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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무명작가 유작전 유감

김성호

이 글은 유작전 일반에 대한‘입바른 소리’이기보다는 한 무명작가 유작전을 둘러싸고 체험했던 작금의 미술현장에 대한‘쓴 소리’이자 ‘푸념’이다. 예술가로 살고 있는 이들은 성인이 될 무렵 이미 한두 번쯤, 자기와 의 예술적 싸움을 선택하기로 결단한 사람들이다. 고인이 된 S씨 또한 그러했다. 늦은 나이에 미술대학에 입학하기를 작심한 것도 그러했고 졸업 후 몇 해가 지나지 않아 미술학원 운영을 던져버리고 작업에만 매진하는 배고픈 예술가로 남기를 선택한 것도 그러했다. S씨의 선택은 일견 우매하거나 어리석어 보일 수 있다. 현실을 벗어나 작업실에서 창작에만 매진한다고 이 비루한 현실이 예술가들을 칭송하지는 않는 탓이다. S씨는 그럼에도 자신의 작업에만 매진하다가 젊은 나이에 불치의 병으로 타계했다.

문제는 그가 남기고 간 작업들을 세상에 알리고 예술소통에의 길을 열어주고자 하는 지인들의 버거운 노력이 짐처럼 남겨졌다는 사실이다. 그의 유작전을 열기 위한 지인들의 요구와 공감은 지대했지만 막상 그 일을 자신의 일처럼 총대를 메고자 선뜻 나선 이들은 많지 않았다. 전시를 위한 막대한 경비며, 공간 섭외며, 작가가 남기고 간 작품들을 모으고 분류해서 그의 흔적을 되살려내는 모든 일들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닌 탓이다. S씨의 유작전 기획에 미미한 차원으로 관여했던 필자로서는 모 재단 기금 신청을 통해 일부 자금 마련에는 성과를 거둘 수 있었지만, 전시 공간 섭외에는 실패했다. 그가 생전에 익히 알려지지 않은 작가란 이유가 제일 컸다. 안면이 있는 미술관이나 갤러리들 역시 전시 일정이나 작품 경향의 차이를 들어 에두르며 정중한 사의를 표명했지만 결국 그것은‘잘 알지도 못하던 작가의 느닷없는 유작전’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는 미술계의 시각을 고스란히 드러내 보인 것이나 진배없었다. 일을 추진했던 필자의 역량부족이 제일 큰 이유일 터이지만, 아쉬운 결과였다. 결국 유작전은 대관료를 지불하고 공간을 잡는 것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었다.


좋은 작품의 발굴은 미술매개자의 몫이다
작금의 현실을 사는 무명의 예술가들에게는 작품 창작에 매진하는 것만이 고유의 역할이 아니게 된지는 오래되었다. 좋은 기획전에 초대될 수 있기 위해 자신의 작품을 기획자들에게 적극 알려야 하며, 자신의 전시를 저널리스트들에게 홍보하는 번거로운 절차도 감내해야만 한다. 나아가 그들에게는 비굴한 형태의 비즈니스조차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비즈니스에 앞장서거나 대중과의 소통을 운운하며 그들의 기호에 영합하거나 센세이셔널을 주요 전략으로 삼는 작가치고 좋은 작업을 보여주는 작가는 드물다. 유명세를 떨치는 누구, 누구처럼 쓰레기를 생산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비즈니스나 쇼맨십을 통해 미술현장에서 잘 나가는 작가로 자리매김하는 것과 작품이 좋은 것과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무명의 작가들에게 우선적으로 요구될 것은 차라리 무명의 세월이 길더라도 당신만의 좋은 작품 창작을 위해 매진하라는 것이다.

좋은 작품의 생산을 위해 창작에만 매진해 온 무명의 작가들이 있다면, 그들의 우둔해 보이지만 순수한 예술 방식을 질타할 일이 아니라 그들을 적극 발굴해내야 할 과제가 미술매개자들에게는 있다. 그런 작가 중 유명을 달리한 작고작가가 있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무명의 작고작가를 대면하면서 더 이상 생산할 상품이 없는 죽은 기계로 치부하거나, 생전에 알려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평가절하하거나 그를 위한 전시 자체를 무모한 모험으로 재단하려는 식의 미술현장의 냉랭한 태도를 한편으로는 이해하면서도 그것이 그저 아쉬울 따름이다. 물론 생전에 유명했던 작고작가일 경우는 달랐을 테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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