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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의 오늘과 내일-변화와 내실

이원복

재작년 가을 세계박물관대회(ICOM 2004 Seoul)가 우리나라 수도에서 개최되었고 또한 지난해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이 매머드 건물로 신축해 재 개관한 때문인지 박물관이란 단어가 신문 등 지상은 물론 일반인 사이 대화에서도 자연스레 자주 오르내린다. 민족의 정체성 및 질적 삶의 추구의 일환으로도 생각된다. 이는 1970년대 초 대학 도서관마저 문을 닫아 조용한 공간을 찾기 위해 찾은, 그래서 박물관이 평생직장이 된 필자와는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느껴진다.

박물관의 존재 목적은 다른 무엇에 앞서 기능면에서 그 첫 번째가 단연 소장 유물의 보존이다. 지금까지 전해진 가시적인 민족 문화유산을 각기 쾌적한 조건과 환경에서 현 상태를 유지하며 미래에 전하는 중차대(重且大)한 역할이다. 이들 유물은 세월의 흐름 속에 저 나름의 사연을 안고 오늘에 이른 것이다. 매장문화재의 경우는 무덤 내 부장품으로 발굴이나 도굴에 의해 긴 잠에서 깨어난 것도 있고, 가까스로 전화(戰禍)나 화마(火魔)를 피하는 등 각가지 우여곡절 속에 가녀린 숨결을 오늘까지 유지한 것들이다. 근자에 이들 유물의 수복(修復)을 위한 보존과학에 대한 관심도 크게 고조되니 이는 지극히 고무적이고 바람직한 양상이다.

< 그러나 일반 감상자 즉 고객(顧客)의 입장에선 전시가 우선 된다. 연구실이나 유물창고 등 박물관의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은 생각하지 못했기에 별개의 문제로 논외의 대상이 되기 쉽다. 전시품 자체보다는 관람자가 서 있는 공간인 진열실이 감상하기에 쾌적한 분위기인가 여부와, 전시 효과 측면에서 보다 작품에 대한 쉬운 이해에 효과적인 전시 기법인가 등이 관심의 대상일 뿐이다. 과거 미술품의 경우 가장 바람직한 이해는 그들이 만들어진 시대 분위기 속에서 놓여진 원래 위치대로 전시 환경을 연출함도 전기 기법의 하나이다. 이를테면 불상은 사찰 분위기를 연출해 천개(天蓋)를 갖춘 수미단(須彌壇) 위에 진열한다거나, 연적이나 필통 등은 사랑방 내 가구에 놓여진 상태로 동시대 음악이라도 함께 들으며 감상하면 더욱 바람직할 것으로 생각된다.

대상이 전리품(戰利品)이건 아름다운 예술이건 수집과 소유 본능, 그리고 모은 것에 대한 어느 정도 드러냄 즉 과시(誇示)와 이를 통한 즐거움의 공유(共有)는 인간만이 역사를 소유하는 사실과 함께 박물관의 존재를 가능케 했다. 해서 박물관의 역사는 참으로 길고 오래이나 이즈음처럼 여러 측면에서 요구가 봇물처럼 터지고 기대의 시선이 강렬함은 일찍이 없던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 이상은 박제(剝製)나 화석(化石)과 같은 존재의 흔적이나 역사의 침묵이 깃든 초월의 공간이나 고요한 피안(彼岸)만은 아닌 성 싶다.


변화되는 박물관의 내일
오늘날 박물관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며 여러 유형이 존재한다. 전시물이나 소장품에 다른 분류에 따른 전통적인 분류의 전문박물관의 개념 외에도 고객 위주의 눈높이에 맞춘 어린이 박물관, 맹인을 위한 체험박물관, 디지털 박물관 등이 이를 증거 한다. 목적과 필요성에 의해 소란스러움이 요구되는 공간이 필요하기도 하지만 모든 박물관이 사찰 밖 유원지나 장터처럼 난장판이어서도 안 된다. 박물관이 소수 특권층을 위한 것은 아니기에 중세 수도원(修道院) 같은 엄숙주의(嚴肅主義)나 왕궁 같은 높은 문턱 유지를 지지함은 결코 아니다. 아무쪼록 세상이 소란스럽고 삶이 고단하고 버거울 때, 지치거나 좌절, 상처 입은 마음과 정신 그리고 몸이 머물면서 위로와 위안을 얻고 새로운 힘과 생기를 충전(充電) 받는 장소여야 한다. 그것이 아름다움의 힘이며 예술의 존재 이유 아닌가. 문제는 감동을 느끼는가 여부이며, 보다 효과적으로 감동을 전달하는 방법상의 문제이다. 우선 전시 기법에서의 변화와 다양한 시도를 빠트릴 수 없다.





박물관의 업무 중 보존처리에 못지않게 각종 평생교육의 장으로 각종 교육 프로그램의 운영, 다양한 전시기법과 공연과 음악 등과의 만남 등 복합 문화센터로 기능이 확대되고 있다. 운영, 관리에 있어서 경영의 묘(妙)와 전문가도 요구되며 이를 위한 적지 아니한 탈바꿈도 대기 중이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전통 자체도 고착이 아닌 진행형 아닌가. 그 시대의 노래가 있듯 변화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다.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에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노력과 더불어 두더지처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학문의 산실(産室)삼아 묵묵히 불철주야 애쓰는 연구직(硏究職)의 내적 충실 없이는 개선 아닌 개악(改惡)이다. 이 모든 것은 화병에 꽂힌 곧 시들 꽃들이거나 뿌리는 부실한데 잎만 무성한 나무에 비교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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