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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리치들, 왜 그림에 열광할까

정준모

슈퍼리치, 그들은 누구인가?

우리에게 전설적인 부자 즉 백만장자를 넘어 억만장자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아마도 H. L. 헌트(H. L. Hunt), 존 클러지 (John Kluge), 로스 페로 (Ross Perot), 샘 월튼(Sam Walton), 존 록펠러 (John Rockefeller), J. 폴 게티(J. Paul Getty) 같은 이들이 아마도 우리 기억 속의 부자 중 부자 즉 슈퍼리치의 반열이 드는 사람들일 것이다. 하지만 억만장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사업수완과 돈이라는 목적을 위해서 물불을 가리지 않는 철저하고 냉혹한 사고와 행동을 보면 “돈은 벌어 무엇하랴?”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쓰는 모습을 보면 정말 환상 속에서 볼 수 있는 “착한 부자”들의 모습을 발견하면서 역시 큰 그릇에게는 큰 돈이 담기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이르게 된다. 특히 1997년 금융위기 후 제 3세계 국가들에서 슈퍼리치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시대와 세상을 지배하는 상징으로서 미술품에 대한 열기가 더해지면서 나타난 현상이다. 이런 현상을 파이낸셜 타임즈는 “금융위기 이후 투자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주식·외환시장의 극심한 변동성을 헤지수단으로 미술품이 각광받고 있다”며 “최근 미술품 시장이 호황을 누리는 데는 중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신흥 백만장자들이 크게 기여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대개 슈퍼리치의 반열에 들려면 재산이 1억 달러이상은 되어야한다. 씨티그룹이 발표한 ‘2012년 부(富) 보고서’에 따르면 2011년 말 재산 1억 달러(1,130억원) 이상 슈퍼 리치 인구는 6만3000여명. 이 가운데 아시아가 2만1000여명으로 가장 많고 북미 1만7,000명, 유럽 1만7,000명, 남미 5,000명, 중동 2,000명 순으로 나타났다.

재산 1억 달러 이상 ‘슈퍼 리치(super-rich)’들의 미술사랑은 상상을 초월한다. 이들은 세계 최대 미술품 경매시장인 뉴욕과 런던에서 최근 불거진 유럽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최대 규모의 응찰 경쟁을 벌인다. 이 때문에 “세계의 큰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이다. 물론 이들의 미술품에 대한 사랑은 확실하게 투자할 만한 곳을 찾지 못하고 대기 중인 유동자금들의 몰려들어오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지만 실은 그들의 미술품에 대한 사랑은 매우 깊다.

문화란 발전을 위해서 소비와 후원이 필요한 법이다. 종래에는 성직자나 제왕 또는 귀족들이 그 역할을 대신했지만 자본주의가 성해지는 20세기에 들어서면서 문화에 대한 지원과 육성 그리고 전통문화의 후대로의 계승은 부자들의 몫이 되었다. 특히 많은 슈퍼리치들이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실천차원에서 문화에 많은 투자와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몰론 국내의 100억원대 이상의 초 부유층(VVIP)들의 경우 여전히 가장 유망한 투자 대상으로 수익형 부동산(27%)을, 다음으로 토지, 예금과 채권, 국내 주식이 각각 16%로 동률을 이루며, 금과 원자재는 13%로 우선 현금을 선호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외국의 슈퍼리치들은 물론 수익형 부동산이나 현금위주의 자신에 투자하지만 적어도 일정부분을 미술품에 투자하고 있다. 물론 이들의 미술품 투자를 투자로 볼 것인지 아니면 문화적 기여로 볼 것인지에 대해서는 사람들의 가치관에 따라 달리 평가하고 있지만 필자는 미술품 투자보다는 문화적, 사회적 기여라는 측면이 중요하다고 평가한다. 왜냐하면 일반시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술품이 그렇게 고수익을 보장하는 투자재가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그리고 미술품 거래에서 수수료가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 커서 구입과 판매를 통해 수익을 창출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따른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왜 미술품에 헌신할까. 우선 그 이유는 메세나 활동의 일환으로 사회에 기여하기위한 수단으로 미술품을 수집한다. 누군가는 수집하고 보존하여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점에서 국민의 세금이나 국가 비용을 부담하면서 미래의 문화재를 미리 구입 소장한다는 것은 불요불급하고 화급을 요하는 지출이 많은 국민이나 정부가 하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그렇다고 사회구성원 모두가 방기할 수 없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슈퍼리치들의 미술품 수집은 필수적인 것이며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해 내는 일이기도 하다.

이런 미술시장에 최근 들어 중국의 부호들과 오일머니로 무장한 중동의 부호들이 미술시장에 뛰어들면서 미술시장이 뜨거워지고 있다. 국제 경매시장에서 미술품 가격이 급등하는 것은 이들 신흥부호들이 금융위기 이후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찾고자 대거 몰리기 때문인 동시에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자신들의 부를 정당화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들 부자들의 세상과 세상 사람들을 위한 씀씀이는 정말 대단하다. 미술동네에서만 보더라도 그 역할은 기대를 넘어선다.


슈퍼리치들과 미술관·박물관

미국의 경우

선진 경영기법을 우선 도입했던 미국의 기업 중 대다수의 기업은 미술이나 문화예술을 통해 기업이미지 창출과 기업이익의 사회 환원, 나눔과 배려와 상생을 실천하고 있다. 이 중 미술문화를 지원하고 미술관을 설립 운영함으로써 기업의 독보적인 문화적인 이미지를 지켜나가는 동시에 사회와 기업이 미술문화를 매개로 연결하고 있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자.

우선 한 개인의 노력으로 미국의 수도 워싱턴시에 자리한 서양미술 전문미술관으로 워싱턴 국립미술관이라고도 불리는 내쇼날 갤러리는 1937년 준비를 시작하여 1941년 개관하였다. 국립이라는 명칭이 붙어 있지만, 원래는 재무부 장관과 주영대사를 역임한 실업가이자 미술수집가인 A.W.멜런(Mellon:1855∼1937)이 건물은 물론 미술품과 운영자금까지 국가에 기증, 이를 국가가 운영한 데서 국립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 후 스미스소니언 협회에 편입되어 국가기관으로 편입되었으나, 이 기증 작품만은 여전히 그대로 소장되어 있다.

이렇게 국립미술관부터 슈퍼리치들의 기부에 의해 설립되었다. 따라서 미국의 미술관은 거의 대부분 기부에 의해 설립된 법인 형태의 사립미술관들이 대부분이다. 뉴욕의 중심 맨해튼에 자리한 뉴욕현대미술관(MoMA)은 뉴욕의 문화적 상징이자 현대미술을 주도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미술관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곳이다. 미국의 대공황이 시작된 직후인 1929년 문을 연 이곳은 부호들의 아내들이 남편 몰래 미술품을 수집했고 유럽근대미술에 밝았던 화가 아서 데이비스가 미술관 설립을 위해 이들을 설득해서 오늘의 모마가 세상에 태어 날 수 있었다. 물론 여기에 가장 큰 기여를 한 사람은 ‘석유왕’ 존 록펠러 1세(John Davison Rockefeller, 1893~1937)의 부인인 애비(Abby Rockefeller ,1903∼76)이다. 록펠러 가는 미술관 건립을 위해 맨해튼의 중심인 53번가에 부지를 제공하고 미술관 건설비는 물론 운영을 위한 기금으로 거액을 기부했으며 이런 인연은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후 미국의 서부 로스엔젤리스의 말리부 해변을 바라보면 우뚝 서 있는 게티센터(Getty Center)는 미술인들의 꿈의 궁전이자 미국 서부인들의 자부심이 되고 있다. 도심에서 서북쪽으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언덕위에 리차드 마이어(Richard Meier, 1935~ ) 가 설계한 우뚝 솟은 유백색의 건물 군으로 이루어진 ‘21세기 문화의 아크로폴리스’는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조화를 이룬 초현대식 건물로 미술관 종사자나 미술 애호가들의 꿈을 실현한 환상의 공간으로 유명하다. 석유갑부였던 폴 게티(J. Paul Getty, 1893~1976)년 에 의해 1953년 처음 문을 연 게티 미술관은 1982년 새로운 프로그램을 운용하기 위한 미술관 확장 프로그램을 제안하여 브렌우드 지역의 대지를 매입 미술관 확장을 시작했다. 1984년부터 1997년까지. 즉 모두 13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 완성된 게티센터는 전체 면적이 약 13만 5,000평에 달하며 총 건축 비용은 약 100억 달러가 소요되었다. 게티 미술관은 석유회사를 운영하면 큰 돈을 번 폴 게티의 사회환원사업으로 지어진 미술관으로 예술과 문화면에서 항상 뉴욕에 비해 상대적 열세에 있던 LA의 문화적 자존심을 세워준 곳이다.

L.A에는 게티 센터와는 규모면에서 작지만 알찬 미술관이 하나 있다. 바로 노턴 사이먼 미술관 Norton Simon Museum 이 그것이다. L. A.의 패사디나에 위치한 노턴 사이먼 미술관은 게티 미술관과 뮤지엄과 함께 L.A.의 대표적 미술관이다. 기존의 미술관이 경영난으로 폐관 위기에 있을 때 사업가 노턴 사이먼(Norton Simon, 1907~93) 이 인수하여 기존의 미술품과 함께 그가 30년 이상 수집한 미술품을 전시하고 있다. 또한 미술관의 칼카 샤이언 컬렉션은 칸딘스키, 클레, 야블렌스키, 파이닝거등 소위 블루 4의 작품도 유명하다. 또한 모네의 지르베니 정원을 본 뜬 정원이 매우 아름다운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노튼 사이먼은 포틀랜드 출신으로 헌트-웻슨 식품, 맥칼 출판사, 토요리뷰, 캐나다 드라이, 맥스 팩토 화장품, 아비스 자동차 렌트회사 등을 경영했다.

이외에도 동부에 자리한 뉴욕의 휘트니미술관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은 가장 미국적인 미술을 수용하는 미술관으로 재원의 대부분을 필립 모리스 Phillip Moriss에서 지원한다. 미국 현대미술의 열렬한 후원자였던 거트루드 밴더필드 휘트니 여사의 700여점의 소장품을 바탕으로 한 미술관이다.


유럽의 경우
유럽과 미국의 문화정책은 엄청난 차이를 갖는다. 물론 영국의 제도와 시스템이 미국의 그것에 심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이지만 미국은 나름대로 유럽의 제도를 수용해서 자본주의의 메카에 걸 맞는 나름의 제도로 발전시켰다.

우선 미국의 제도가 세제혜택을 통한 민간부분의 기부금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는 반면 영국과 프랑스, 특히 프랑스의 경우는 중앙집권적인 제도를 통해 문화예술을 지원하고 박물관 미술관을 육성지원해 온 것으로 유명하다. 그러나 독일의 경우 철저한 연방제를 신봉하는 시스템에 따라 지방정부에 거의 모든 책임을 지방정부에 일임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는 사치 콜렉션 등 몇 몇의 사립미술관이 있다. 이중 특히 눈에 띄는 미술관은 오늘의 영국 yba작가들의 영광을 이끌어 낸 국제적인 광고회사의 대주주이자 사치미술관의 설립자인 사치경의 노력이 크다. 현대 미술의 가장 영향력 있는 수집가 중의 한 사람인 영국의 찰스 싸치, 현대미술의 후원자이자 미술을 산업으로까지 이끌어 내는 수완가, 언론의 관심을 선세이션으로 이끌면서 현대미술을 일반의 호기심과 관심의 중앙으로 끌어 들이는 놀라운 실력, 그리고 이를 통해 젊은 영국의 작가들을 유명작가의 반열에 들게 하는 인물, 그리고 그 결과를 고스란히 챙기는 사업능력에서 현대미술의 큰손이자 컬렉터로서의 역할은 대단하다.

하지만 영국의 미술관들도 크고 작은 사립 미술관의 경우 우리의 공영방송 같은 체제로 독립성을 유지하고 지방정부로부터 지원과 민간의 지원으로 그 운영경비를 마련한다. 이는 대영박물관이나 테이트미술관-영국이나 영연방국가는 대부분 미술관을 갤러리라는 명칭을 사용한다.- 그리고 국립초상박물관 같은 곳들은 매년 특정기업이 많은 경비를 부담하고 그 대신 자사가 그해 특정미술관을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술관 입구와 일 년 동안의 브로슈어와 각종 홍보물에 명기함으로써 기업이미지를 고양시키는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영국하면 떠 올리게 되는 ‘대영박물관’의 경우도 18세기 영국의 학자이자 의사인 한스 슬로언 경이 평생 동안 수집한 작품들을 토대로 의회가 자금을 마련해서 이룩한 박물관으로 1795년 1월 15일 개관하였다. 당시의 소장품만 해도 서적을 제외한 나머지가 79,575점에 달했다고 한다.

영국현대미술의 자존심이라 할 테이트미술관도 1897년 설탕무역을 통해 돈을 번 영국의 실업가 H. 테이트의 소장품과 자금의 희사를 모태로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사실은 그리 잘 알려져 있지 않다. 17세기 이후 영국회화, 인상파, 이후의 유럽회화와 현대조각 등 명품들이 즐비하여 따로 테이트 모던을 설립 운영할 정도인 이 미술관도 한 기업인의 기부로 설립되었다는 점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프랑스의 경우 민간미술관이 일정기간 괄목할 만한 활동을 하고 소장품의 질과 양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에 올랐다면 이는 국가가 위탁운영이나 설립자의 사후기증 등을 통해서 국립으로 전환하는 정책을 편다. 철저하게 중앙집권적 형태를 띠면서 문화에 대해서만은 중앙정부가 모든 것을 관장하는 체제로 움직인다. 특히 문화상 앙드레 말로와 문화대통령 미테랑으로 인해서 베르사이유, 퐁텐블로, 에쿠엥, 샹띠유등의 미술관를 보수하고 비트리, 에센느등지에 현대미술관을 건립하면서 미술의 종주국이라는 자존심을 지키고자 안간 힘을 다 하였다. 하지만 관주도의 문화정책의 한계를 느낀 나머지 이제는 막중한 세제혜택을 부여하면서 민간에 그 영역을 넘겨주고 있다.

특히 젊은 큐레이터들을 중심으로 활동하는 디종 콘소시움같은 곳은 콜렉션과 미술관의 운영에서 매우 독창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즉 기업이나 개인의 후원을 통해 미술관의모든 활동을 철저하게 이끌어 나가는 모습에서 문화국가로서의 체모가 그냥 얻어진 것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국립으로 전환되는 예는 동양미술의 보고라 하는 기메미술관과 귀스타프 모로 미술관, 레제, 마티스, 샤갈미술관등을 들 수 있다.

독일의 경우 지방정부에 많은 권한을 위임하고 있는 것처럼 사립미술관들도 독자적으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다 특히 독일은 기업들이 운영하는 미술관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뮌헨의 이자르 강에 있는 섬에 위치한 국립독일박물관(Deutsches Museum)은 세계에서 가장 규모 있는 과학기술박물관의 하나이다. 뮌헨출신의 유명한 엔지니어인 오스카 폰 밀러(Oscar von Miller, 1855~1934)에 의해 설립되었다. 1925년부터 일반에 공개되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일부 참화를 입어 문을 닫았다가 1947년 다시 개관하였다. 하도 규모가 커서 모든 분야를 관람하려면 1개월이 걸린다는 이 박물관은 개인의 노력에 국가와 주변의 도움이 합해져 세계적인 과학기술박물관으로 성장 했다는 점에서 우리에게 시사 하는 바 크다.

그리 큰 회사는 아니지만 접합 및 조립용구의 최대공급자인 뷔르트(Adolf Wűrth Gmbh & Co. KG) 에 의해 운영되는 뷔르트미술관은 20세기 현대미술을 중심으로 약 3,700여점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을 뿐 만 아니라 크리스토의 소장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기도 하다.

독일인 2차 세계 대전의 도발국이라는 오명을 벗고자 국제주의를 표방하면서 많은 박물관 미술관을 건립하였다. 독일의 박물관 미술관의 숫자는 약 2,000여개에 이르며 회화, 조각은 물론 고고학, 과학분야에 이르기 까지 다양하다. 슈튜트가르트에 있는 카드박물관처럼 소소한 것부터 엄청난 자연사 박물관까지 망라한다.

이 중에서도 베를린에 있는 프로이센문화재단이 운영하는 페르가몬 미술관, 보데 미술관, 건축가 고트프리트 젬퍼가 설립한 회화미술관등이 유명하다. 또한 기업과 기업가들이 설립하고 운영하는 미술관으로는 딱정벌레 자동차로 유명한 폭스바겐이 지원하여 자사의 공장이 있는 볼프스부르크에 현대미술관을 건립하였다. 볼프스부르크시립으로 운영되는 이 미술관은 1994년 백남준 전을 첫 전시로 개관하였다. 특히 원양을 항해하는 기선의 모양을 띄고 있어 그 외형 또한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이외에도 많은 미술관들이 기업이 후원하거나 우리의 기부체납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따라서 소유는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이지만 사실은 기업들이 운영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배경에는 철저하게 기업 활동이 투명하고 또한 기업이윤의 사회 환원과 기업의 윤리적 사회적 책임완수라는 기업인들의 노력이 삼위일체를 이룬 탓일 것이다.

유럽의 이러한 문화적 환경은 미술관과 밀접한 관계를 지닌다. 이들은 미술문화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시각적 이미지 홍보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지 홍보는 장기적인 홍보효과를 가지고 기업의 이미지는 물론 기업의 생산품에게까지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마케팅에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광고비를 투입하는 직접적인 방법보다는 결과적으로는 보이지 않는 간접적 홍보가 더욱 더 효과가 크다는 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미술관과는 달리 유럽에서는 큰 화상으로 출발하여 미술관을 설립 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1997년 10월 스위스 바젤에 문을 연 바이엘러미술관(Beyeler Foundation Museum)은 이탈리아 건축가 렌조 피아노의 설계로 건립되었다. 20세기 최고의 화상으로 성장한 에른스트 바이엘러는 미술품 사업을 통해서 결국은 수집가로 변모하여 미술관을 건립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런 사례는 일찍이 매그재단의 매그미술관(Foundation Maeght)에서도 발견된다. 1964년 프랑스의 풍광 좋은 코트 다 쥐르에 설립된 이 미술관은 애드리앙 매그(A. Maeght)는 평소 친분 있던 건축가와 화가들의 도움을 받아 설립되었다. 미로의 세라믹과 모자이크로 독특하게 꾸민 매그 미술관은 칼더와 쟈코메티가 만든 작은 연못과 테라스로 더욱 유명하다.

프랑스의 보석상으로 많은 이들의 선망의 대상이 되는 카르티에(Cartier)는 수집한 미술품과 전시를 겸하기 위해 미술관을 설립하였다. 1984년 파리근교 주이 앙 조자스에 처음 건립된 미술관은 아르망의 ‘장기 주차’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특히 실내전시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로 건설했던 건물을 사용하였다. 이후 1994년 파리 시내에 장 누벨의 설계와 바움가르텐의 조경으로 아름다운 철골조 유리건물을 완성하였다. 이 미술관 특히 우리시대와 함께하는 작가들의 작품만을 전시하는 원칙을 가지고 활동하며 특히 프랑스의 1960년대 누보 레알리즘 작가들의 작품을 수장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영국의 석유업자이며 미술품 수집가였던 C.S. 쿨벤키안(1869~1955)의 소장품을 모아 1970년 그의 이름을 딴 재단을 설립하고 재단 본부 내에 굴벤키안 미술관(Gulbenkian Museo Calouste), 을 설립하였다. 장소는 영국이 아닌 포르투칼의 리스본, 그의 사업적 배경이 되었던 포르투칼에 대한 애정이 미술관을 그곳에 두도록 하는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이 미술관은 유럽에서 가장 크고 훌륭한 개인미술관 중 하나로 회화, 가구, 세라믹, 조각 등이 유명하다. 이 재단은 유명한 쿨벤키안 체임버 오케스트라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네덜란드의 오테를로에는 크뢸러 뮐러미술관(Kroeller Mueller Museum)이 있다. 이 미술관은 네덜란드 남편의 경제적인 지원으로 미술품을 수집한 독일인 부인 크릴러 뮐러부인(1869~1939)의 소장품을 기증받은 국가가 그 작품을 보관하고 전시하기 위해서 설립한 미술관으로 1938년 문을 열었다. 조각공원과 함께 있는 이 미술관은 특히 1860년대 작품으로부터 인상파와 신 인상파를 거쳐 입체주의 까지를 망라하고 있다.

러시아에서도 이런 훌륭한 기업인을 만날 수 있다. 모스크바에 있는 트레티야코프미술관(Gosudarstvennaya Tretyakovskaya Galereya)이 바로 그것이다. 1856년 개관한 이 미술관은 기업인인 파벨 M. 트레티야코프(1832~1898)는 1870년대 일어난 러시아 민주주의 미술운동의 적극적인 후원자로 레핌, 수리코프등 당시 러시아 중심작가들의 작품을 소장하였고 이를 모스크바 시에 기증하였다. 이후 러시아 혁명과 함께 국립으로 전환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데 생 페테스부르그의 에르미타쥬 미술관과 쌍벽을 이루는 러시아의 대표적인 미술관으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풍광을 지녔다는 덴마크의 루지애나 미술관(Louisiana Museum of Modern Art)도 슈퍼마켓을 운영해서 큰 돈을 모은 독지가가 설립한 미술관이다.

이렇듯 유럽의 유명 미술관은 기업인이나 개인의 소장품을 공공화 함으로써 출발하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업이나 기업인들은 자신의 부(富)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고 미술품과 함께 함으로써 고객과 국민과 함께 자신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튼 영생을 얻는 방법은 그리 흔하지 않은 일이나 그들은 미술관을 찾는 우리들의 가슴에 살아있다는 점이 가장 큰 미술품 수집과 미술관의 개관이다.


오늘날의 슈퍼리치들, 미술에 꽂히다.

1990년대 대거 등장한 신흥부호들, 즉 슈퍼리치들의 미술품 사랑은 남달랐다. 이들은 왕성하게 미술품 수집에 뛰어 들었고 미술시장은 활황을 거듭하면서 성장하고 있다. 불경기라는 2011년에도 미술시장은 위축되지 않았다. 미술품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판매고가 2008년 이후 최고를 기록했다. 파이낸셜타임스는 글로벌 경제가 성장 둔화 우려 속에서 허덕이던 가운데 크리스티와 소더비 등 고가의 미술품을 찾는 수요는 늘었다고 전했다.

이렇게 경기와 상관없는 슈퍼리치들의 미술품에 대한 열정은 여전히 뜨겁다. 그들은 문화와 예술을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은 아닐까 할 정도로 지속적으로 특정한 장르와 작가들을 집중하는 미학과 철학을 바탕으로 컬렉션을 하고있다. 그리고 이런 수집벽은 미술관으로 이어지는 공통적인 특징이 있다. 이런 대표적인 슈퍼리치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명품 제조업체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 최고경영자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1949~ ) 부부를 비롯해 프랑스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 1936~ ), 화장품 업체 에스티 로더 창업자의 아들인 로널드 S 로더(Ronald S. Lauder, 1944~ ),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주인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 1966~ ), 피터 브란트(Peter M. Brant, 1947~ ), 미국의 부동산 재벌 엘리 브로드(Eli Broad, 1933~ ), 프란체스카 본 합스부르크(Francesca von Habsburg, 1958~ ), 다키스 요나우(Dakis Joannou, 1941~ ), 장 피에르 레흐만(Jean Pierre Lehmann,1945~ ), 바로니스 마리온 람버트 (Baroness Marion Lambert), 유진 로페즈Ⅲ(Eugenio Lopez Ⅲ, 1952~ ), 더 유디스 로스차일드 재단(The Joudish Rothschild Foundation),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 ) 등이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Steve A. Cohen, 1956~ ), 800여점에 이르는 앤디 워홀 컬렉션 등 막강한 아트컬렉션을 자랑하는 무그라비(Jose Mugrabi,1939~ ), 이외에도 소로스 아트센터를 설립해서 제 3세계국간 미술네트워크 조성 사업을 진행하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1930~ ),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핀축아트센터(Pinchuk Art Center, Kiev)를 설립운영하고 있는 빅터 핀축(Victor Pinchuk, 1960~ ), 보로스 컬렉션을 통해 베를린의 벙커(BUNKER Gallery)를 운영하는 그리스티안 보로스(Christian Boros, 1964~ ), 이스탄불현대미술관을 설립 운영하는 제약그룹 에크자시바시 (Eczacibasi Holding Group)의 오이야 에크자시바시(Oya Eczacibasi,1959~ )등이 왕성한 ‘미술품 식욕’을 보이고 있다.

여기에 현대미술을 후원하는 기업과 사람들로 월마트(Wal-Mart)의 상속녀로 아칸소에 2011년 11월에 문을 연 크리스탈 브릿지 미술관(Crystal Bridges Museum of American Art)을 설립 운영하는 앨리스 왈튼(Alice Walton, 1949~ )과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프라다(PRADA)의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 1949~ ), 중국 타이캉보험(Taikang Life, 泰康人寿保险股份有限公司)의 대표 첸동셍(陳東升)등이 포함됐다.

이런 새로운 컬렉터 층의 특징은 대부분이 현대미술에 집중되어 있으며 특정한 작가들에 치우쳐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 새로운 슈퍼리치 컬렉터들의 선택과 집중에 따라 작가와 작품의 성향이 결정된다.

작가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데미안 허스트(Damien Hirst, 1965~ )나 제프 쿤스(Jeff Koons,1955~ ), 신디 셔먼(Cindy Sherman, 1954~ ), 무라카미 다카시(Murakami Takashi, 1962~ ), 지그마 폴케(Sigmar Polke, 1941~2010) ,다니엘 뷔랑(Daniel Buren, 1938~ ), 마틴 키펜베르거(Martin Kippenberger,1953~97), 글렌 브라운(Glenn Brown, 1966~ ), 빌헬름 사스날(Wilhelm Sasnal, 1972~ ), 마릴린 뒤마(Marlene Dumas, 1953~ ), 사이 톰블리(Cy Twombly, 1928~2011), 뤽 튀만((Luc Tuyman, 1958~ ), 마르샬 레스(Martial Raysse, 1936~ ), 루돌프 스팅겔(Rudolf Stingel, 1956~ ), 마크 그로티얀(Mark Grotjahn,1968~ ), 미카엘 보레만스(Michaël Borremans, 1963~ ), 리 로자노(Lee Lozano, 1930~99), 히로시 수기모토(Hiroshi Sugimoto, 1948~ ), 야요이 쿠사마(Kusama Yayoi, 1929~ ), 루치오 폰타나(Lucio Fontana, 1899~1968), 마크 핸드포츠(Mark Handforth, 1969~ ), 빌헬름 사스날(Wilhelm Sasnal, 1972~ ), 라이첼 화이트리드(Rachel Whiteread, 1963~ ), 로버트 고버(Robert Gober, 1954~ ), 라이첼 해리슨(Rachel Harrison, 1966~ ), 토마스 슈트(Thomas Schütte, 1954~ ), 톰 프리드만(Tom Friedman, 1965~ ), 댄 플래빈Dan Flavin, 1933~96), 피슬리&웨이스(Fischli, 1952~ & Weiss, 1946~ ), 리차드 휴지스(Richard Hughes, 1974~ ), 프란츠 웨스트(Franz West, 1947~ ), 제이크(Jake, 1966~ )와 디노스 채프먼(Dinos Chapman, 1962~ )형제, 찰스 레이Charles Ray, 1953~ ),매튜 데이 잭슨(Matthew Day Jackson, 1974~ ), 장 팅겔리(Jean Tinguely,1925~91), 펠릭스 곤잘레스 톨레스(Felix Gonzalez-Torres,1957~96), 롭 프루이트(Rob Pruitt, 1964~ ), 내이트 로우만(Nate Lowman, 1979~ )피오트르 우클란스키(Piotr Uklan´ski, 1968~ ), 프루이트 얼리(Pruitt Early, Rob Pruitt & Jack Early), 리차드 프린스(Richard Prince, 1949~ ),래이몬드 페티본(Raymond Pettibon, 1957~ ), 아델 아브데세메드(Adel Abdessemed, 1971~ ), 캐디 놀란드(Cady Noland, 1956~ )카이 알도프(Kai Althoff, 1966~ ), 울 피셔(Urs Fischer, 1973~ ), 마트 브래드폴드(Mark Bradford, 1961~ ), 존 암레더(John Armleder, 1948~ ), 바바라 크루거(Barbara Kruger, 1945~ ), 부르스 나우만(Bruce Nauman, 1941~ ),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Michelangelo Pistoletto, 1933~ ), 에로(Erro, 1932~ ), 황용핑(Huang Yong Ping, 1954~ ), 겔리틴(Gelitin; Florian Reither, Tobias Urban, Wolfgang Gantner & Ali Janka), 폴 매카시(Paul McCarthy, 1945~ ), 마이크 켈리(Mike Kelley, 1954~2012), 오토 뮤엘(Otto Muehl, 1925~ ), 마우리치오 카텔란(Maurizio Cattelan, 1960~ )등이 그 들이다. 이들 작품에서는 전반적으로 염세적, 구상적 또는 엽기적인 경향을 보이는데 그렇다고 이들을 한 데 묵을 특정한 미학이나 철학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것도 아니라는 점도 이들 컬렉션의 특징이라면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의 미술시장 이상 활황에는 분명 중국과 중동 그리고 멕시코와 브라질 등의 새로운 슈퍼리치들의 기여가 크다. 특히 중국계 슈퍼리치들은 중국 근현대 미술품값은 물론현대미술에까지 눈을 돌려 세계 미술계 중심축을 홍콩과 상하이로 빠르게 옮겨오고 있다. 아울러 오일머니 등으로 무장한 중동과 러시아 부호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중국, 중동의 약진 또는 두각

특히 중국의 신흥 부자들이 해외 미술품 가격 상승을 주도하고 있다. 중국계 인도네시아 기업인인 부디 텍(Budi Tek, 중국명 余德耀 위더야오)은 세계미술품 컬렉터 10명중 6위에 랭크되었다. 부디 텍은 인도네시아의 농업 및 축산업계 거물로, 수년간 중국 미술품을 수집해왔다. 홍콩에서 큰 화제를 모으며 62억 원에 낙찰됐던 장 샤오강의 구작 ‘창세편’을 구입하는 등 중국 유명작가의 미술품을 연이어 컬렉션 한 그는 2009년 자카르타에 ‘유즈미술관(Yuz Museum)’을 개관했고, 2013년에는 상하이에 유즈미술관을 하나 더 열 예정이다. 내년에는 베이징에서 자신의 컬렉션 중 주요작품을 중심으로 대규모 컬렉션 전시를 개최할 것이라 한다. 최근 그는 현대미술에도 눈을 돌려 미국의 유력 화랑주인 데이빗 즈워너(David Zwirner)로부터 독일의 떠오르는 작가 다니엘 리히터(Daniel Richter)의 2011년 작을 구입하기도 했다.

류이 첸(Liu Yiqian)은 중국 화단을 대표하는 치바이스(齊白石, 1864~1957)의 수묵화 ‘송백고립도(松柏高立圖)’를 지난해 베이징 경매에서 4억2550만 위안(718억원)에 사들여 중국 현대회화 최고가 기록을 경신했으며 명나라 때 화가 우빈(吳彬)의 그림을 24.76백만 달러에 구입하는 등 최근 상종가를 기록한 중국미술품 거개가 그의 컬렉션이 되었다. 이렇게 중국인들의 약진은 매우 괄목할 만한 것 인데 중국미술의 저력은 매년 발표하는 세계 미술계 파워100에 중국계 인물이 무려 9명이나 선정됐다. 파워컬렉터(Power Collector)부문에선 부디 텍과 류이 첸(Liu Yiqian) 부부가, 또 디자인파워(Design Power)에 디자이너 마얀송( 马岩松, Ma Yansong, 1975~ ), 파워 큐레이터(Power Curator)로는 큐레이터이자 저술가인 뤼 펑(Lu Peng)이 각각 이름을 올렸다.

최근 가장 중요한 컬렉터로 주목받는 이는 카타르 국왕의 딸 셰이크 알-마야사 빈트 하마드 빈 카리파 알타니(Sheikha Al-Mayassa Bint Hamad Bin Khalifa Althani, 1983~ , 이하 알-마야사) 공주다. 알-마야사 공주는, 여타의 컬렉터들을 물리치고 당당히 톱에 이름을 올렸는데 오일머니로 15%의 높은 경제성장률을 기록한 카타르는 왕실은 주축으로 미래의 인류 문화재를 선점하기위해 노력을 다하고 있다. “우리는 터키, 이집트 같은 화려한 문화유산이 없으니 세계가 주목하는 미술품을 집중적으로 수집해 문화강국으로 발돋움 한다.”는 전략 아래 수 백억 원을 호가하는 마크 로스코, 앤디 워홀 등의 작품과 고미술품을 연간 수 억 달러 이상씩 작품소장에 투입하고 있다. 또 2011년에는 폴 세잔의 수채화 ‘카드놀이하는 사람들’(1892~3년)을 크리스티 비공개 입찰에서 2억5000만달러(약 2800억원)에 소장을 결정한 것도 카타르미술관기구 회장인 알-마야사 공주였다. 현재 공주의 자문역으로 미술시장 최고실력가인 전 크리스티 회장 에드워드 돌만(Edward Dolman)이 맡고 있다.

지난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을 치르는 등 적극적인 개방정책을 펼치고 있는 카타르는 지난 2008년 도하에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 이오밍 페이(I.M. Pei)가 설계한 이슬람미술관을 건립했으며, 작년에는 아랍 현대미술관을 개관하는 등 미술관·박물관 건립과 운영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카타르 국왕 역시 2007년 소더비 런던 경매에서 데미안 허스트의 ‘봄의 자장가(Lullaby Spring)’를 970만파운드(약 170억원)에 사들였고, 같은 해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는 마크 로스코의 ‘화이트 센터’를 7284만달러(약 675억원)에 낙찰받기도 했다.

유럽이 재정위기로 여전히 흔들리고 있고, 미국경제 또한 좋지 않은 상황에서 향후 초고가 미술품의 향방은 슈퍼리치들이 맹위를 떨치는 중국과 중동 산유국, 러시아, 브라질, 멕시코 등으로 기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2012년 경제성장률이 9%로 예상되는 등 여전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중국의 미술시장 규모는 매우 가파르게 상승해 올해 약 12~13조원을 상회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약 30조원으로 추정되는 전 세계 미술시장의 약40%에 달하는 규모다.


새로운 컬렉션의 미래

미술품의 새로운 투자수단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 이는 몰론 미술품이 지니는 현물가치 특히 문화적인 여가활동 중 실물로, 화폐로 보상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장르인 때문이다. 하지만 미술품을 투자의 목적으로 다룰 경우 장기적인 투자가 전제되어야 하고 따라서 분명하게 여유자금이 투입되어야 하는 까닭에 선뜻 나서기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물론 미술품에 단기투자를 통해 많은 수익을 얻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대개 투자의 성공사례는 널리 그리고 빠르게 퍼지는 경향이 있지만 실패나 투자대비 수익이 그리 크지 않은 경우는 대개 알려지지 않기 때문에 미술품에 대한 투자의 성공사례가 확대 재생산되는 경향이 크기 때문에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미술품은 투자이상의 가치와 매력이 있다는 사실이 많은 슈퍼리치들을 미술시장으로 끌어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들에게 중요한 것은 미래가치이다. 미술품의 미래가치를 따져보려면 뉴욕현대미술관(MoMA)를 한번 들여다보자. 1929년 즉 80여년 전에 개관한 MoMA는 초대관장이었던 알프레드 바(Alfred H. Barr, Jr. 1902 ~81)를 중심으로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적어도 1950년대를 전후로 한 세계최대 최고의 컬렉션을 갖춘 미술관이 되었고 최고의 명성을 유지하면서 세계 문화예술계의 중심에 서있다. 우리가 주목하고 슈퍼리치들이 주목하는 미술품의 진정한 가치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지금 현재 활동 중인 중진 또는 새로운 작가들의 작품을 선점함으로서 미래의 문화적 자산을 선점한다는 성취욕과 미래의 문화재를 골라 선택한다는 자부심이 더욱 중요한 것이다. 또한 여기에 자신의 부를 이루는데 음과 양으로 도움을 준 조국, 또는 고향에 문화적 자산을 마련해 남겨놓음으로서 자신의 성공을 미래에도 분명하게 각인시킬 수 있다는 점 때문이다. 여기에 경제적인 성공에 만족하지 못하는 슈퍼리치들의 문화적인 성공을 통해 자신을 더욱 더 확실하게 스스로에게 인식시키고자하는 의도도 함께 작동한다는 사실이다.

이들 슈퍼리치들이 수집한 당대의 중요미술품들의 미래를 보면 이런 그 들의 수집의도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거개의 슈퍼리치들이 수집한 미술품들은 비영리, 공공성을 전제로 한 재단이나 또는 그 재단이 운영하는 미술관으로 귀착된다는 것이다. 물론 이렇게 공공미술 또는 스스로가 미술관을 건립하여 기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외국 유명미술관 소장품의 약 85%이상이 기증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우리는 그들 슈퍼리치들이 작품을 수익 또는 투자의 목적이 아니라 문화를 통한 사회적 기여 그리고 예술을 서로 공유하고 기업의 이익을 나누고자 하는 목적이 큰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그들이 우리시대를 증거 할 미술품들을 막대한 자본을 들여 수집하고 보존하여 다음세대와 미래에 양여해준다는 점에서 그들의 미술수집에 대한 행동과 실천은 정당성을 지닌다. 물론 이런 기증과 기부 그리고 기탁 등 사회에 자신의 미술품을 환원하는 경우 일정부분 세제상의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런 때문에 그들의 노블레스 오블리제의 실천을 폄하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즉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서 해야 할 공공재로서의 미술품 보존과 관리를 개인이 맡아서 한다는 점에서 당연 한 보상인 것이다. 만약 정부가 재정을 통해 문화적 가치가 있는 미술품을 선별하고 소장하고 보존한다면 미술을 통해 정치나 이념적 통치를 실현하려는 것으로 오해를 사거나 자칫 그렇게 흘러갈 수도 있을 터이다. 따라서 이는 철저하게 민간의 영역이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국가는 재정을 통해 일반적이며 삶과 직결되는 기본복지, 생활복지, 아동복지, 장학사업 등등에 투입하고 민간에서는 문화 복지 등 간접복지를 맡는 역할분담차원에서 슈퍼리치들의 사회적 기여, 나눔의 실천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차원에서 제세혜택을 통해 미술품 수집과 보존을 장려하는 정책을 실천에 옮겨야 할 것이다.

결론을 대신해서 최근 슈퍼리치들이 자신의 소장품을 미술관의 형식을 빌어 사회에 환원한 예를 들며 이 글을 마치고자한다.

명품 제조업체 루이비통 모에 헤네시(LVMH) 최고경영자인 베르나르 아르노(Bernard Arnault,1949~ )는 현재 파리에 자신의 컬렉션을 일반에게 공개할 목적으로 프랑크 게리가 설계한 Louis Vuitton Foundation for Creation를 2013년말 완공을 목표로 건축 중이다. 프랑스의 억만장자 프랑수아 피노(Francois Pinault, 1936~ )는 이미 2008년 안도다다오의 디자인으로 Punta della Dogana를 열었고 그 전에 팔라조 글라시(Palazzo Grassi)인수하여 개관한 바 있다. 화장품 업체 에스티 로더 창업자의 아들인 로널드 S 로더(Ronald S. Lauder, 1944~ )는 뉴욕 5번가에 노이에갤러리(Neue Galerie)를 2001년에 개관했으며, 영국 프리미어리그 첼시 구단주인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Roman Abramovich, 1966~ )는 그의 애인 쥬코바(Daria Dasha Zhukova)와 함께 2008년 모스크바에 버스차고를 개조해서 문을 연 The Garage Centre for Contemporary Culture Moscow를 고르기 공원부지로 이전하기로 했다. 건축설계는 렘 쿨하스(Rem Koolhaas)가 맡아 2013년까지 이전을 완료할 예정이다. 이와 함께 아브라모비치는 페테스부르크에 미술관과 호텔 등이 함께있는 복합문화공간을 준비 중이다.

콜렉터 피터 브란트(Peter M. Brant, 1947~ )는 코네티컷 그린위치에 브란트 재단(The Brant Foundation Art Study Center)을 2009년 5월에 개관하여 자신의 소장품을 공개하고 있다. 또 미국의 부동산 재벌 엘리 브로드(Eli Broad, 1933~ )도 LA에 미술관 건립을 계획 중인데 지역 간 미술관 유치를 위해 각축전을 벌리고 있다는 소식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상속자이자 철강기업 티센(Thyssen-Bornemisza)의 안 주인이기도 한 프란체스카 본 합스부르크(Francesca von Habsburg, 1958~ )는 마드리드의 티센미술관(Museo Thyssen -Bornemisza) 외에 비엔나에 현대미술만을 수집하는 사무실을 별도로 운영하며 수집한 작품들은 해외 여러 미술관에 순회전시 형식으로 공개하고 있다.

그리스의 실업가이자 컬렉터인 다키스 요나우(Dakis Joannou, 1941~ )의 컬렉션도 순회전 형식으로 뉴욕의 뉴 뮤지움(New Museum)을 비롯한 유수의 미술관에서 공개되고 있다. 엄청난 현대 드로잉 소장품으로 유명한 유디스 로스차일드 재단(The Judish Rothschild Foundation)은 미술가들을 지원하고 육성하는 장학 사업을 동시에 펄치고 있기도 하다. 영국의 유명한 콜렉터이자 광고인이기도 한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 )의 1985년 사치갤러리(The Saatchi Gallery)를 개관했다. 이후 2003년 4월 템스강가 사우스뱅크(South Bank)의 카운티홀(County Hall)로 이전했다 2008년 10월 9일 현재위치로 이전 개관했다. 여기에 헤지펀드 매니저 스티브 코헨(Steve A. Cohen, 1956~ )도 코네티컷에 사립미술관을 개관할 생각으로 준비 중이다. 소로스 아트센터를 설립해서 제 3세계국간 미술네트워크 조성 사업을 진행하는 조지 소로스(George Soros, 1930~ ),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핀축아트센터(Pinchuk Art Center, Kiev)를 설립운영하고 있는 빅터 핀축(Victor Pinchuk, 1960~ ), 보로스 컬렉션을 통해 베를린의 벙커(BUNKER Gallery)를 운영하는 그리스티안 보로스(Christian Boros, 1964~ ), 이스탄불현대미술관을 설립 운영하는 제약그룹 에크자시바시 (Eczacibasi Holding Group)의 오이야 에크자시바시(Oya Eczacibasi, 1959~ )등이 있다. 여기에 브라질에서 광산업으로 부를 일군 베르나르도 빠즈(Bernardo Paz, 1949~ )가 2006년 설립 개관한 인호팀(Inhotim; Instituto de Arte Contemporânea e Jardim Botânico)은 미술품으로 만들어진 어뮤즈먼트 파크를 연상시킨다.

여기에 월마트(Wal-Mart)의 상속녀 앨리스 왈튼(Alice Walton, 1949~ )은 아칸소에 2011년 11월 크리스탈 브릿지 미술관(Crystal Bridges Museum of American Art)을 개관했고 이탈리아 명품브랜드 프라다(PRADA)의 미우치아 프라다(Miuccia Prada, 1949~ )는 밀라노에 2011년 베니스에 프라다 재단(PRADA Foundation)을 설립하고 미술관 신축을 준비 중이다. 중국에도 사립미술관이 속속 준비되고 있다. 류이 첸(Liu Yiqian)은 Dragon Art Museum을 신축 중이다.

이렇게 결국 미술품은 미술관이라는 최종 목적지에 도달하면 슈퍼리치들에 의해 국민과 세계민들이 공유하게 되는 공공재이다. 그리고 이를 수집하고 보존해서 공공의 손에 되돌려놓은 그들의 업적과 고귀한 행동은 미래에도 영원히 기억된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미술품 수집을 투기나 투자의 관점으로 보는 시각을 교정 할 필요가 있다. 영생불사를 원했던 진시황은 세상을 떠났지만 그가 만든 진시황릉 속 문화재들이 세계 곳곳의 미술관, 박물관에서 오늘에 살며 세상사는 사람들과 만나고 있다. 결국 진시황은 영생불사하지는 못했지만 자신의 무덤에 모아놓았던 유물들로 인해 지금도 살아있는 셈이다. 아, 좀 더 일찍 알았으면 더 좋은 미술품들을 모아 무덤에 넣어두어 문화적, 예술적 황제로 남을 것을 하고 후회를 하고 있을 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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