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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두개의 망령, 하나의 희극-휘청거리는 미술문화정책

최열

누구보다도 참여정부의 출범을 축하하고 지지했던 나로서는 지난해부터 보여 온 몇 가지 정책에 극심한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고 있다. 출범하면서 내놓은 지난 해 미술문화정책이 그랬었다. 우선 두 가지, 공공미술센터 설치와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 전환이 기억난다. 그 내용을 떠나 이 두 가지를 내놓으면서 참여정부는 이른바 ‘개혁’이란 수식을 달았다. 하지만 꼴이 우스워지고 말았다. 기껏 연간 5백억 시장 규모에 지나지 않는 공공미술시장을 감안하지 않고 중앙집권 센터를 만들겠다는 구상은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일 수밖에 없었던 게다. 또 참여정부의 행정개혁 로드맵상의 과제라는 책임운영기관 전환도 빛 좋은 개살구일 뿐이었다. 기관장에게 예산, 인사권을 준다고 하지만 껍질뿐임은 쉽게 알 수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해가 바뀌자 놀라운 미술정책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도저히 입을 다물 수 없을 지경이다. 첫째는 민간단체가 주관하는 공모전에 대통령상을 부활하겠다는 것이고, 둘째는 사립미술관, 박물관 기획전 출품작품을 팔아 수수료를 취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셋째는 끝난줄 알았던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 전환을 다시 실행하겠다는 것이다.




미술정책 난맥

차례대로 따져 보기로 하자. 먼저, 미술행사에서 대통령상 제도는 전근대 유산이라는 점에서 그 부활은 매우 심각한 사안이다. 독재정권 아니 이민족이 지배하던 식민지시대의 유산을 세기가 바뀐 지금, 그것도 민주주의 정부가 뿌리를 내려가는 때인 지금 부활하는 것은 반문화적, 반역사적인 시대착오이기 때문이다. 도대체 그 행사가 국민국가를 대표하는 상징성이 있는지, 국민 세금을 투자할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논의는 별 의미가 없다. 대안은 지금까지 안 해 오던 대로 안 하는 것이다. 국가가 나설 이유가 하등 없는 일이다.
다음, 총리실 산하 규제개혁단이 발표한 사립미술관, 박물관 작품 영업 허용정책은 ‘비영리기구’라는 국제박물관협회 윤리강령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사립미술관 운영이 어렵다면 설립자가 따로 영리사업을 펼쳐 이윤을 미술관에 기부하면 그만인 일을 두고 설립자, 학예사, 기타 직원들에게 화상이 되라는 정책은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 미술관, 박물관을 상업화랑과 구분 지어 놓은 데는 그 사회적, 역사적 근거와 기준이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그것은 일종의 정체성과 관련된 문제이다. 상업화랑은 영리를 추구하는 미술시장으로서, 공공미술관은 예술, 사회, 역사 가치를 추구하는 공공기관으로서 정체성을 갖추고 있는데 이것의 경계를 흩뜨리는 일은 세계 미술관, 박물관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웃음거리일 것이다.
셋째,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 전환을 다시 실행하겠다는 행정자치부의 발표를 듣고 나는 낡은 망령의 부활을 떠올려야 했다. 보도에 따르면 그 목적은 ‘행정기관의 활력을 높이고 경쟁에 따른 효율을 얻기 위해 예산운영상 자율성을 확대’하는 것이다. 이미 지난 해 지루한 공방을 거듭한 문제이지만 행정자치부가 이 정책에 집착하는 이유가 오히려 궁금하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라면 지난 해 대안으로 제시한 바 독립법인기관 전환 정책을 내놓았어야 했다. 독립법인기관의 핵심은 그야말로 활력과 경쟁, 효율을 위한 완전한 자율기관이다. 이 때 국가는 예산, 인력 지원을 아낌없이 하되 그 평가는 국가가 아닌 제3의 기관, 또는 해외평가기관에 맡겨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굳이 어정쩡한 책임운영기관 전환 정책을 실행하겠다는 데는 무슨 다른 뜻이 있는 게 아닌가. 궁금하다.
참으로 궁금하다. 왜 이렇게 엉뚱하고 우스운 정책들이 서로 다른 부서에서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지 말이다. 그것도 전문가 집단에서 반대 또는 찬반이 날카롭게 대립하는 정책들이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하다. 더욱이 대통령상 부활이나 사립미술관 영업허용 정책은 내가 아는 한 공론화 시킨 적이 없다. 밀어붙이면 그만이라고 생각해서 그랬을까, 아니면 전문가 따위 의견 묻는 게 귀찮아서였을까. 어느 것 하나 참여정부답지 않다.
물론 참여정부는 문예진흥원을 민간기구로 전환하기로 하였고, 악법으로 지탄받았던 미술품양도소득세법안을 철폐하였으며, 또 사립미술관과 대안공간에 대한 실질 지원, 미술은행 설립, 기업에서 작품을 구입하면 업무용 자산으로 인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기로 결정하여 미술계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이런 점은 높이 평가받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앞서 거론한 바 세 가지 정책은 개혁이나 혁신은 물론 민주사회의 공공 가치를 지키는 문화와 너무나도 거리가 먼 것들이다. 아니, 심지어 낡은 보수의 망령 또는 지나친 희극의 주인공과도 같아 두렵기조차 하다. 과연 그 주인공, 정책입안과 발표에 이르기까지 어떤 사람과 조직이 움직였는지 무척 궁금하다. 공명심 넘치는 사람의 치기 어린 실수이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그래야 반역사, 반개혁과도 같은 비상을 정상으로 되돌리기 쉽지 않겠는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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