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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우리에게는 왜 세계적인 작가가 없는가

고충환

일전에 우리에게는 왜 세계적인 작가가 없는가가 곳곳에서 이슈화되었다. 사실 첨예화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미술은 국가적 지원이 없이는 세계적인 작가를 키워내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미술이란 창의력과 상상력의 산물이다. 그리고 상상력이란 오랜 기다림 끝의 영감(靈感)으로써 자신만의 고유한 언어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기본적인 상황이 고려된 문화정책이 전제될 때에만 비로소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가진 작가에 대한 자부심을 우리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를테면 어떤 작가의 창의력이나 상상력이 단연 돋보일 때 그 작가에게 작업 환경을 국가적 차원에서 마련해줘야 된다는 것이다. 1년이나 2년의 단기간이-이는 사실 일상에 대한 강박증을 잠시 유예시켜주는 것밖에 안 된다- 아니라 최소 10년 동안은 계속 작업에만 복무하도록 일상적인 것들에 대한 뒷받침이 돼줘야 할 것이다. 더불어 타 예술분야와는 달리 만국공용어인 세계 미술에 그 작가의 언어가 제대로 발화할 수 있도록 외교적인 노력도 함께 기울어야 할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도 미술문화는 경제적인 논리가 아니라 복지정책으로 접근해야 한다. 삶의 질을 높이고, 각박한 자본주의 사회를 순화시키며, 자국에 대한 문화의 자긍심을 갖게 만들며, 그리고 이창동 문화부 장관이 시나리오도 쓰고 감독도 했던 초록물고기 박하사탕 오아시스에서처럼 사회에 만연한 허위의식을 파헤치며 진정한 삶의 의미를 회복시켜줄 수 있는 것이 예술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사회에 여전히 잔재하는 예술을 하면 밥 빌어먹는다는 식의 통념부터 바뀌어야 한다. 예술가에 대한 그런 식의 통념부터가 문화발전의 저해 요소인 것이다. 이를 불식시키기 위해서는 문화정책 입안자들이 가시적인 성과보다는 예술가에 대한, 예술에 대한 철저한 이해 속에서 제대로 된 초석을 마련해야 되리라 본다.<미시적인 데까지 미칠만한 국가예산이 없다는 것은 획일화된 발상이다. 문화세(稅)를 몇 푼 되지도 않는 공연 티켓 따위에 부과할 것이 아니라, 이를테면 수입 명품 류에다 부과하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수입 옷이나 장신구들이나 가구들의 디자인이 국내산과 월등히 다르다고들 흔히 말한다. 그것이 바로 그 나라 문화가 일궈낸 브랜드고 국가 이미지인 것이다. 우리 또한 그런 브랜드와 이미지를 갖기 위해서라도 문화에 대한 지원은 더 많이 더 세부적으로 그리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삶을 죽이는 국방비 예산이나 군인들에 대한 대우에 비해, 삶을 살리는 예술에 대한 예산이나 예술가에 대한 대우는 미천하기가 이를 데 없다. 이를 생각하면 세상은 여전히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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