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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관객에 대한 예의

신혜영

얼마 전 국제적인 대규모 기획전을 관람하였다. 전시를 보고난 후 몰려오는 것은 공허한 피로감이었다. ‘피로함’의 이유가 긴 시간의 관람으로 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비현실적인 작품 관람 조건 때문이었다. 아울러 전시 개최를 위해 힘을 모은 기획자와 작가 외 많은 사람들의 물적, 정신적 에너지가 비효율적으로 소모된다는 안타까움 때문이었다.
내외국인 작가 90명이 참여한 전시작의 60% 이상은 영상작품이었다. 작품의 성격상 관람을 위한 일정한 시간을 요하는데 짧게는 5분에서 길게는 50여 분이 훌쩍 넘는 작품 상영시간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많은 해외 작가의 작품은 작가가 처한 문화와 역사적 배경이 작품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볼 수 있었다.
간혹 눈에 띄는 설명판과 짤막한 리플렛의 참조 뿐으로는 50분 아니, 5분 동안이라도 작품을 성심껏 감상하도록 만들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벤치가 놓여있기는 하였지만 느긋하게 작품과 작품 설명을 꼼꼼히 살펴보기에는 기다리고 있는 작품의 수가 너무 많아서였다. 실제로 관람객 대다수가 미로 같은 부스를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겨우 눈도장을 찍는 데만도 힘겨워하는 것이 역력해 보였다.
한 번이라도 정확하게 작품을 감상하고 설명서를 챙겨보려면 전시장 근방에 숙소를 정하여 얼추 2박 3일 정도는 머물러야 할 듯 하였다. 하지만 입장권은 한 번 전시장 밖으로 나오면 다시 구입해 들어가야 하니 여러모로 넌센스인 듯 했다. 작품을 뷔페요리를 시식하듯 골라보도록 의도한 것이 아니라면 제대로 작품을 감상한다는 것은 현실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였다(작품을 골라볼 수 있을 만큼의 사전 인지도가 높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전시 주체라고 할 수 있는 작가와 기획자 모두는 관람자가 전시회를 통해 깊은 이해와 공감을 얻기를 소망하고 있다. 현대 미술의 다양해진 형식과 내용을 통해 그 ‘공감대’ 자체를 주제로 하여 기획되는 전시가 있을 정도이다. 그리하여 ‘소통’이란 단어가 전시기획 의도에 단골 메뉴로 등장하곤 한다.
하지만, 실제 진행되고 있는 많은 전시회들은 정작 관람객의 입장을 배려하는 부분에 있어서는 창의적인 시도가 부족한 듯 하다. 전시들은 미술대학을 갓 졸업한 작가들의 전시에서 회고전까지, 전통적인 수묵화 작품에서 첨단 멀티미디어 재료의 작품까지 다양하다. 감성적인 코드로 다가서야하는 작품이 있는가하면 지성을 동원해야만 공감에 이르는 작품이 있다. 여러 가지 요소가 혼합된 작품들도 다수이다.
하지만 작품들은 주먹구구식으로 제시되고 전시를 보고자하는 관객들은 현재 펼쳐진 작품 앞에서 어떤 방식으로 작품에 접근해야할지 난감해 할 수 밖에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작품은 작품 자체로서 관람객에게 호소해야 한다’는 명제는 현실에 대입해 보면 매우 낭만적이고 더 나아가 무책임하게 들리기조차 한다. 또한, ‘소수일지라도 느낄 수 있는 사람만 느끼는 것으로 만족 한다’라는 말도 자칫 작가와 기획자를 독선으로 이끄는 신념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전시장에 간단한 설명문을 붙이는 것에서부터, 조명을 어둠을 밝히는 전구 이상으로 사용하는 연출력을 발휘하는 것에서부터, 작품의 수를 결정하고 작품간의 거리를 안배하며, 작품 특성에 맞는 관람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 등. 전시 주체는 관람객이 작품을 이해하고 느낄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와 여건을 제시해야 할 것이다. 이때 최대한의 정보는 양의 최대치가 아니라 꼭 필요한 질적인 차원에서 정보의 최대치를 말한다.
보여주고픈 것들을 무조건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정해진 조건 속에서 적절한 선택과 정성어린 안내가 절실히 필요하다 하겠다. 이러한 이후에라야 미술에 대한 관람객의 애정과 예의를 요구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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