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68)예술학에의 초대, 유감과 새 과제

김복영

예술인, 특히 미술인들에게 예술학이란 너무도 생소한 이름일 것이다. 그들에게 예술학이라고 말하면, 곧바로, 미술비평 내지 예술론을 떠올리거나 미술사를 생각할 것이다. 이러한 오해는 예술학사(史)의 허약성에 기인한 것이어서 당연한 것이기도 하지만, 이 때문에 예술학을 제도권 학문으로 발전시키고자 할 때에는, 숱한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독일어의 예술학명인 「쿤스트비센샤프트」는 독일어권 미술사가들이 몸담고 있는 대표적인 학문의 이름이다. 그것도 20세기 초 중엽 이후 미술사의 ‘체계적 접근’을 염두에 두는 ‘미술사학’의 또다른 이름이기도 하다. 그들이 미술사라는 이름을 고수하거나 미술사학이라고 하면 되었을 것을, 굳이 예술학이라는 이름을 덤으로 붙여, 정작 독립 예술학을 궁구하려는 사람들을 애태우게 하는 것은 야속하기도 하지만, 어쨋던 미술사=예술학이라는 등식이 식자들 간에 오르내리는 데 이르고 보면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미학을 업으로 하는 쪽 또한 아전인수격이다. 미(감성)를 다룬다면서도 자신이 곧 예술을 연구하고, 예술학자라고 자부하는 일을 범한 지도 20세기 전 역사를 헤아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이래서 예술은 결국 미와 같거나 미술사로 귀결된다는 미신이 팽배해 있는 현실이고 보면 참으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그 까닭의 원인(遠因)은 확실하다. 예술과 관련된 이들 학문들이 대학의 제도권 학문으로서의 지위를 가져보지 못했다는 것보다는 이 때문에 비판의식과 분별력이 제대로 발휘되고 꽃피울 여유가 없었다는 데 있다. 우리나라의 예술학 교육만 해도 그렇다. 처음부터 예술학의 이러한 사정을 알고 신설한 것도 아니고 보면, 어느새 예술학이 미술사와 미학으로 오해되거나 기껏해야 미술비평활동을 위한 수습단계처럼 이해되는 것쯤은 불보듯 하여, 결과적으로는 학과와 학문의 정체성이 무엇인지는 뒷전으로 밀려나 버린다. 또 종종은 알량한 헤게모니 다툼이라는 궁핍한 푸닥거리를 치러야 한다.
<나는, 여기서, 자신이 예술학을 하고 예술학자라고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제안하고 싶다. 그것은, 막스 데쏘아가 20세기 초에 제안한 것과 똑같이, 예술이 창작되는 과정이나 창작된 결과의 구조를 잠시라도 조준해 보라고 말이다. 이렇게 하지 못하거나, 아니할 바에야, 그의 지적 대로, 예술감상론(미학)을 하거나 사(史)를 해야 할 것이다. 어디서 시작해도 상관은 없다. 감상론에서 시작하건, 사에서 시작하건 자유라는 말이다. 그러나 문제는, 정작 예술의 속내와 속살에 이르지 못하고, 미가 어떻고 사가 어떻고 하면, 그것은 물을 보고 물 주변을 맴돌기만 하면서 뛰어들지 않는 것과 같다. 이를 가리기 위해서라면, 글을 읽을 줄 아는 독자 세명만 데려다 판정을 시키면 일은 끝난다. 누가 물에 안들어 갔는지, 그래서 사와 미의 주변을 맴돌고 있었는지를 판정케 하면 된다.
<예술학 기대와 과제

이를 실시하지 못하는 것 또한 우리의 특수 사정이요. 이것이야 말로 유감이다. 어쨌던 이런저런 유감을 접어 두고, 제자들과 후학들의 미래를 걱정해서 <한국 예술학회>를 지난 2월19일에 창립했고, 오는 5월 27일에 창립 학술대회를 갖는다.
우리의 과제는 데쏘아가 예술학을 미학과 미술사로부터 업무분리를 내세우면서 기관지를 발간했던 일백년 전의 시절로 되돌아 가고자 한다. 미우나 고우나, 지금껏 더불어 살아온 이웃들과의 협력을 무시하지는 않겠지만, 그들과 뒤섞여 예술학의 본질을 왜곡하는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점을 확실히 하면서, 한국에서의 문화예술의 창조, 특히 창작 절차와 구조, 동질성과 차이들을 추적해 낼 것이다. 이 일은 일찍이 고유섭이, 최근에는 조요한이 바랐던 궁극적 과제이기도 하다. 이 과제는 한국인의 창조적 심성ㆍ특징ㆍ구조를 이 시대의 새 과제로 천착하는 일이다. 그들을 미술사가나 미학자로서 보다는, ‘한국예술학’의 지형도를 작성할 때, 맨 첫 머리에 모실 수 있고, 그들의 약점을 뛰어넘을 수 있는 여백이 또 무엇인지를 궁구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이 과제가 열매를 거두기 위해서는, 예술기표들의 첨단적 기술방법이 요구된다. 금년 초에 있었던 ‘루트2 해프닝’같은 일이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으려면 더욱 그렇다. 석굴암을 두고, 우리 민족의 예술 마인드가 루트2냐 아니냐 하는 사실적 규범의 문제를 풀어내기 위해서는, 우리 미술의 표본이 되는 시료기표의 엄격한 수리적 기술ㆍ분석ㆍ해석의 전문성을 확보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것은 사나 미의 문제로는 결코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쯤은 페흐너와 데쏘아의 충고로 끝내고 그 이상의 선에서 해결해야 한다.
전문적인 기술ㆍ분석ㆍ해석이라는 삼각구조의 연구모형이 한국예술학의 성공을 위해 필수적인 요건이라는 것은, 비단 학회장인 필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그 동안 쌓아올린 이 분야의 업적을 토대로, 젊은 인력과 노하우를 갖춘 연구진이 심혈을 쏟아 줄 것을 기대한다.
우리 미술인들 또한 사와 미로는 해결되지 않는, 그래서 예술학이 담당해야 할 영역이 또 있다는 것을 절실히 이해해 주었으면 한다. 제발 빌기를, 자신들이 해야 할 부분에 충실하면서, 새 인문과학으로서의 한국예술학이 꽃피고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너그러운 마음으로 지켜보아 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홍익대, 서울대대학원, 숭실대 대학원 박사 저서<현대예술학>, <현대미술연구>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