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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럭버스터 해외수입전시가 시사하는 것

김은영

블럭버스터 해외수입전시가 시사하는 것

김은영 (한미사진미술관 기획실장, 뮤지올로지스트)

지난 3월 18일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막을 내린 ‘루브르박물관 소장품전’은 서구에서 1970년대 이후 줄곧 성행하고 있는 내셔널 블록버스터 전시의 행진이 여기까지 닿았구나 하는 새삼스런 감흥을 준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자체적으로 기획하는 전시로는 대중적 성공을 거둘 수 없고 대신 전시장을 임대, 민간 사업자가 주관하는 블록버스터전시를 영입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이 얼마전 모 신문에 소개되었다. 박물관 측에서도 블록버스터 전시를 유치할 수 없는 이유가 엄청난 대여보험료 때문임을 지적하고 있다. 선진국에서처럼 국가보험보장제도가 있어 박물관이 이 같은 국가대표 급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자체적으로 유치할 수 있다면 진정한 문화교류로 발전될 수 있음을 아쉬워하는 논지의 글을 보면서 해외블록버스터 전시가 시사하는 점들을 짚어보고자 한다.


인뎀니티의 문제

영국, 스웨덴, 미국 등지에서 실행되고 있는 국가 보험보장제도(지불보증, National Indemnity)는 해외전시 때 국가에서 전시대여에 따른 보험을 지불보증해주는 제도이다.
미국미술관장협의회에서는 일찍이 이러한 문제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1970년대 초 의회에 국가보험제도(Arts and Artifacts Indemnity Act)를 통과시켜 박물관 미술관의 부담을 덜어주었다. 아마도 차제에 이 문제는 최근 국회에서 추진되고 있는 기증문화를 활성화시키기 위한 움직임처럼 입법화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쪽으로 전개될 것이다. 또 당연히 그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사안은 미술품시장과 뮤지올로지, 비영리기관경영이라고 하는 측면이 두루 연결되어있어서 단지 어떤 이해단체나 정부 기관이 주도하는 단편적 정책이나 행정적 접근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며 고유의 메카니즘이 있음을 염두에 두어야한다. 다시말해, 미술관 박물관의 소장품과 관련된 모든 사안에는 “컬렉션 매니지먼트”라고 하는 전문분야에서 통용되는 원리와 방법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국가 인뎀니티 제도는 단순히 보험제도 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를 적용하는 방법에 있어서 합리성을 지닐 수 있는 근거는 마련되어 있는가, 문화기반시설평가와 같은 평가지표만으로 기관의 전문성과 질을 담보하기 어렵다면 어떤 평가기준을 가져야할 것인가, 하는 문제들이따라온다. 보통 기관 대여시에 사전 심사하는 미국박물관협의회(AAM)가 개발한 표준시설보고서(Standard Facility Report)는 국가보험제도 혜택을 받음에 있어서도 자격요건을 심사하는데 주요근거 자료가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박물관 인증평가제도(Museum Accreditation Program)가 잘 정착되어 있고 이러한 평가가 가능한 것은 소위 박물관학적 측면에서의 박물관 운영 전문성이 확립되어 있기 때문이다. 향후 국가보험보장제도를 상정하자면 박물관학적 흐름에 근간을 두면서도 우리 현실에 적정한 컬렉션 관리의 “볼트와 너트”를 잘 계발해나가야 할 것이다.






내셔널 블록버스터와 대안

문화비평가 Brian Wallis는 “Selling Nations'라는 글에서 국가라는 문화상품의 세일즈 전략이 국가주의적 프로파간다의 이면으로 축제나 전시와 같은 정교한 문화행사의 수출로 성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박물관들이 경영을 위해 선택하는 해외의 블록버스터 전시가 타 문화에 대한 왜곡되고 편협한 시각을 조장할 수 있음을 우려하고 있다.
박물관 운영 측면에서도 블록버스터 전시의 문제는 논쟁의 대상이었다. 문화선진국의 박물관 미술관들이 블록버스터에 의존하는 경향은 경영상의 필요악 같은 존재로 설명되어진다. 전시수요시장 전체로 볼때 블록버스터 전시를 기획하거나 유치할 수 없는 소규모 예산의 사립, 지방 미술관 박물관 들은 더욱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다. 대중의 기대치는 점점 증폭되어 더욱 자극적이고 강한 영향력과 세련된 전시체험을 원하는 쪽으로 흐르게 된다. 우리 시장 경제와 일반대중의 수요로 볼때 블록버스터 전시에 대한 기대는 미술관과 박물관의 입장에서 최선책이 아닐 수 있다.

그렇다면 해외에서 들여오는 블록버스터 전시에 대한 우리의 대응책은 어떠해야 하는가? 메시지와 철학이 있고 철처한 연구가 기반이 되어 참신한 해석을 가하고 새로운 매체의 구현방식을 시도하며 그리하여 감동을 주는 전시를 만들 수 있을까? 전시전문가 캐서린 맥클린의 저서<사람을 위한 전시>에는 관람자와의 성공적인 소통을 이루는 전시기획의 원리와 방법들을 “해석적 전시 개발(Interpretive Exhibition Development)” 이라는 형태로 소개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법론은 지난 20여년간 서구에서 소위 “뮤지엄 전시”를 정착시키는데에 크게 기여하였다. 이는 제품디자인, 영화산업과 같은 비즈니스 기획매뉴얼과 뮤지엄 철학에 기반한 해석 원리가 통합된 개념으로서 아직 국내의 박물관 미술관 분야에 제대로 알려져 있지 못한 실정이다. 따라서 전시기획에 있어서 개념적 방법적으로 후진성을 면할 수 없는 현실을 감안할 때 해외 블록버스터 전시의 수입은 장차 우리 박물관 미술관의 자생력을 더욱 약화시킬 것이라는 염려가 앞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루브르 박물관 소장품전>은 작품의 규모와 질을 떠나 그것의 가공포장 기술의 세련된 면모를 통해 선진적 뮤지엄 전시기법의 단면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주제의 설정과 부주제의 공간적 논리적 구성, 굳이 미술사적 맥락을 몰라도 충분히 의미가 와 닿는 레이블 글쓰기, 일반적 크기를 파격적으로 뛰어넘는 큼지막한 ID레이블(레이블 체계 중 가장 하위단위로 한 작품을 최소 항목들만으로 설명하는 레이블로 3x5인치 규격정도)과 글자체의 선택, 구역별로 제시된 설명문(Wall Text, Group Label)에서의 타이틀과 문구의 대중적 감성을 울리는 소통효과, (보통 전문 카피라이터가 쓰는)뛰어난 문체 등이 돋보였다. 철저히 일반대중을 겨냥하였지만 동시에 현대적인 해석적 전시기획방식으로 치밀하게 구성되어 있음이 느껴진다. 이는 단순히 루브르 소장품이라는 아우라 이상의 해석적 전시기획의 원리와 방법이 녹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영국 테이트 모던의 1980년대 이후 경영 혁신의 핵심 과제였던 “뉴디스플레이” 전략으로 성공한 사례가 이제는 박물관 소장품 전시에서 하나의 전범(典範)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대의 미술관들은 미술관의 존립이유를 전통적으로 정의된 기능 속에서 찾기보다 대중과의 관계 속에서 찾고자하고 있다. 즉 미술관을 찾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이며 관람자들이 왜 미술관을 찾을까, 그들이 미술관 방문에서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 그리고 미술관의 방문경험이 그들의 삶에 어떠한 영향을 줄 것인가 이런 측면에서 미술관을 바라다보면 우리의 미술관들이 이런 문제에 제대로 구조적으로 대응해나가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 보인다.
모든 미술관과 박물관들이 그 놓여있는 여건들이 조금씩 다르다. 소장품의 분야와 조직구성과 지배구조, 지리적, 환경적, 사회경제적 여건, 주 관람층의 성향.... 이런 것들에 따라서 어떤 성격의 전시를 하고 어떤 기능과 활동에 역점을 둘 것인지 좀더 분화되고 세련된 접근방식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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