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37)학예사자격증 제도 이대로는 안된다

김영호

문화세기를 맞아 우리나라 박물관과 미술관의 질적 수준을 향상시킨다는 취지에서 제정된 학예사자격증제도가 제 구실을 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그 내용은 이 제도가 원래 취지인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의 진흥에 기여하지 못하고, 박물관과 미술관에 근무하는 기존 학예사들의 신분규정과, 고고학과 미술사 등 기득권을 지닌 학문분야의 우대와 세력구축에 제한적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지적은 학예사 자격증 제도가 변화하는 박물관과 미술관계의 현실을 선도하기는 커녕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의 발전을 제한하는 규제법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현재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이 규정한 학예사 자격제도의 주요 내용을 보면 학예사의 등급을 정학예사와 준학예사로 구분하고 있고, 자격증을 교부받기 위해서는 (준학예사의 경우) 자격시험에 합격하거나 (정학예사의 경우) 석사이상의 학위를 취득하여 증명서를 포함한 소정의 서류를 <학예사운영위원회>에 제출하고 심의를 통과해야 한다. 이 모든 경우에 있어 경력인정 대상기관에서 특정기간 동안의 실무 또는 실습경력을 쌓고 증명서를 첨부하도록 되어있다. 이러한 법령이 제정되면서 장차 학예사가 되기를 희망하는 사람들은 나름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재정적 부담을 감수하며 박물관과 미술관 관련분야의 학업과 정해진 몇 년이란 기간동안의 실습에 열중해 왔다.
그러나 최근 <학예사운영위원회>의 심의과정을 보면 자격증 취득을 위한 규제가 비상식적인 상태를 지나 응시자들을 농락하는 사태로 번지고 있다. 운영위원회가 정한 심의기준이 지나치게 임의적일 뿐만 아니라 유예기간이 없이 심의과정에 적용하여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는 것이다.




일례를 말하자면 2004년 학예사 자격증 심의를 위해 주무부서인 국립중앙박물관이 게시판에 올린 공시문을 보면 금번부터 실습경력이 대학원 재학 중에 이루어진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항목이 전례 없을 뿐 아니라 난데없이 추가되어 있다. 이 항목은 지난 2-3년 동안 대학원 과정에서 어렵게 무급 인턴과정을 마치고 심의를 받을 자격을 구비한 졸업자들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되었고, 이에 문제를 제기하고 서류제출을 강행한 응시자들은 모두 심의에서 떨어졌다. (이와 같이 심의항목이 어느날 갑자기 추가되어 공시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미 전해의 심의에서는 대학원에 석사학위를 취득한 자중 ‘학술지에 연구논문게제실적이 있는 자’라는 내용이 사전통보 없이 심사기준으로 제시되어 신청인들의 피해를 입은 사례가 있었다.) 그런데 이 같은 결정이 법에 규정된 사항이 아니라 운영위원회의 임의적 해석에 따른 것이라는 사실은 다음의 조항을 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현행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 시행령>의 ‘별표1’ <학예사 등급별 자격요건(제3조관련)의 ‘비고 2’를 보면 자격증 심의의 기준이 되는 “실무경력은 재직경력, 실습경력 및 실무연수과정 이수경력 등을 포함한다.”라고 명시해 교육기관에서 실시하는 실습과 연수과정을 인정할 수 있는 길을 터 놓았다.

대학이나 대학원 재학당시에 실무경력을 인정하지 않을 경우 발생하는 문제의 심각성은 그것이 대학의 교육과 연구활동을 제한하는 효과를 발생시킴으로서 장기적으로 박물관과 미술관 문화의 진흥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데 있다. 어느 누가 면허증과 같은 자격증을 얻기 위해 2-3년간의 대학원과 2-3년간의 무급인턴 기간을 기꺼이 투자할 수 있을까? 또한 과연 이 졸업 후의 고급인력을 대상으로 한 실습을 대학교육기관과 협조 없이 독자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박물관과 미술관이 국내에 몇이나 될까? 그리고 엄격한 과정을 거쳐 자격증을 취득한 후에 몇 퍼센트가 직업을 가지게 될까? 이러한 사례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전례를 찾아볼 수 없으며 교육기관에서의 정규과정을 마치고 시험에 합격한 후부터 정부로부터 급여가 주어지는 프랑스와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현재 국내대학에서는 박물관 및 미술관 분야의 전문인력 양성과 재교육을 목표로 다수의 학과들이 대학원을 중심으로 개설 운영되고 있다. 이른바 문화의 21세기라는 현실인식과 박물관 미술관 진흥이라는 정부의 정책에 부응하여 관련학과를 설치하고 전시기획, 소장품관리, 박물관교육, 보존과학, 박물관경영, 박물관학 등의 과목과, 박물관 및 미술관 현장에서의 실무교육을 중심으로 교육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박물관과 미술관이라는 학과목의 특성상 실무와 실습 위주의 교육이 요구되며 따라서 재학 중에 인턴과정은 필수적 과목으로 채택하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대학이 이렇다면 정부는 내실있는 교육의 장려와 박물관 문화의 진흥이라는 차원에서 이를 인정하고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시각을 달리하면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자격증 제도는 말 그대로 취업을 위한 보증서가 아니라 박물관이나 미술관영역에서 근무할 자격이 갖추어졌음을 인정하는 증서이다. 이러한 자격증을 취득하는데만 대학원과정을 포함해 4-5년이 소요된다면 누가 이 분야의 학업과 직업에 관심을 가질 수 있을까. 현재 박물관과 미술관이 전 국토에 건립이 되고 있으며 몇 년 뒤에는 이 공간을 채울 인력과 컨텐츠가 요구되는 시대로 접어들 것이다. 문화관광부는 이러한 현실을 인식하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규제를 풀어야 하고 보다 근본적으로 현재 시행되고 있는 자격증제도의 개정을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수렴해야 할 때다. 또한 박물관과 미술관을 함께 아우르는 학예사자격증제도의 실무담담 부서가 2004년 1월 1일자로 문화관광부에서 국립중앙박물관 유물관리부로 이전된 것도 타당한 것인지 재검토할 일이다.

<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