론은 탁월한 서술과 용이성, 표면적 과학성으로 큰 영향력을 발휘하였으나, 인종의 심리학적 소여는 파악할 수 없는 것이고, 지리와 역사의 제시가 정신적 풍토를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라는 한계를 넘지 못하고 유럽에서는 이미 지리멸렬해졌다.

예술작품의 평가를 통해서 그 민족의 민족성과 재능과 가능성을 규정해 주는 이 대단한 발상을 따라 류종열식으로 다시 말하자면 일본의 미술품은 매우 섬세하고 화려하면서도 엄격하여 제국적이고, 소박하고, 단순하고, 애상적이기까지 한 조선의 미술은 피식민지에 걸맞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미술에만 국한될 듯한 이 최면효과는 불행하게도 일상생활에서도 힘을 발휘한다. 대충대충, 한 듯 만 듯, 적당히, 되는대로, 두리뭉실하게, 아니면 말고 등등 수도 없는 매끄럽지 못한 마무리를 서술하는 말이 사회적으로 상용되고, 이 말의 가치를 증명이라도 하듯 일을 대충 처리하는 것을 쉽게 용납하고 용서하는 것이다. 예술작품의 가치와 삶의 가치가 이렇게 밀접한 것이지만, 대개의 경우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우리의 예술과 사회에 대한 올바른 규정이 절실하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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