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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취향에도 뼈대가 있다?

강성원

요즘 생각하고 있는 화두는 ‘취향(趣向)에도 뼈대가 있는가?’ 하는 것이다. 취미의 방향에도 잘, 잘못이 있고 취향에도 질(質)의 위계가 있다고 믿는 사람은 민주주의와 대중사회의 추세를 거스르는 사람이다. 요즘은 이렇게 얘기한다. 각자의 취향은 가치상 동등하게 교환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특별한 취향이 없는 사람도 있다. 자타가 공인하는 무취미의 인간이 문화적일에 몸담고 먹고사는 경우도 흔하다. 민주주의를 행위 정당화의 유일한 정치적 가치로 믿는 사람은 취향의 차이와 평등함을 긍정하는 것이 옳다. 취미와 무취미는 개인들이 살아가는 방식의 재현의 정치학이기에 말려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신의 취향을 재현할 수 있어야 자유감을 맛본다. 취향은 개인의 감정이 세상을 어떻게 보느냐의 문제일 것이기 때문이다. 취향은 세상에 대한개인의 발언이다. 고민은 이 지점에서부터 시작된다. 삶의 모든 부분에 이 문제가 엉켜있다. 누군가가 현실적으로 믿는 유일한 정치적 가치가 민주주의일지라도, 타인의 취향은 그에게 때로는 견딜 수 없는 지루함이거나 환멸 혹은 경멸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 물론 타인의 취향이 모두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그런 취향들이 있다는 것이다.<문제는 이런 일들이 공적인 부분에서 일어날 때이다. 누가 누구의 취향을 타박할 수 있는가? 취향을 절충해야하는가? 아니면 취향의 재현을 사안별로 혹은 비례대표제로 적용할 것인가? 이념의 시대 취향은 ‘몰고 가기’로 정당시됐다. 하지만 시대가 발전하면서 몰고 가기가 윽박지르기라는 것을 누구나 다 인정한다. 그렇다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취향 사이의 가치등급을 정할 수밖에 없는가? 이를 정하는 가장 손쉬운 방식은 권력과 자본에 의해서 정하는 방법이었다. 실제로 그렇게 되어 있다. 조금 다른 문맥이긴 하지만 화폐란 것도 원래 이와 같은 문제, 즉 인간이 만든 물건들 사이의 ‘질적 가치’의 동등한 교환 문제 때문에 생겨났다고 들었다. 취향의 차이를 인정하는 시대, 미술작품 평가는 무정부적이거나 아니면 디자인 명품에 준하는 선진기술과 세련됨을 갖추었느냐로 되어 있다. 취향의 최종심급은 명품에 어느 정도로나 유사한지이다. 알고 보면 이는 유사이래 변하지 않은, 취향의 품격을 판단하는 기준이다. 이를 생각하면 인간 사회가 전혀 변하지 않았음을 느낀다.

나는 어떤 다른 재현 기준을 찾고 싶다. 이것은 의미의 최종심급에 관한 문제이다. 비록 누가 말했듯이 ‘의미’가 지속적으로 미끄러지는 어떤 것일지라도, 나는 그렇게 미끄러지는 의미를 붙잡는 일을 해온 것이 인문과학, 즉 인간의 문화라고 믿는다. 취향 싸움의 무정부주의나 공허함은 ‘의미의 문화’ 를 세우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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