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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성덕대왕신종을 위하여

이광표

국보 29호 성덕대왕신종(일명 에밀레종, 771년 제작, 국립경주박물관 소장)의 종소리를 또다시 들을 수 없게 되었다. 타종 예정일(10월3일)을 얼마 앞둔 9월 중순 국립경주박물관이 타종을 중단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2001년 가을에 타종을 재개한 지 3년만의 일이다. 경주박물관은 “2001년부터 2003년까지 타종하면서 표면의 균열 및 진동 음향 등에 관한 자료를 확보해놓았고, 타종 과정에서 큰 문제점이 발견된 것은 아니지만 계속 타종할 경우 금속의 피로도가 증가할 수 있어 올해부터 타종 행사를 중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기 771년 제작된 성덕대왕신종은 13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까닭에 점점 약해지고 있다. 그러니 타종에 신중을 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무리하게 계속 타종할 경우 성덕대왕신종에 심각한 피해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강원도 평창 오대산의 국보 36호 상원사종 역시 오랜 타종으로 균열이 생겨 타종을 중단한 상태다.
타종 중단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 199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주박물관은 종의 안전을 위해 1992년 12월31일 제야의 타종을 끝으로 1993년부터 타종을 중단했다.
하지만 그 후 다시 종을 쳐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면서 찬반 논란이 그치지 않았다. “종은 치기 위해 만든 것이다. 종은 소리가 날 때 존재 의미가 있다. 정기적으로 타종하면 오히려 생명이 오래갈 수 있다.”는 타종 찬성론. “종은 종소리만 중요한 것이 아니다. 외관상의 미학적인 가치도 중요하다. 타종은 분명 종의 균열을 가져온다. 지금 괜찮다고 해서 종을 친다는 건 있을 수 없다. 금이 가고 나서야 타종을 중단하겠다는 말인가.”라고 반박하는 타종 반대론.
이런 논란 속에서 경주박물관은 1996년부터 1999년까지 성덕대왕신종 안전 문제 등을 과학적으로 점검하기 위해 종합학술조사를 벌였다. 그 결과, 주조 당시 형성된 기포 문제와 약간의 부식 현상을 제외하곤 별다른 결함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즉, 타종이 불가능할 정도는 아니었다.
경주박물관은 그래서 문화재위원회의 승인을 얻어 2001년부터 타종을 재개했다. 종에 가해지는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외부 기온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10월초에 타종하기로 한 것이다. 단, 성덕대왕신종에 조금이라도 이상이 생기면 즉각 타종을 중단한다는 단서조항이 붙었다.
어쨌든 2001년 10월9일, 2002년 10월3일, 2003년 10월3일 타종이 이뤄졌다. 그렇게 3년동안 진행되어온 타종이 올들어 또다시 중단된 것이다.
타종 재개 당시의 단서조항처럼 조금이라도 이상 징후가 있을 때 타종을 중단하는 것은 옳은 일이다. 그러나 1993년 이래 흘러온 과정을 보면 좀 실망스럽다. 그 일지를 보자.






■ 1993년=국립경주박물관, 타종 중단.
■ 1996년 9월=국립경주박물관, 종합학술조사 일환으로 시험 타종(비공개).
■ 1999년 6월=국립경주박물관, 문화재위원회에 타종 재개 요청.
■ 1999년11월=문화재위원회, 2000년부터 타종 재개하기로 결정.
매년 10월3일에 타종하되 문제가 생길 경우엔 즉각 타종을 중단하기로.
■ 2000년 9월=10월3일로 예정된 타종을 취소.
■ 2001년 9월=타종을 재개하기로 결정. 2001년 타종 일자는 10월9일로 결정.
■ 2001년10월=타종 중단 9년만에 다시 타종.
■ 2002년10월=타종.
■ 2003년10월=타종.
■ 2004년 9월=타종을 다시 중단하기로 결정.

무언가 자주 바뀌어왔음을 알 수 있다. 성덕대왕신종 타종이 워낙 민감하고 중요한 사안이다보니 종의 보존을 위해 결정을 번복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러나 아쉬움이 남는다. 타종 예정일(10월3일)을 불과 며칠밖에 남겨놓지 않은 시점(9월 중순)에 그렇게 서둘러 타종 중단을 결정해야 했을까. 올해 9월 들어서 종의 상황이 갑자기 악화된 것도 아닐텐데, 좀더 미리 결정해 국민에게 널리 알릴 수는 없었을까. 성덕대왕신종 종소리를 듣기 위해 꿈에 부풀어 있던 많은 사람들의 실망감을 경주박물관 관계자는 얼마나 생각해봤을까.
그리고 올해만 중단하고 내년엔 다시 종을 칠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타종을 영영 중단한다는 것인지, 이에 관해서도 국민에게 설명했어야 옳다.


<성덕대왕신종 전시실의 필요

성덕대왕신종의 보존을 생각한다면 사실 타종 재개는 쉬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보존을 위해 타종을 중단하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국민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정책 결정 과정을 지적하고 싶은 것이다.
아울러 이런 생각을 해본다. 이번 기회에 한국 최고의 문화재인 성덕대왕신종의 전시실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경주박물관 야외 종각에 성덕대왕신종이 걸려있지만 종에 관한 설명은 매우 부실하다. 박물관 실내에도 관련 설명이나 전시물은 없다. 경주박물관에 들러 성덕대왕신종만 보고 발길을 돌려야 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다.
성덕대왕신종 전시실을 만들자. 성덕대왕신종의 아름다움, 신비로운 종소리의 비밀에 관한 과학적인 정보, 종의 역사와 종에 얽힌 전설, 각종 뒷얘기 등을 보여주자. 또한 종소리도 들어보고 그 소리를 녹음해갈 수 있도록 하자. 그러면 타종 중단의 아쉬움이 줄어들지 않을까. 그건 국민에 대한 배려이자 성덕대왕신종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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