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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궁궐문화 재현의 가능성

조은정

2004년 국립중앙박물관은 기나긴 경복궁 시대에 막을 내렸다. 내년 가을에는 용산의 시민공원에서 새로운 박물관을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이제껏 국립중앙박물관 노릇을 해 온 이 건물은 덕수궁에서 옮겨져 온 궁중유물을 맞이하여 궁중역사박물관으로 새롭게 탄생될 것이다. 바라건대 여기에서는 궁중유물만 전시하는 데 그치지 말고 궁중생활상을 재현하거나 궁중의례를 복원하는 역할도 맡게 되었으면 좋겠다. 더욱이 경복궁 주변의 현대적 휴식, 문화 공간과 궁중역사박물관이 함께 연계되면 그 역사적이고 문화적인 성격은 더욱 강화되어 명실공히 문화 인프라가 될 것이다. 과거의 궁중문화에는 품격이 있었기에 궁궐이라는 공간에는 역사적인 시간의 무게와 당대 최고였다는 문화의 아우라가 배어 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은 궁중문화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있을까? 일제침략자들에 의하여 짓밟히고 망가진 궁궐의 복원에 나선지 어언 20여 년이 되었건만, 아직도 그 원형을 회복하지는 못하고 있다. 복원 사업을 통하여 어설프게 재창조된 궁궐이라는 공간에는 더욱 어설픈 솜씨로 재현된 의례 행사가 진행되고 있고,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는 진짜 궁전 건물 안에는 어설프게 만든 복제품이 재현전시라는 이름 아래 버젓이 진열되어 있다. 복제한 밀랍인형의 생뚱맞은 모습에서 만인의 통치자 왕의 위용과 존엄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다. 오히려 근정전 내부의 장대한 공간 속에서 왜소화된 가짜 인간이 보일 뿐이다. 이것이 오늘날 ‘살아있는 궁궐 만들기’에 나선 우리의 서글픈 자화상은 아닐까?
<궁궐 정문에서 벌어지는 수문장교대의식은 경복궁의 광화문과 흥례문 사이에서도, 덕수궁 대한문 앞에서도, 창덕궁 돈화문 앞에서도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고 있지만, 그들이 지켜야 할 왕궁은 정작 제대로 복원되어 있지 않고 조선왕조 통치의 역사적 무게를 전해 줄 공간은 왕궁 내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 수문장은 그저 교대할 뿐 지킬 것이 없는 존재인 것이다. 여기서 전해져 오는 어쩔 수 없는 허전함이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해마다 5월 어느 일요일 한낮에 치러지는 종묘제례 의식에서도 진정성이 결여되어 있는 행사의 가식을 느낀다. 왕위를 계승한 자가 선친의 위패를 종묘 신실에 모시고 나서야 비로서 자기의 시대가 도래하였음을 대사면 발표와 과거시험으로 만백성에게 알릴 수 있었다거나, 정통성을 결여한 왕위 계승자가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생부의 신주를 종묘에 봉안했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지금의 종묘 제례의식을 보면서 머릿속에 떠올리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제사 음식을 흠향할 조상신도 한밤중에야 자손이 치려준 제상에 내려와 머물 수 있거늘, 해마다 의례히 한낮에 진행되는 행사가 제사이기나 한 것인가.
사정이 이런대도 궁궐에 궁전이 복원되자 궁궐 마당을 메울 행사와 궁전 내부를 채울 전시가 활용이라는 이름으로 추구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진정으로 과거의 문화를 복원하거나 재현할 수 있는가? 아니 그렇게 하고자 하고 있기는 한가? 혹시 관리도 못하면서 활용까지 조급하게 서두르고 있는 건 아닌가?


궁궐은 공원이 아니다

지난 11월 둘째 주에 발생한 ‘종묘 박석 파손 사건’은 앞의 걱정이 기우만은 아님을 여실히 보여 주고 말았다. 종묘 내에 관리자용 사무실을 신축하다가 왕과 세자 그리고 향과 축문을 든 제관이 걸었던 길(神路) 위에 덮인 박석 수십 장을 그만 박살내고 만 것이다. 물론 돌은 깨어지기 마련이고 그동안 숱하게 이런 일이 있어 와서 과거의 역사가 그 박석에는 전혀 남아 있지 않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문화재를 대하는 태도에 있다. 현재의 목적과 활용에 치중한 나머지 후손에게 물려줄 소중한 문화유산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문화재를 관리하는 당국에 물어볼 일이다. 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니 더욱 사람들이 가까이할 수 있도록 배려하고, 참여하는 공간도 만들고, 사무실도 잘 지어서 관리를 잘 해야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생각했다면 무엇 때문에 종묘와 제례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는지 다시 한번 새겨볼 일이다.




종묘가 갖는 권위는 관공서의 허가까지 받은 합법적 행사인 종묘공원에서의 <아방궁 프로젝트>를 무참하게 만들었다. 그 권위는 전통, 문화재에 기댄 민족의식의 일부로 비추어졌다. 하지만 노숙자가 삼삼오오 벤치에 모여 졸고, 한 끼를 굶은 노인들이 모여 무료한 시간을 달래는 도시 한복판의 정지한 공간으로 계속 존재하는 한, 종묘공원은 가부장제에 도전하는 여성들을 우습게 몰아냈던 권위의 허위의식을 형상화한 것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문화재란 그런 것이다. 생활 속에 살아 있어만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주변으로부터 섬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그 공간에 현대의 생활인이 들어가 체험하는 일은 신나고 즐거운 일이고 또 공간을 살아있게 하는 것이지만 훼손과 본래의 성격을 상실하는 것 또한 명약관화하다. 궁궐이나 종묘는 문화유산이지 공원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의도적인 근대 공원의 설치에 따라 변화된 궁궐의 위상을 우리 스스로 교정해놓고서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수는 없다.
여자들이 치맛자락 날리며 종묘 앞을 왔다갔다하는 것보다 더 불경한 것은 오로지 한 시대에 한 사람만이 앉을 수 있던 자리인 옥좌에 일개 인형이 올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정지되고 무력한 인형이 혹시 한국문화의 정체적이고 수동적인 면모를 형상화한 이미지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국립중앙박물관의 경복궁에서의 이전은 단순한 기관의 이전이 아니라 궁궐 문화의 재현이 가능한 시점에 다다랐음을 의미한다. 일제에 의해 왜곡되고 초라하게 폄하된 우리 궁궐의 어제를 잊고, 찬란한 과거를 재현하는 일은 박석 한 장도 소중히 생각하는 의식에서 비롯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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