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동북아공정 파문을 맞은 시대에 이중섭을 생각한다

김현숙

고구려 및 발해사를 자국의 지방사로 편입시키기 위한 동북아공정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백두산의 국제문화재 등록과 관광개발 등 중국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중화 패권을 향한 중국의 시대착오적 열망에 대해 우리는 단일민족의 틀로 짜인 고구려사에 근거하여 민족적 분노를 작동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자국의 이익선을 벗어나 인류애와 보편적 정의에 입각하여 해결된 국제적 분쟁이 존재했었는가에 대해 나는 잘 알지 못한다. 그러나 동북아공정 사태를 보며 이제 우리도 단일민족사의 구성을 탈피할 단계가 되었다는 생각을 해본다. 고구려가 중원을 제패하고 뛰어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단일민족의 단일문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민족 외에 한족, 말갈족 등 주변의 이민족과 그들의 문화를 수용할 수 있었던 관대함과 자신감에서 비롯되었고, 이를 강조하는 것이야 말로 21세기 고구려의 후예들이 취할 자세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신라 천년의 문화 중에서 특히 화랑의 상무정신, 사후에 용이 되어서 왜구로부터 나라를 지키겠다는 문무왕릉과 감은사의 호국불교적 성격에 감격한다. 심지어 불국사와 석굴암을 종교적ㆍ문화적 차원에서 숭상하기 보다는 그것에 ‘호국’의 성격을 덧칠해야만 그 가치가 한층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고구려에 대해서도 광활한 중원을 호령하며 주변 국가를 제압했던 일면만을 강조하고 기억한다. 고구려가 획득한 영토의 크기를 증명해주는 광개토대왕비에 열광하고, 고구려 벽화를 통해서는 우리의 용맹한 상무정신을 확인하고자 한다. 그러나 실상 고구려고분벽화가 세계문화유산이 된 이유는 주변을 제압한 고구려인의 무력 때문이 아니라 해와 달이 만나고, 신선이 학을 타고 하늘을 날며, 선녀가 연주하는 음악에 맞추어 바람과 별과 구름이 윤무하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세계관과 뛰어난 예술성 때문임을 인식해야 한다.

<이중섭은 풍만한 삶을 강열하게 표현
같은 문맥에서 고구려 문화에 젖줄을 댄 이중섭을 생각해본다. 이중섭의 무엇이 오늘날 그를 ‘국민화가’의 지위에 오르게 한 것인가? 야만의 시대로부터 가족과 자신을 지키지 못한 예술가의 비극적 삶, 천문학적 숫자로 기록되는 작품 가격과 그 때문에 야기된 작품 진위문제로 유명세를 치루기 때문인가? 상식적으로 그 대답은 단연코 NO! 일 것이다. 그러나 정말 그러한가?

1941년경 중섭이 그의 애인 마사코에게 보낸 많은 엽서 그림들 속에는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모티브를 취한 것이 대다수를 이룬다. 내가 아는 한 이 엽서 그림 중 고구려의 상무정신을 부각시킨 그림은 단연코 없다. 태양 아래서 말을 달리는 사냥꾼은 만물의 영장으로서가 아니라 기이한 짐승들과 공존하고 유희하는 열락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모든 물체에 생명이 깃들어 있다는 예민한 감수성에 의거한 중섭의 그림은 생에 대한 찬미로 기운생동 하는 것이지 남성적 근육질을 자랑하는 오늘날의 ‘진짜 남자’로서 기운생동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 근대 작가 중 이중섭 만큼 활달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그림을 그린 작가는 그 예가 없다. 한편 이중섭 만큼 사랑으로 풍만한 삶을 강열하게 표현해낸 작가도 없다. 우리가 이중섭을 고구려의 후예이자, 오늘의 국민 작가로 호칭한다면 그 이유는 반드시 이러한 측면에 기인해야 할 것이다.

두 마리 봉황이 윤무하며 애무하는 <부부>, 아이들이 복숭아 나무에 매달려서 놀고 일하며 먹는 <서귀포 환상>,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와 함께 하는 가족 그림 <비둘기와 가족> 등은 일제 식민기를 거쳐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은 한 비범한 예술가가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며 가슴으로 피워낸 아주 소박한 이상에 다름 아니다. 한편 붉은 하늘을 배경으로 충혈된 눈을 부릅뜨고 <울부짖는 소>는 상대를 향해 두 뿔을 세우고 <싸우는 소>, 깃털이 뽑힌 채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으로 상대를 노리는 <투계>에서 드러난 시대적 야만에 대한 절규이다. 중국의 동북아공정 프로젝트에 맞서는 우리의 자세는 그들의 야만의 크기만큼 또 하나의 야만을 불러내는 것이 아니라 시대의 야만을 향해 절규하면서도 소박한 이상사회를 가슴으로 피우며 생을 찬미했던 이중섭의 자리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