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77)계약제로는 ‘예술의 증발’을 막을 수 없다!

심상용


지난날 예술의 지지대들은 파죽지세의 경제논리에 속속 무너져 내린다. ‘부친 없는‘ 시대는 말초 취향에서뿐 아니라, 미학의 심장부에서도 동시에 진행된다. 비평은 성공한 미학만을 다루는, 비윤리적이고 뻔뻔스러운 것이 되었다. 예술계의 새로운 인도자들은 하루가 다르게 ‘스타’, ‘블루칩 작가’, ‘시장 가치’, 운운하는 사람들로 대체되어가고 있다. 미학적 질의 최종절차는 경매장에서 내려진다. 일백 기십억 어치의 예술쇼핑이 하루아침에 영웅으로 등극하는 데 충분한 조건이 되는 분위기다.

우리가 뭔가에 홀려 분주할 때, 족히 수천 년은 된다는 역사는 아무런 응전의 기미를 보이지 못했다. 상황은 신시장주의, 현세주의에 완전히 함몰된 것이라고 해야 할 정도다. 간판상품 만들어서 문화달러나 실컷 벌어보는 미래 외에, 스타를 키우고, 세계무대에 세우고, 그래서 지구촌 예술서열의 상위에 링크되고 그 대가로 문화 달러가 잔뜩 쌓인 금고가 되는 것 외에 달리 우리가 다가서려는 미술의 비전이 무엇이던가? 정작 우리 내면이 끌어안고, 누리고, 신나하고 슬퍼해야 하는 마음들을 담보로 이윤이나 창출하려 드는 서글픈 시대정신, 그리고 마치 만병통치약이나 된다는 듯 걸핏하면 경쟁력 운운하면서 고작 신시장주의 이론가들, 실용주의자들의 시류를 타는 웅변들을 들어보시라!
<계약제의 허상
전면적인 시장주의 시대의 예술.전시를 구성하는 요인들 중 하나로 ‘전문직 계약제’를 드는 것이 타당하다. 오늘날 점점 더 체계화되어가는 예술을 구성하는 관계와 기능들은 ‘계약서’라는 기계적인 관절들에 의한다. 감독, 큐레이터, 보조 큐레이터, 심지어 자원봉사자에 이르기까지 모두 계약서를 체결함으로써 문화적 신체의 일부가 된다. 계약서의 조항들은 존엄한 문화적 주체들을 ‘갑과 ’을‘이라는 차가운 구조로 축약시킨 다음, 그 완화된 것들을 다시 각각에 할당된 수행과 책임의 항목들로 조각내는 것으로 되어 있다. 계약서의 내용들은 결국 계약체결자의 생각과 의지까지 파고들어가 그 내부까지 규정하고 억압한다. ‘을’은 ‘갑’을 향해서는 결코 짓지 않는 회사 개가 되는 조건으로 비로소 사건에 개입하는 것이다.

계약의 철학은 놀랍도록 묵시록적이다. 사건은 계약상의 만료와 함께 모든 것이 신기루처럼 증발해버리는, 오로지 종지부를 찍게 될 시점에 대한 집중에 의해서만 비로소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계약 당자자인 ’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미션(mission)은 사건을 무사히 종료시키는 것이다. 계약에 충실한 것은 기억보다는 망각을 위한 기제인, 값비싼 인쇄잉크들로 도배된 사치스러운 도록만을 남기는 것으로 입증될 것이다. 성공은 어차피 정의할 수 없는 것, 중요한 것은 성공의 인상인 것이다.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것이고, 아무 것도 시작되지 않은 것이다. 관료제 하에서는 책임 자체가 사라져버린다. 결국 계약제의 공백을 메우기 위한 무수한 절차와 규칙의 증가만이 있을 뿐이다. 그리고 옳은 것 규칙에 부합하는 것이라고 세뇌시킨다!

누구도 맥락 전체를 알고 있지 못하며, 주인의식을 가져서도 안 되는, 이 관료주의의 꽃, 계약제는 결과적으로 급격하게 타자화의 급수를 높일 뿐이다. 계약의 주체들은 자신들의 분주한 노동을 투여할수록, 불가해하게도 허약하고 무력한 단말들로 전락해 갈 것이다. 관례나 규범, 그때그때의 트랜드에 허둥대는 것이 이들의 전담 미학이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되면 가슴과 마음과 정신으로 되는 세계는 그야말로 끝장이 나는 것이다.
<최근 미술계에서 전시기획자, 미술관 학예연구직, 갤러리스트의 불안정한 고용과 계약제, 상식을 벗어나는 저임금, 전문직에 대한 사회적 인식 부재 등에 대한 문제제기가 부쩍 증가하고 있다. 이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행정관료주의적 관행과 계약제의 경제적 효율성이 우리 정신과 문화의 미래를 좀먹어들어가는 상징적인 광경이기 때문이다.

이 가난한 문화의 투사들, 학예직 연구원들, 박봉에도 밤을 새는 시각문화의 기획자들을 ‘별당마님’모시듯 해달라는 말이 아니다. 제도든 정책이든 시급히 바꿔 우선 집이 무너져내리는 것부터 막는 것이 순서지만, 그러기 위해 밟아나가야만 하는 선행 과정이 있다. 다만, 살아있고, 예민하고, 약하며, 그만큼 쉽게 썩어 들어가기도 하는 문예의 속성을 이제라도 깊이 인식해야만 한다는 것이 그것이고, 그리고 1년이나 2년짜리 계약서에 사인한 시한부 전문직들로는 사람들의 가슴에서 증기처럼 사라져가는 문예성의 비참한 곡성을 결코 중단시킬 수 없을 것이란 사실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