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63)난무하는 미술 학회들 그 원인은

장준석

우리 미술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데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것이다. 우리의 전통 미술과는 전혀 다른 양식을 지니는 서양의 미술을 기술적 기교적인 측면에서 방법적으로 참조하거나 혹은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것 등이 그것이다. 특히 이론적인 접근을 통해서는 우리 미술사나 예술학적 혹은 미학적인 측면에서 많은 유익함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근대 이후 서양의 미술 이론이 우리의 미술에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되었고, 오늘날 우리의 미술 이론은 미술 실기 못지않게 많은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이런 변화의 단적인 한 예로는 미술 이론과 관련된 여러 학회의 활동을 들 수 있다. 현재 우리 미술계에서 활동하는 학회는 어림잡아 20여 남짓이 되는 것 같다. 그러나 미술과 관련된 학회의 내실과 미래에 대한 향방은 그리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아 씁쓸하기까지 하다.
<미술학회의 베타성

현재 여러 미술 학회에서는 기득권을 가진 학자들을 중심으로 자신들의 학문의 방향이나 성향과 다른 경우 공공연히 또는 은근히 텃세를 부리는 등 배타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예를 들자면 자신이 속한 학회와 같은 부류의 전공 학회가 더 있어도 하나의 학회에만 쏠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가령 A학회에서 활동하는 학자는 대부분 그 학회에만 논문을 투고하며 활동하는 경우를 들 수 있다. 또 B학회에서 활동하는 회원은 그 학회만을 중심으로 활동을 한다. B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사람이 A학회에 논문을 싣는다는 것은 그다지 쉽지 않다. 학회에 논문을 투고했을 때, 그 학회의 편집위원들이 자신들의 실력이나 기득권에 위협을 느끼는 경우는 비록 좋은 논문이라 하여도 통과시키지 않는 경우가 많은 듯하다. 이는 논문의 질적인 수준보다는 학회의 기득권을 가진 자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사람을 선별하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또한 학회에서 기득권을 잡고 있거나 소위 원로로 대접받는 이들의 무책임한 학문적 자기 과시욕 등도 현 미술학회의 바람직한 방향에 역행하는 경우가 있다. 필자도 이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5년 전쯤으로 기억되는데 필자가 어느 학회에서 발표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필자가 논문을 발표하기 위하여 단상에 오른 다음 곧이어 주제 발표를 끝낸 직후였다. 발표자에게 질의하고 거기에 응답하는 순서가 예정돼 있었는데 사회자의 진행이 있기도 전에 어떤 분이 갑자기 큰 소리로 질문을 하기 시작하였다. 필자는 상당히 당황할 수밖에 없었고 많은 사람들도 놀라는 눈치였다. 놀랍게도 질의자는 필자의 전공 분야에서 오랜 동안 활동을 하고 있는, 관련 전공자이면 누구나 다 알만한 모 대학의 교수였다. 그분은 필자가 발표 대상으로 삼은 화가의 대표적인 작품 중에서 특정한 어느 한 작품이 소개되지 않았다고 주장하였다. 그뿐 아니라 이 작가의 대표적인 또 다른 작품에 대한 설명도 곁들이면서 이런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고 부정적인 어투로 비난하였다. 필자가 발표한 중국의 고대 작가는 당시의 시대를 대표할만한 화가였기에 진작이든 위작이든 어느 정도 작품이 있었던 터라 필자는 혹시 일차적인 자료 수집에서 빠졌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고, 또 다른 작품에 대한 설명에 관해서는, 학계에 그런 설이 있을 수 있다고도 생각되었다. 필자는 그 날의 학회 발표를 위해 여러 날을 수고하며 준비했건만 완전히 실패로 끝나게 되었고,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관련 전공자들에게 실력이 없는 형편없는 발표자로 인식되었을 것 같았다.
<학회가 끝나고 필자는 그 교수가 지적한 그 작품을 찾기 위해 여러 날 동안을 노력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여러 도록들을 아무리 찾아도 그 원로 교수가 지적한 작품은 찾을 수 없었다. 워낙 많은 다양한 작가들의 작품들이 있는 도록들이라 필자는 혹시 빠질 수도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런데 한 달 두 달이 가도 그 작품은 발견할 수 없었다. 중국의 그 어떤 책을 뒤져도 그 교수가 지적한 그 작품에 대한 존재 여부는 알 수가 없었다. 몇 달 뒤에 우연한 기회에 중국의 대표적 원로 학자인 유검화(兪劍華)선생의 책을 보다가 그 작품은 이미 몇 백 년 전에 없어졌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 책에서 ‘이 그림은 현재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확인하게 되었다. 이후 필자는 그 교수한테 학회 때 언급한 도록의 확인을 요청했으나, 그 교수에게서 들을 수 있었던 대답은 ‘그 도판은 대학원생들도 다 가지고 있는 도판이다.’라는 무책임한 말 한마디뿐이었다.
비록 필자의 주변에서 일어난 예이기는 하지만 그밖에도 공공연하게 자행되는 학회에서의 여러 가지 횡포들은 적지 않은 것 같다. 객관적인 실력보다는 자기 제자인지 아닌지 등등 자신과의 인맥을 따져 논문을 심사하고 게재하려는 풍토에서 누가 안심하고 논문을 낼 것인가. 그러다 보니 학문을 하는 이들 사이에는 서로 피해 의식이 자리하게 되고 자신들의 논문을 안전하게 게재할 수 있는, 자신들이 주축이 된 학회를 만들어 보려는 경향들이 생기고 있다. 이러한 점이 원인이 되어서 최근에 학회는 질적인 면보다는 양적인 면에서 그 수가 점점 더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여러 학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고, 또 앞으로 곧 만들어질 학회도 몇 개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는 그렇지 않아도 척박한 한국의 미술 이론 계를 더욱 메마르게 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