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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문광부 장관에게, 국립근대미술관 창설을 위하여

최열

정동채 장관님.

한 번도 뵌 적은 없지만 저는 언론을 통해 조금은 알고 있습니다. 분주하신 여러 가지 일에 땀흘리실 줄 알고 있지만 제가 이렇게 공개 편지를 쓰는 이유는 오직 하나, 국립근대미술관 창설과 관련하여 몇 가지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

제가 일찍이 십년 전 한국근대미술사학회를 창립하면서 함께 꿈꾸었던 일이 국립근대미술관 창설이었습니다. 그 무렵 김희대(당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관)와 한국근대미술사학회 윤범모 초대회장 그리고 뒷날 함께 했던 정준모(당시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 현 덕수궁미술관 관장은 저와 함께 국립근대미술관 창설의 꿈을 안고 여러 가지 노력을 펼쳤지요. 그리고 김대중정부 들어서서 대통령과 박지원 장관의 결단이 있었고, 이에 따라 덕수궁 서관을 국립현대미술관 분관으로 삼아 개관하였던 것입니다.

하지만 노무현정부가 들어서고 장관께서 입각하신 지금, 국립근대미술관 창설은 무산된 듯 보입니다. 희망의 싹이 짓밟힌 지금, 억장이 무너지고 허탈하여 몸을 어찌 가눌지조차 모르겠습니다. 십여 년 전, 동경여행길에서 일본 국립근대미술관을 방문하고 느꼈던 부러움으로 시작했던 일이 이토록 심각한 좌절을 가져다주는 이유는 대체 무엇이겠습니까. 독일 뒤셀도르프 K1, K2를 관람하고 감탄하여 조만간 생길 한국 국립근대미술관에 대한 설레임이 이토록 짓밟혀 버리는 이유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것은 김대중정부가 결정한 일을 노무현정부가 무산시켜서도 아니고, 근대미술동네가 무능하여 아무런 구실도 못한데 대한 분노도 아니며, 오직, 우리 한국에서만이 근대와 근대미술이 이토록 무시당하고 있음을 스스로 깨우치면서 솟아오르는 저 자신에 대한 탄식과 서글픔 때문이겠지요.

지금 세계는, 21세기 문화강국의 꿈을 키워가면서 모든 예술 분야에 지혜와 열정, 자본과 지식을 쏟아 붓고 있음을 장관께서 모르시지는 않겠지요? 특히 서구 모든 국가가 미술관에 모든 열정을 불태우고 있습니다. 미술관이야말로 문화입국의 자존심을 세우고, 외국인을 끌어들이는 최고의 문화상품이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우리는 어떻습니까? 국립현대미술관이 서울 그것도 과천에 하나 뿐이지요? 기무사터 서울분관 구상도 말만 무성할 뿐입니다. 이미 결정된 국립근대미술관 창설조차 무산 당하는 판에 어쩌면 21세기 문화강국의 꿈은 접어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마음을 다잡고 다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근대는, 중세를 끝내고 민권민주사회로 이월하는 전환의 세기입니다. 특히 조선의 경우, 외세의 침탈과 문명의 서세동점 과정을 겪은 대단히 뜨거운 시절이었습니다. 이 시기의 미술문화는 바로 그 전환의 세계관을 고스란히 담고 있고 따라서 국민만이 아니라 동북아시아, 서구의 모든 이들에게 관심의 표적이라 할 것입니다. 일본 국립근대미술관이 바로 그러한 표적으로서 해답을 제공하고 있음을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더욱이 동북아시아 근대시기는 오늘날 동북아 평화와 연대의 근거이자 서구세계와 처음 관계를 맺기 시작한 뿌리로서 적대와 갈등의 시대를 끝장내기 위한 인식의 거점으로서 세계사의 복판에 자리하고 있는 핵심 시대라 할 것입니다.

근대미술관은 바로 그 시대를 반영하고 복원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한국인에게 중세와 근대의 교차를 체험하고 계승해 나가는 의식의 전당이자 동아시아와 서구세계를 이어가는 다리로서 자랑스러운 가치를 지닐 수 있을 것입니다.
최근 덕수궁미술관을 전환해 근대미술관을 창설하는 일은 노후화한 건물 문제로 난관에 부닥쳤으니, 지금 필요한 일은 장관을 비롯, 유관 기관 그리고 각계의 협력과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의 제시일 것입니다. 따라서 저는 근대시기 건축물이 아니라 유서 깊은 지역을 선정하고 근대를 기억할 수 있는 새로운 건물을 지어 명실상부 건축사와 미술관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개념을 대안의 원칙으로 제시합니다. 경복궁 맞은편 남산의 민족박물관 터도 좋을 것이고, 군사요지였던 용산 훈련원 터도 좋을 것입니다. 특히 용산은 국립중앙박물관이 있으므로 중세에서 근대로 이어지는 역사과정을 상징할 수 있고 여기에 국립민속박물관이 들어선다면 용산가족공원과 함께 최고, 최대의 미술관문화권역을 형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퇴임을 얼마 남겨두시지 않은 장관이시지만 마지막으로 새로운 국립근대미술관 창설을 시작한 장관으로 기억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김대중정부가 시작한 일을 노무현정부가 망가뜨렸다는 역사를 용납하시지 말고, 부디 제 기억 안에 새로이 시작한 대통령, 장관으로 남아 있어주시길 간절히 소망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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