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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미술계의 검증시스템을 논하라!

장동광

‘동국대교수 신정아 허위학력’ 사건으로 다시 한 번 우리 미술계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이고 말았다. 그간 의혹으로 잠재되어 왔던 사실이 현실로 확인되면서 그녀를 비호했던 세력에 대한 거친 비판이 거세게 몰아 닥쳤다. 그런데 어떻게 인터넷이라는 20세기 컴퓨터 문명이 인간의 일상을 24시간 사주경계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자신의 행적들이 본인도 모르게 업로드 되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모든 정황을 종합할 때, 이번 사기극의 주연배우인 신정아씨에게 모든 책임이 있음은 당연하다 못해 필연적이다. 더구나 인간으로서도 가장 나쁜 것은 미국으로 도주하면서까지 언론에 그 책임을 전가시키고 있는 행태에서 그 극점을 이룬다. 자신의 허황된 사기극의 전말과 과오를 고해 하기는 커녕 자신의 허위인생을 들추어낸, 그래서 자신의 성공야욕을 끌어내렸다고 믿는 언론에게 끝까지 총구의 방향을 되돌려 놓은 것이다. 아, 이토록 가열찬 욕망을 지닌 한 여성이 큐레이터로 지난 10여 년간 하이에나 같은 충혈된 눈빛으로 미술판을 휘젓고 다닐 수 있었던 것은 그간의 사립미술관들의 큐레이터 채용과 처우문제, 동국대 미술사학과 교수 임용과정, 광주비엔날레의 전시총감독 내정시스템을 둘러보면 결코 불가능한 일만도 아닐 듯싶다.

<검증이 없는 허상
이번 사태의 전말을 돌이켜볼 때, 다음 네 단계의 검증이 가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시스템이 전혀 작동되지 못했다는 것은 깊이 되새겨보아야 할 점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검증’이란, 누군가가 무엇을 했다는 것에 대한 본인의 진술에 대한 객관적 확인 작업이다. 객관적인 것은 문서, 서류, 증명, 흔적과 같은 물증이다. 그러면 1997년 사간동 K미술관에서 신정아를 급작스럽게 큐레이터로 채용할 당시, 캔자스주립대(이후 신정아 씨가 허위학위를 주장한 대학은 주립이 아닌 캔자스대이다) 학사, 석사학위 이력서를 내밀었을 때, 적어도 학교가 발행한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를 제출 받았어야 했다. K미술관의 이처럼 허술한 인력채용시스템은 이후 신정아씨가 허위학력을 계속 둘려대면서 미술판에서 큐레이터로서 깃발을 휘날릴 수 있게 한 악의 콩나물시루였던 셈이다. 이 첫 번째 검증시스템 마비가 결국 그녀를 신데렐라처럼 만들어 미술판에 화려하게 데뷔 시킨 ‘허위인생의 고향역’ 이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두 번째는 2002년 S미술관이 예일대 박사학위 과정 재학을 거짓으로 의심하고 권고사직 시킨 신정아 씨를 소문의 진위여부를 확인하는 절차 없이 또다시 채용한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와중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은 신정아의 칼럼, 인터뷰 기사를 제공하였고 월간미술은 2003년도‘전시기획상’을 수여하며 그녀의 허위학력으로 교묘히 포장하여 성공(?)했던 전시와 큐레이터의 역할에 대해 기립박수를 친 바 있다. 이 언론매체들에게 왜 검증하지 않았느냐고 요구할 수는 없는 문제지만 기획수준에 있어서 논쟁의 여지가 있었던 전시와 서문들, 논지 없는 에세이들, 학구적 논문 한편이 없었던 큐레이터를 대중적으로 부각시켰던 것 역시 검증부재사회의 적나라한 실상이 아닐 수 없다.

세 번째는 동국대가 신정아를 교수로 채용한 2005년 9월 전후의 일이다. 짐 길레스피가 감독한 공포영화 <나는 네가 지난 여름에 한일을 알고 있다(I Know What You Did Last Summer (1997)>를 떠올리게 하는 신정아의 과감한 사기극은 논문표절과 예일대 박사학위증 위조로 클라이막스를 향해 나아갔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적어도 100년 역사를 지닌 종합대학이라는 곳이 교수를 채용하면서 학력인증서류와 교수자격의 유무를 판단할 수 있는 물증을 재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다. 그런데, 이번 사기극 의 클라이막스이자 위조사건의 종막이 된 것은 광주비엔날레 국내 전시 예술감독 내정이었다. 만약 이번 위조사기극이 들통나지 않았다면 내정이 아니라 확정이 되었을 전시예술감독 선정절차는 그야말로, 검증이 있고 없음을 떠나서 어떻게 36세의 검증 불가능한 큐레이터 신정아가 내정될 수 있는 지를 포함하여 국제적인 코메디, 그 자체였다. 전시예술감독추천소위원회 한 이사가 사퇴를 앞둔 이사회에서 이렇게 말한 것이 한 언론에 보도되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신정아가 잘하는 것으로 나오더라.....습관처럼 거짓말 하는 사람이 잘못이지, 속은 사람이 무슨 잘못이냐...”아, 인터넷....언론의 박수 속에서 마법의 연기로 피워 올랐던 신정아씨의 활약상이 물증으로 남아있는 인터넷이 검증의 최후지대일 줄이야!

<말할 것도 없이 이번 신정아 허위학력 및 가짜 박사학위 파문은 거짓과 위장으로 자신의 출세욕구를 충족하려 했던 한 개인의 극단적인 행태, 그것이 빚어낸 희대의 사기극으로 결론났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우리 미술계에도 파다한 명문대 학벌주의, 외국유학 지상주의, 허세에 찬 처세술 옹호주의 같은 심각한 병리현상에 대해 다시 한번 자각케 해주었으며, 이러한 허위인생들을 검증할 시스템의 확립을 위한 논의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임을 뼈아프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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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칩니다

위 “미술계의 검증시스템을 논하라”의 내용 중 필자의 “...이 와중에 조선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등은....”에 관한 언급은 <한겨레21>(2007.7.2) 문화란에 노형석 기자가 쓴 “신정아는 주도권 다툼의 산물인가”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원고 내용 중 <세계일보>가 등장한 부분은 2005년 신정씨의 예일대 박사학위 수여사실을 다룬 <국민일보>의 “큐레이터 신정아씨 “대중 사랑받는 미술관 만들게요”(2005.5.8)를 염두에 두고 썼던 것입니다. 그런데 본인의 실수로 해당 언론사의 표기가 잘못되었습니다. 이에 필자는 <세계일보>에 본의 아니게 누를 끼친 것에 대해 깊은 사과를 드리며, 원고 내용 중 언론사명을 <국민일보>로 정정합니다. 원고 내용에 오류가 없도록 철저히 확인하지 못한 것에 대해 서울아트가이드 독자 여러분께도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2007.8.17
-장동광(독립큐레이터, 서울대 강사)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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