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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지원기금 운용과 관료, 미술인의 반성을 촉구함.

최열

몇 해 전부터인가 문화예술계에 ‘눈먼돈이 굴러다닌다’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듣기 시작해서 지금까지도 듣고 있다. 궁금했지만 돈하고 워낙 담쌓고 살아온 처지에 무슨 인연이 있을까 싶어 흘러듣곤 했다. 욕심 나지만 돈이 눈이 멀었다고 나 같은 바보에게 올 것 같지 않아서였건, 욕심조차 없어서였건 아무튼 나와는 인연이 생기지 않았다. 그래도 딱 한 번 남하는 짓을 해보긴 했다.
몇 해 전 문예진흥원에 <<한국근대미술의 역사>> 조사연구 기금을 신청했던 게다. 국민 세금을 지원 받는 일이니 무척 고민했으되 그래도 워낙 방대한 일이므로 제출했다. 하지만 보기 좋게 탈락했다. 그 뒤로 국민 세금의 무거운 가치를 헤아려 감히 접근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건 내 선택에 불과 할뿐. 세월이 흐를 수록 국민세금을 진흥기금으로 쓰는 액수가 엄청나게 늘어만 갔고 가난한 예술가들에게 군침을 흘리게 만들었던 모양이다. 눈 없는 먹이로 둔갑했으니 먹기 쉬운 상대로 보였을까.
문예진흥기금이 엄청나게 늘어났다. 문화관광부에서 전용할 수 있는 기금도 늘어났다. 서울이니 경기도, 인천에서도 문화재단이 들어서면서 기금이 부쩍 늘어났다. 학술진흥재단이니 무슨 재단이니 장난이 아니다. 어디 그 뿐인가, 용역사업도 간단치가 않다. 눈먼 돈이 쑥쑥 자라난 것이다. 그 눈먼 돈은 국민들이 낸 세금이다. 생각해 보자. 세금은 어떤 명분으로도 개인의 성취를 위해 쓸 수 있는 재화가 아니다. 한마디로 공공 재화인 것이다. 이런 공공 재화를 운영하는 조직은 경건하기 그지없는 몸과 마음을 갖추어야 한다. 더욱이 복권 기금은 일반 세금과 달리 서민들의 호주머니에서 꺼낸 피땀어린 돈이니 이런 돈을 사용할 때 마음가짐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내가 알기로 의관정제하고 목욕재계한 연후에 기금을 운용한단 이야긴 들어본 적이 없다. 눈먼돈이 굴러다니는데 너는 뭐하고 있느냐, 나는 대체 뭘 했을까, 탄식 소리만 천지를 진동하고 있다. 온갖 구설수가, 잡음 따위들만 가득하다. 못 준다고 결정했는데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면 어찌된 일인지 통장에 입금이 된다. 항목을 바꿨건 어쨌건 놀라운 일이다. 떠드는 떠들거나, 목청을 높이거나, 울어대거나, 서로 친한 이들은 훨씬 더 받는다. 이런저런 사례들이 비일비재하다.
<그 모든 중심에 문화관광부가 자리잡고 있다. 문화예술에 아무런 정책전망도 지식도 없는 장관이 자리를 꿰차고 있고, 타성에 젖었거나 사명감에 불타거나 아무튼 오랜 세월, 군사독재정권시절부터 정책집행을 수행하던 관료들과 어디 출신 정책보좌관, 자문위원 따위 인물들이 즐비하다. 산하 각종 기관 또한 만만치 않다. 여기에 줄대고 있는 숱한 사냥꾼들은 또 어떠한가. 누군가는 무슨 ‘혁신’이란 수식어를 달고 행세하고, 누군가는 ‘개혁’이라며 위세를 부린다. 지적하자면 끝이 없으니 몇 가지 가상 사례를 들어보자. 독재권력 시절부터 정책을 생산, 운용해 오던 인물이 참여정부의 혁신정책을 주물럭거린다. 정권이 바뀌니 느닷없이 자문위원으로 들어와 기존 관료를 밟고 정책을 쥐락펴락 해댄다. 또 어떤 기관에서는 미술전문가라고 하면서 지원대상과 심의위원 명단을 움켜쥔 채 수십 억 세금을 제 돈처럼 운용한다.
또 하나의 중심이 있다. 바로 미술인들 자신이다. 첫째, 줄대기에 여념 없는 미술인들을 말하는 것이다. 학연을 따라, 지연을 따라, 인연을 따라, 과거 경력을 따라 혹시라도 가까운 인물이 없는지 두리번대며 이른바 로비를 펼치는 것이다. 둘째, 즐비한 사냥꾼들을 말하는 것이다. 그 눈먼돈을 사냥하기 위해 여기저기 덫을 깔고, 활을 쏘다가 그도 안되면 아예 그물을 펼쳐본다. 좌우를 가리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런 현상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관, 기관장, 담당관, 자문위원 등 따위가 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세금을 쥐락펴락 하도록 허용하는 현재의 현상을 가능케 하는 제도, 조직, 사람은 대체 어디서 연유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내 생각으로는 미술인, 미술동네의 무관심으로부터 비롯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감시하고, 지적하고, 비판해야 할 미술인, 미술동네가 국민세금을 눈먼 사냥감으로 여기며 손을 내미는 한, 이런 상황은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문화관광부와 미술동네가 두 개의 중심을 형성하고서 국민세금을 다투고 있는 한, 바뀌기는커녕 병세가 더욱 악화되어 그야말로 미술계는 황량한 벌판으로 초토화 될 것이다. 문예진흥원이 위원회로 바뀐다고 한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저 으르릉 거리는 사냥꾼들이 안팎으로 버티고 있는데.
그렇게 생각하면 근본 혁신은 멀고 먼 이상이다. 여기서 정신개조를 부르짖는다고 누가 귀기울이겠는가. 문화관광부와 정책관련 산하기관, 각종 위원회를 개조하고, 사람을 재교육한다고 달라질 수 있을 것인가. 나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감시하고, 지적하며, 비판하는 구실이 어느 때보다도 절실하다. 하지만 누가 할 것인가. 스스로 눈먼 사냥감을 찾아 헤매고 있으니 말이다. 나에게 그런 집단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없다고 말하겠다. 그래서 답은 하나다. 관료사회와 미술집단을 동시에 감시, 지적, 비판하는 힘을 누군가가 어디선가 길러나갈 수밖에 없다. 관료사회, 미술집단이 청백리(淸白吏)의 깨끗함, 탐매(探梅)의 맑음 쪽으로 흐를 수 있도록 항상 지적하고, 제안하는 재야산림(在野山林)의 서릿발같은 정신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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