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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사진적 지형에 대한 착각들

진동선

“요즘 사진이 난리인데요. 갑자기 왜 저렇게 사진전이 많이 열리죠? 무슨 까닭인가요, 평론가는 그걸 어떻게 보는지 말해주시겠어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건만 화들짝 놀라는 이런 류의 전화와 만나는 것은 일상이 되어 버렸다. 사진의 폭발적인 활황 앞에서, 기자들은 기자들대로, 큐레이터들은 큐레이터대로, 심지어는 작가들까지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같은 말을 물어 온다. 그럴 때마다 현기증을 느낀다. 기억상실이 아니라면, 기억상실증에 걸리지 않고서는 어찌 매번, 수년 동안 똑같은 질문을 반복할 수 있을까? 한 해를 거르지 않는 반복된 질문 앞에서 그만 짜증이 나고 극도의 현기증을 느끼는 것이다.

“다른 이유가 있나요. 전시 숫자는 그대론데 아무래도 대관료가 싼 비수기 전시장을 찾다보니 몇몇 사진전이 겹쳐서 그런게 아닐까요? 그리고 비수기 땐 뉴스거리가 될만한 미술 전시들이 없기도 하구요...”
“다른 이유가 있나요. 사진이 현대미술로 편입된지 오래되었기 때문에 이제 우리나라 미술 화랑들도 사진전을 열다보니 전시들이 겹쳐 그렇게 된 거 아닐까요? 화랑들이 사진전을 개최하는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구요...”
“다른 이유가 있나요. 해외에서 사진 판매가 난리라니 우리 화랑들도 어쩌면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사진 판매가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전시를 하다보니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겹친 게 아닐까요? 물론 이전에도 유명 작가들의 전시가 있긴 했지만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홍보는 하지 않았지요...”

반복된 질문이라 늘 시큰둥하게 대답해서인지 기억을 못하고 또 해가 바뀌면 “왜 사진이 난리죠?”라고 호들갑스럽게 물어온다. 해외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국내에서는 90년대 중반부터, 그리고 국내 화랑가에서는 길게는 7-8년 전, 짧게는 3-4년 전부터 사진전이 일반화된 현상인데도 어찌된 영문인지 늘 뜻밖이라는 듯 괴이쩍게 바라본다. 특별히 사진전이 늘어난 것도 아니고, 주위의 눈길을 끌만한 강력한 이슈나 어떤 조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기껏해야 앞서 말했듯이 비수기 때 사진전이 몰리다보니 그런 것이고, 여기에 비수기라서 뉴스거리를 사진이 제공했기에 그런 것뿐이며, 최근 몇 년의 경우는 미술화랑이 사진을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바라보고 이에 몇 몇 화랑들이 우연찮게 사진전을 동시에 개최했기 때문이며, 작금의 경우는, 사진을 팔고자 하는 사진 컬렉션의 마인드를 가진 몇몇 화랑들이 대가들의 사진들을 우연찮게 같은 시기에 전시를 했을 뿐이다. 그것도 기껏 서너 군데 화랑일 뿐이다.




미술과 사진의 어설픈 동거

그런데도, 양적 증가도 없고, 질적 증가도 없고, 예술구조의 진보적 변화도 없는 상태에서 매번 똑같은 질문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내용물이 그대로이고, 기껏 상품의 포장만 바뀌었을 뿐인데 늘, 그리고 뜬금없이 해마다 사진을 돌풍으로 바라보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이런 과민반응과 오해는 어쩌면 우리 미술계에 어떤 고질적인 알레르기로부터 오지 않나 생각한다. 그리고 그 알레르기란 다름 아닌 미술과 사진의 어설픈 동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사진을 현대미술의 주요 형식으로 인정하면서도 심층에는 아직도 사진과 미술을 구분하고자 하는 어떤 무의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술과 사진이 한 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정신과 몸이 따로 노는, 그 어설픈 동거가 매번 사진을 돌풍으로, 때 아닌 붐으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이런 생각이 틀리지 않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쉽게 확인한다. 한 미술전공자가 말한다. “사진과 미술이 구별되나요? 이미 사진이 현대미술의 영역에 있는 거 아닌가요?” 이 말에 “그렇지요. 사진과 미술은 이제 경계가 없지요. 사진이 현대미술에 편입된지 오래구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사진에 대해 어느 정도 깊이 있는 공부를 하나요?” 이런 물음에 미술전공자의 말끝을 흐려지고 마지못해 한마디가 건네진다. “기초사진실기 한 과목 정도 배운 거 같아요.” 이 같은 대답은 이 땅의 미술 전공자들에게서 대동소이하게 들을 수 있다. 사진이 현대미술 속에 있다는 것을 알지만 대학에서 제대로, 깊이 있게 배우지 않기 때문이다. 유사한 사례는 또 있다. 한 큐레이터 전공자가 말한다. “사진전은 이미 미술전시의 하나가 되지 않았나요? 미술관에서 사진전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구요.” 이 말에 “그렇지요. 미술공간에서 사진전이 열리는 것은 당연하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사진전에 대한 전문적인 큐레이팅 혹은 사진 마켓팅 공부를 얼마나 깊이 있게 공부하나요?” 역시 아무런 대답을 못하고 말끝을 흐린다. 말 안해도 안다. 현대미술로서 사진을 말하면서도 정작 큐레이터로서 사진에 대한 깊이 있는, 전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알기 때문이다. 미술과 사진의 어설픈 동거는 우리 미술계의 취약점이다. 때문에 행여 동시다발적으로 사진전이 열리게 되면 “무슨 일인가”하고 두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는 것이다.
<공은 미술 쪽으로

사진은 더 이상 붐이 아니다. 이미 일반화된, 그야말로 미술로서 보여지고, 미술작품으로서 컬렉션 될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제는 사진을 돌풍으로 보는 착각, 때 아닌 붐으로 바라보는 착각 속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진과 미술 따로 일 경우는 오직 각자의 역사와 특유의 물질성뿐이다. 미술은 더 이상 사진에 이중의 눈이나 잣대를 가져서는 안 된다. 사진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강화해야 하고, 이론교육과 실기교육은 물론이고 전시기획과 예술행정에 있어서도 전문성을 강화시켜야 한다. 사진전을 자연스럽게 미술 전시로 받아들이는 인식은 이러한 교육으로부터, 제도로부터 온다. 그런 점에서 미술 대학의 커리큘럼과 사진이 실종된 국립현대미술관의 모습은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사진의 문제는 사진계의 문제가 아니다. 미술계의 문제이고, 미술계가 다루어야 할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그에 걸 맞는 전문적인 교육과 학습 과정이 미술계에 제도적으로, 구조적으로 필요한 시점이다. 사진계가 사진을 떠맡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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