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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간접체험의 거부를 두려움으로 만들어내는 시대에

강선학

이젠 직접적인 세계 지각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이러한 지각 대신에 매개된 지각이 전면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 시대의 전면에 부상하고 있는 작품 활동을 떠올려보면 설명이 필요 없는 일이다. 직접 그리거나 만들기보다 간접적 재료를 이용해서 결합하거나 이미 기존하는 시각이미지들을 결합해서 새로운 이미지로 변용하는 것, 이런 것들이 여전히 수공적 창작 행위 사이에서 돋보이고 평가의 초점이 되고 있다. 새로 등장하는 많은 작가들은 이런 대열에서 뒤질세라 어법의 필연성보다 기법의 용이함으로 선호하고 있다. 그것들은 속도와 물량과 새로운 기술매개를 이용하고 있어 규모면에서나 장치적 구조에 있어 전시대의 창작 행위와 확연히 구분된다. 시대를 거슬러 내려오면서 예술에서의 새로운 정의가 왜 필요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변화는 일상의 삶에서조차 자연의 직접적 체험보다 중간매개에 의한 간접적 체험이 우리의 체험 전부를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환경이 변한 탓에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이런 현상은 예술이라는 고급문화에 대한 경계를 흔들고 있다.

산업혁명 이후 대중매체의 발달로 인해 이제 예술과 대중문화의 관계는 분리될 수 있는 상호 절대적인 관계로만 파악할 수는 없다. 대중문화가 전지구적으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지금, 우리는 무엇이 대중문화, 즉 하위문화이고 무엇이 순수예술, 즉 고급문화라고 명확히 구분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 이미지의 변형, 고전예술작품의 변형, 대상 없는 영상이미지이던 빛의 묘사가 순수한 빛의 형상화로, 관객이자 동시에 제작자이며 이미지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지 그 자체만 존재하는 오늘의 작품들은 이런 현상을 증폭시키고 있다. 가상이 현실보다 더 강하게 현실화되어 있다. 그래서 미술관의 전시는 그에 대응하여 삶과 세계에 대한 성찰로서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고 본다. 현대의 고대 사원이니 역사의 무덤이니 하지만 그 사원과 무덤에서 우리의 삶을 보아내지 않으면 어디에서도 그 역할을 해 줄 곳이 없다. 미술관은 오늘의 우리 미술에서 사회의식의 부재를 확인하고 그에 대항해야 한다. 대항함으로 삶의 직접성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




보수와 혁신, 고전과 전위가 함께 가는 곳이 있다면 교육기관이나 문화기관의 경우가 그런데 해당될 것이다. 역사의 무게를 뛰어넘으려면 역사를 타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언어를 습득하고 난 후 그 언어로 그 언어 너머의 것을 이야기할 수 있듯이 기존하는 미술의 흐름을 타고 넘는 전위에 대한 끊임없는 욕구와 필연성을 생각하면서도 이 시대 과잉된 시각이미지에 대해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하는 것이 숙제이다. 미술관이 기본적으로 기존 시각이미지의 수용과 현재의 상황과 미래의 진행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그런 이해가 기획전이나 소장품구입과 맞물릴 때 생각보다 훨씬 심각한 판단을 필요로 한다. 왜냐하면 미술세계의 제도적 복합체인 화랑, 미술학교, 정기간행물, 미술관, 비평체계, 큐레이터 제도 등을 감안한다면 미술관은 이 시대 시각이미지에 대한 반성과 성찰, 그리고 방향을 잡아주어야 하고, 그것이 우리 시각이미지를 생산하는데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은연중 정치가 되고 전략이 된다. 미술뿐 아니라 문화전반에 대한 책무, 이념과 철학을 만들어야 하는 책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면 미술관의 전시 성격은 분명하다. 소비에 대한, 시각이미지의 포식에 대한 거부를 두려움으로 만들어내는 상업전략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후기 산업사회에서 반드시 인간을 상품의 노예로 만드는 길 밖에 없는가 하는데 답해야 한다. 오늘날 미술관의 전시가 시각이미지에 감춰진 것들에 대한, 부재하는 현전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그것은 가치 창출행위가 아니다.

그런 면에서 미술관의 기획은 철저하게 반상업적 성격을 띠어야 하고, 상업과 기치에 기생하는 작가나 작품과 결별해야 한다. 왜냐하면 상업적 성공이 곧 예술적 성공으로 포장되는 세상이고 그것이 포장이 아니라 진실이 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면 적어도 미술관 기획에서만은 그런 것이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마치 상업적 성공을 위해서 미술관 전시를 거쳐가야 하는 투의 행사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으며,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대응적 작품이 어떤 것인지를 보여줄 수 있는 작품이어야 한다. 잘 차려놓은 상을 그대로 가져와서 전시의 질을 담보 받으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적어도 치열하게 세계에 대해 고뇌하는 작가들을 눈여겨보아 할 것이며, 그 의미들을 해석하는 전시이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넘치는 시각이미지 사회에서 온당한 시각이미지의 창조라는 것이 무엇이며, 예술적 시각이미지라는 것이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시각이미지가 실재를 넘어서는 시대에 조작된 이미지를 삶으로, 세계로 가상체험 하면서 살 수 밖에 없다면 진정 우리가 해야 할 일, 미술관이 해야 할 일은 분명할 것이다. 고전적 의미든 현대적 의미든 미술관이 가야 할 길은 당대적 삶에 대한 준열한 태도를 읽을 수 있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현대사회의 속도를, 물량적 사고를 견제하는 비판세력으로서 미술관의 역할이 강화되어야 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고 역할이다. 그러므로 미술관은 가벼운 세상에 무거운 의미전략이어야 한다. 예술이 소일거리가 되게 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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