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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어날 길 없는 인문학의 꽃

정준모




외환위기 이후 구조조정으로 졸지에 실직자가 되는 인구가 급증하면서 누구나 실직의 두려움으로 자유로운 국민이 없는 형편이 되었다. 그리고 이후 떠 오른 청년실업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 보도를 보면 그냥 하염없이 노는 남자가 100만을 넘고 있고 경비원이나 청소원 같은 직종의 인력을 공모하면 고 학력자들이 몰려드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그 경쟁력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고 한다.

이는 그만 큼 살기가 팍팍해졌다는 반증 일 터인데 그나마 이런 삼디업종의 일자리라도 미술동네 특히 ‘인문학의 꽃’이라고 하는 미술사, 박물관학, 미술관학 전공자들, 미술이론전공자 등등의 수많은 고학력자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이들에게 일자리는커녕 계속해서 교통비만 받더라도 책사보고 공부할 수 있는 자리라면 가리지 않을 이가 허다하지만 자리를 얻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것이 현실이다.

공급은 꿈틀, 수요는 찔끔

이러한 공급과잉 현상은 1980년대 이후 예체능대학의 무한정 신설과 졸업정원제를 실시하기로 하고 선발한 대학생들을 학교와 정부당국의 허언으로 졸업정원의 적용을 받지 않고 모두 무사하게 졸업함으로써 비롯된 일이다.
이공계는 그나마 좀 나은 편이지만 역사와 종교, 정치와 사회를 미술품을 중심으로 씨줄과 날줄로 엮어내고 해석해내는 미술사 분야의 취업난 또는 취업 후 환경은 실로 참담하다.

특히 1990년부터 급격하게 관련학과가 개설되면서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했던 학교당국이나 문화예술의 지원과 육성이 주 업무인 문화관광부 그리고 당사자인 미술계 모두가 방관하거나 무관심하다.
그런데 이렇듯 전문이력이 양산된 데는 이유가 있다. 문화부가 창설되면서 1,000개의 미술관 박물관을 10 년 안에 건립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렇게 되면 최소 삼천 명에서 최대 오천 명의 전문 인력이 필요할 것은 자명한 일. 많은 우수인력들이 미술사나 미술이론, 박물관미술관 경영학과로 진로를 선회했고 대학들도 앞 다투어 장밋빛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학과를 개설하고 대학원에 전문과정을 설치했다. 학부에 큐레이터 학과까지 신설하는 발 빠른 학교도 생겨났다.
그러나 미술관 박물관의 개관은 지지부진했고 목표달성이 어려울 것을 동물적 감각으로 인지한 담당 공무원들은 박물관 미술관 설립자가 해당 박물관, 미술관의 유물과 유사 또는 인접한 전공을 한 경우 전문 인력을 두지 않아도 되도록 규정을 개정하면서 실적 달성에 몰두했다. 하지만 결국 전문가 없는 전문박물관 미술관, 무늬만 미술관 박물관을 양산했고 1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 계량적 목표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다만 당시 담당 공무원의 최선을 다한 공은 인정되었을 터이다. 이렇게 수요는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지만, 세운 목표는 달성하고 마는 공무원과 공직사회의 실적주의는 미술사와 미술이론가를 희망했던 이들에게 좌절과 패배감만을 주고 말았다.

미술은 있어도 미술이론과 미술사는 없다.

이후 공급이 수요의 수 십 배에 이르면서 이들은 청소원이나 경비원 같은 일이라도 찾아 나서야 했다. 하지만 미술이라는 것 자체가 없어도 사는데 그리 불편함이 없는 척박 하고 격 없는 사회에서 미술이론가들의 설 땅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늘날 인문학 여타의 직종과 직군도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이겠지만 미술사나 미술이론, 미술행정이나 큐레이터 전공자들, 미술비평가로 한국에서 최소한의 인생을 살아내기에는 너무나 버겁다는 것이다.

그간 미술부문의 종사자 대부분은 창작자들이었다. 한국의 미술대학교육은 이들을 양성하기 위한 것이었고 이렇게 특정 집단의 양성과 육성에 전념하면서 이론가들은 가물에 콩 나듯 스스로 선택해서 공부하는 이들 몇몇에 의해 명맥을 유지해 왔다. 왜냐하면 수요가 전혀 없었거니 있어도 미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 한국미술 100년사를 돌아보면 미술이론, 미술사학부문의 전문가들이 100여명을 넘지 않는다.

척박한 환경이기는 마찬가지인 문학비평이나 문학사에 비해 미술비평의 경우 그 깊이에 비해 폭은 매우 좁은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이는 그간 한국의 미술사가들이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을 희생시켜가면서 오늘날 괄목할 만 한 성과를 확보해 낸 것이다. 그러나 우리 미술동네 창작인들은 미술사나 미술이론, 미술행정과 정책 같은 것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따라서 미술전문지는 늘 적자이고 그나마 제대로 된 글을 실을 지면조차 얻기 어려운 것이 미술사를 전공으로 선택한 사람들의 형편이다.

이들은 미술동네 내에서도 인정받기 어렵다. 한국 문화예술계 원로들의 모임이라 할 예술원마저도 수 십 권의 저서와 평론활동을 통해 한국미술의 초석을 다져온 팔순 노 논객을 ‘미술평론’은 이론이니 ‘학술원’회원자리를 알아보라는 주장을 하는 형편이다. 또 언론사 마다 미술전시를 통해 수익을 올리지만 미술평론을 신춘문예에서 공모하는 신문사는 단 한 곳뿐이며 이전시를 수행하는 것도 파트타임으로 미술사가 들이 맡는다.
하지만 이는 좀 나은 편이다. 정부나 지방정부가 설립주체가 되는 국공립미술관들의 경우는 더 하다. 아니 이들이 시범을 보이는 형국이다. 최근 들어 국공립미술관들은 미술관의 전문성을 담보해 낼 미술사, 미술이론가들로 구성된 학예 연구직들을 종래의 종신직에서 거개가 계약직 또는 일용직으로 바뀌는 중이고 이미 바꾼 곳도 있다. 개혁이란 이름으로 말이다.

대상을 잘못 찾은 개혁

이 정부 들어 개혁이란 이름으로 시행한 개혁치고 제대로 된 것이 없지만 문화예술계의 개혁 중 가장 치명적인 것은 문화예술기관의 전문 인력들을 경쟁력을 담보해 낸다는 명목으로 ‘물갈이’를 시도했다는 것일 것이다. 그 결과 전문성에 대한 평가를 관료들에게 넘겨줌으로써 미술관, 박물관의 전문 인력들은 통상적인 계약관계에서‘갑’의 입장이 아닌‘을’의 입장으로 확실하게 전락하면서 이제 미술관과 박물관은 그 전문성보다는 행정편의주의적인 기관으로 자리했다는 것이다. 이는 행정전문 관료들에게 미술관의 전문성을 위임하고 그들은 다시 전문가들의 하청을 주듯 비정규직인 전문가들을 통해서 성과를 얻어내는 구조라는 것이다. 사실 행정전문 인력들의 구조조정이나 물갈이는 없이 미술관의 전문직만 손을 댐으로써 테크노크라트들의 철밥통은 건재하다는 것이 입증한 셈이다.

하지만 문제는 더 심각하다. 더욱 비극적인 것은 미술관의 전문성이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석 박사급의 자리에 미술과는 거리가 먼 사람 또는 전혀 관련이 없는 사람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밑에서 미술사 전공자가 일용직이 되어 그들의 성과와 실적을 대신 생산해 내는 구조라는 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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