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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미술관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

하계훈

ART ISSUE(15)
- 새로운 국립현대미술관을 위해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임기를 몇 개월 남겨놓고 석연치 않은 이유로 갑작스럽게 물러났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금 소격동 분관건립 공사를 한창 진행하고 있고, 미술관의 운영 면에서도 민영화 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이라 업무의 연속성을 고려하더라도 관장을 교체할 시기가 아니라는 것은 누가 보아도 자명하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필자는 다시 한 번 우리나라 문화예술행정의 관료주의적 후진성에 답답함을 느낀다. 사퇴 이유가 무엇이고 물러난 관장 자신이 얼마나 완강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업무의 흐름을 볼 때 이렇게 갑작스럽게 사표를 수리할 일은 아니었다. 이렇게 중대한 일들이 진행되는 동안 관장이 부재하다는 사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지는 소관 행정부서의 무감각한 문화의식이 다시 한 번 드러났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국립현대미술관은 당분간 기획운영단장의 대행체제로 운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그렇지만 과연 기획운영단장이 관장을 대신하여 기무사 분관 개관업무와 그 밖의 중요한 일들을 처리해나갈 수 있을까? 그리고 왜 관장의 업무 대행이 학예연구실장이 아니라 기획운영단장이어야 할까? 하긴 현재의 국립현대미술관 조직에는 학예연구실장조차 없다. 그것은 곧 국립현대미술관의 운영은 학예연구적인 차원보다는 일반운영적인 차원이 우선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이 소격동 분관 건립을 발표하면서 표방하였던 목표를 잊었던가? 전통과 현대를 아우르고, 동서양을 아우르는 세계적인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의지가 허구적인 관념과 구호에 불과하였는가. 사실 세계적인 미술관을 만들겠다는 목표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 철학이 부족했고 시간이 모자랐다. 문화체육관광부 공무원들이 ‘세계적’이라는 말의 의미를 어떻게 해석하고 그런 목표를 채택하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려면 관장의 거취문제를 이렇게 처리해서는 안된다. 외국의 유수의 (세계적인) 미술관들은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관장의 교체를 몇 개월 정도 미리 결정하여 전임자와 후임자가 각각 관장직을 유연하고 연속성 있게 넘겨주고 받도록 한다. 이것이 세계적인 미술관에서 이루어지는 관장의 교체 방식이다.<세계적인 미술관은 시스템이 바로 세워져야 한다
세계적인 미술관이 되려면 소장품도 세계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소장품을 다루는 학예인력과 그 주변의 인력들도 세계적이어야 한다. 그들이 미술관을 운영하는 시스템도 외국의 어느 누가 보아도 이해할 수 있도록 합리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미술관 내외부의 관련된 사람들의 문화의식도 세계적이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제까지 어떠하였던가? 국립현대미술관은 관장이 미술관을 대표하여 모든 일에 앞장서서 이끌어가야 함에도 정작 그 관장은 직원 전체에 대한 인사권도 없으며 예산에 관해서도 자율적으로 계획을 세워 시행할 수도 없었다.



기획운영단장 이하의 조직의 상위직 대부분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직원으로서 본부에서 산하기관으로 파견 나온 사람들처럼 생각하고, 관장은 2-3년짜리 계약직처럼 생각하니, 이런 상황에서 관장이 소신 있게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니까 이런 관장이 그만둔다고 한들 무슨 큰 문제가 있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미술관에서 중요시되어야 할 사람들은 관장과 학예직원들, 그리고 그 주변 사람들이지만 국립현대미술관이 이제까지 조직을 이끌어 온 방식은 ‘진성’ 공무원들 중심으로, 그리고 그들이 맡을 수 없는 업무를 위해 수혈된 계약직 학예직원들의 보조적 역할을 통해 미술관이 운영되어왔다고 해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의 관장이 자율적으로 운신하지 못하는 중요 원인 가운데 하나는 재정적 자립의 문제일 것이다. 하지만 최근 전세계적으로 경제적 침체의 여파가 미술관을 비켜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에도 얼마 전 미국의 LA카운티미술관에서 학예직원을 유지한 채 비학예부서의 인원들을 전격적으로 감축한 사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미술관에서 중요한 인원은 행정직 공무원이 아니라 학예직 연구원들인 것이다. 행정직은 연구직을 보조하고 연구직원들은 전문성을 심화시키기 위해 노력하여야 한다. 이러한 인식이 자리 잡은 뒤에라야 우리는 세계적인 미술관을 꿈꿀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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