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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8)미술대학 교육, 달라져야 한다

김광우


특강을 하면서 느끼는 점은 강의가 얼마나 전달되었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질문을 유도해보지만 거의 없다. 강의 후 토론을 이끌어보려 하지만 침묵주의가 더욱 강해 실내는 고요할 뿐이다. 그래도 토론의 장을 마련할 심사로 고요 속에 질문을 던진다. “추상표현주의와 앵포르멜의 유사성과 차이가 뭐지?” “뒤샹의 레디메이드와 개념미술의 관계는?” “해프닝과 퍼포먼스는 뭐가 다르지?” 이런 질문이 학생들의 침묵을 깨뜨리지 못한다. 질문도 하지 않고 답변도 거부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다그친다는 느낌을 줄까봐 부드러운 태도에 미소까지 지어보지만 학생들은 어서 자리를 뜨려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만약 경제학, 정치학, 물리학, 생물학, 교육학, 국문학 등을 전공하는 학생들에게 전공 관련 질문을 하면 불충분하더라도 응답해올 것이다. 그런데 왜 미술 전공자들은 전공 관련 질문에 침묵하는 것일까.

1960년대에 미술이 미니멀리즘으로 치달을 때 이미 미래가 불투명했다. 논리적 귀결로 예술가들은 결국 비물질화 작업에 정진했고 1960년대 말-1970년대 초에는 언어를 소재로 한 개념미술이 성행했다. 개념미술에 의해서 미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자아성찰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해답이 시급해졌다. 그 후 미술전공자들은 싫든 좋든 말을 많이 할 수밖에 없게 되었으며, 토론이 교육의 중요한 수단이 될 수밖에 없었다. 미술작품에 대한 정의를 재확립해야 하므로 미술작품은 스스로 미술작품임을 입증해야 하는 시대를 맞이한 것이다. 미술작품의 창조주는 자신의 피조물에 관해 그것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반드시 밝혀야 한다. 소위 말하는 자기지시성이 선명해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시간에 왜 그것이 미술작품인지, 무엇을 표현하려고 했으며, 그렇게 표현하려는 의도에 관해 설명하라고 하면 매우 당혹해 한다. 언제, 무엇으로, 어떻게 만들었는지에 관해서만 장황하게 말한다. 이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그런 것에 관해서는 설명할 필요가 없는 데도 그런 말 밖에 하지 못한다. 작품을 제작하게 된 동기와 그것을 물질화하는 표현의 과정에 관해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말하지 못한다. 미술교육의 문제가 여기에 있다.
<곰브리치<서양미술사>의 한계
우리나라 미술대학에서 흔히 사용하는 교재가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이다. 원래 제목은 ‘미술 이야기 The Story of Art’이다. 제목에 Story란 말이 사용된 것은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것임을 시사하며 그 점을 곰브리치가 서문에 밝혔다. “This book is intended for all who feel in need of some first orientation in a strange and fascinating field.' 미술에 호감을 가진 청소년이나 일반인에게 이 책은 훌륭한 가이드북이다.

그러나 이 책을 교재로 사용하면 부적절한 교육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려는 것이다. 우선 그의 모더니즘론이 많은 미술사학자들에 의해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그의 미술이론 혹은 편견에 의하면 뒤샹의 레디메이드는 미술작품으로 성립되지 않으며, 워홀이 주도한 1960년대의 팝아트는 퇴행적 운동으로 미술을 발전의 역사로 보는 그에게는 언급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다.
미술을 발전의 역사로 보는 것도 문제지만 서양미술에 있어서 뒤샹과 워홀의 역할을 알지 못하면 1950년대 중반부터 현재에 이르는 컨템퍼러리 아트를 이해할 수 없다. 미술이 삶과 분리될 수 없을진대 컨템퍼러리 아트에 관해 말할 수 없다면 미술교육의 문제는 아주 심각하다. 두 사람은 그리스인(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미술론으로부터 현재까지 2400년, 바사리의 르네상스에 기초한 미술론으로부터는 현재까지 500년의 서양미술의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지 못함을 밝혀낸 예술가들이며 따라서 새로운 패러다임의 필요성을 요구했다.
<이런 점을 예외로 하더라도 토론이 활발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토론이 스스로 공부할 수 있는 방법을 깨닫게 해주기 때문이다. 강의를 의심 없이 받아들여서도 안 되며 불충분한 강의를 침묵으로 용인해서도 안 된다. 이는 학회에도 해당되는데, 일방적으로 듣기만 하는 공손한 태도는 발표자를 나태하게 혹은 무책임하거나 오류를 범하게 만들며 나아가서 그런 과오에 동참 내지는 협력하는 일이 된다.
미술교육 반드시 쇄신되어야 하고 보다 나은 우리나라 미술을 위해서는 서둘러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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