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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40대 미술가의 대략난감, 시대유감

김석

21세기 동시대 미술은 어느 면으로 보나 속도와 관계가 깊다. 시간성의 속도 개념과 미술의 유행개념과는 맥락적 차이가 존재하지만, 아무튼 이 시대의 변화무쌍한 속도에 발맞춘 미술표현이란 아무래도 진정성을 차마 버리지 못한 40대 미술가들의 관점에서 보자면 다소 거리감을 느낀다. 한편 간과할 수 없는 점은 화랑이 직면한 생존전략에 의해서 젊은 미술가들과 화랑과의 생산적 질서가 공고하게 맞아떨어진다는 점이다. 요컨대 최근 경기활황으로 젊은 미술가들의 미술품에 대해 ‘묻지만 투자’ 라는 기이한 현상을 바라볼 때 더욱 그렇다. 본질적으로 미술작품이 간직한 철학적 내밀함, 시간성의 사유 등 미술의 진정성 표출에 대한 짝사랑은 일순간 미술품을 구입하는 소비자의 기호와 단기간에 소통을 이루기 위한 경영전략에 의해 상처를 받는다.


거두절미하고 이 글은 40대 우리시대 미술가들의 처지를 말할 뿐이다. 우리나라 40대 미술가가 미술판에서 살아남기 위한 그 처절함, 진정성은 이 글을 읽는 동년배 선,후배들에게 대다수 공감을 느끼지 않을까 생각한다. 80년대 전,후 학번세대인 40대는 그야말로 ‘낀’ 세대가 아닐까? 80년대의 민주화항쟁 시대를 거쳐 생성된 자율성은 요즘의 20대 30대처럼 물질과 정보의 풍요를 경험해 보지 못했으니 사고의 유연성이 부족할 수 밖에 없다. 특히 ‘예술가는 배고파도 진정성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는 교조주의적 진리에 융통성 없이 작업에 매달렸고, 스스로도 즐거움을 갖지 못하며 작품제작을 했으니 말이다. 이것은 필자의 독단적 판단일 수 있지만 대체적로 부인할 수 없는 과거였으리라.


미술계 40대 오늘의 현상

소위 잘나가는 작가로서 인정받지 못한 무기력의 두려움과 경제적으로 안정되지 못한 상황은 어디에도 끼지 못하는 시대적 유감을 발생시킨다. 이를 테면 20대 30대의 젊은 미술가들을 지원하는 그 흔한 전시공모에도 포트폴리오를 내밀지 못하는 우울함은 비록 필자만의 고민은 아닐 것이다. 40대가 창작지원프로그램이나 전시공모에 자료를 낼 엄두가 생기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는 대다수 심사의 주체가 유행에 민감한 평론가와 젊은 큐레이터이기 때문이며 전시공모 행사의 성공여부는 미술판에서 돋보이는 ‘한 껀’을 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화랑이나 미술관에 전시기획서를 제출해서 전시기회를 얻는 것은 어떤가,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대관을 해서 전시를 하자니 높은비용과 전시장의 성격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전시공모를 내자니 후배 미술가들 때문에 민망스럽다. 미술판의 허리세대 40대의 현실이 이 모양이니 시대유감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는 아직 인정받지 못하는 40대 미술가들이 겪는 불운만으로 해석해야만 할까? 이점에서 40대 미술가는 무척이나 힘들다. 그리고 고민스럽다. 근래 청년(젊은) 미술가들은 과거보다 좀 더 나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황적 조건에 놓여있다. 그리고 도전적으로 창작활동을 할 수 있는 여건이 점차 개선된 것이다. 이런 상황의 시기심 때문인지 양비론적 시각이 생길 수 밖에… 아무튼 40대의 대략난감은 이와 같은 상황에서 발생한다. 2007년 지금의 전시형태는 대관화랑을 중심으로 또는 문광부의 지원금에 의한 공모형태 그리고 기업의 지원을 받은 전시공모의 전시형태를 갖는다. 더불어 학위청구전과 아마추어 화가의 전시는 대관화랑에서 줄줄이 이어진다. 이럴 때 40대 십  수년의 진정성을 간직한 순진한 미술가들은 대략난감과 시대유감에 빠진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함을 어찌 하오리까. 아무튼 미술의 진지함이 어디로부터 묻어나오는가에 늘 궁금해 하지 않을 수 없다.  과연 어찌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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