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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한국 블록버스터 전시 : ‘죽기 전에 꼭 봐야할 그림’인 까닭은?

김연진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그림’이 많지 싶다. 2000년 덕수궁미술관의 오르세 미술관전을 그 시작으로 ‘샤갈전’, ‘달리전’, ‘피카소전’, ‘루브르전’ 등에 이어 얼마 전 마친 ‘오르세미술관전’(4.21-9.2 한가람미술관)과 ‘빛의 화가 모네’(6.6-9.26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 수십만 명의 인파가 몰렸다 한다. 이들 전시를 흔히 ‘블록버스터’형 전시라고들 한다. 전시작 수가 대규모인 전시라기보다 전시 비용이 많이 들고 관람객이 많이 든 전시에 빗대 이런 선정적인 용어를 쓰고 있다.

<이들 전시들 관련 기사를 검색해 보니 그 압도적인 수만큼이나 천편일률적인 내용에 놀랍다. 특히나 ‘오르세미술관전’에서 밀레의 <만종>이 선보였다는 것에 쏟아진 관심은 <만종>이‘죽기 전에 꼭 봐야 할 그림’이라는 것에 이의를 갖게 하지 않는다. 이들 전시에 대한 가장 흥미로운 반응 중 하나는 블록버스터 전시는 그에 대한 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이런 유명한 작품들을 현지로 여행하지 않더라도 비교적 저렴한 비용에 감상할 기회를 준다는 의미에서 적극적으로 환영해 마지않는 다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서도 비판적인 평을 찾을 수 없으니 그‘많은 비판’이 어떤 것인지 자못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직접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 다는 것만으로 그 ‘많은 비판’을 상쇄할는지 알아봄직하다.

‘전시 혹은 미술품의 상업화’, ‘미술품에 대한 경험의 질 저하’등 등 외에 ‘블록버스터 전시’에 가장 흔히 제기되는 비판은 ‘미술사의배타적 혹은 배제적 규범화’이다. 기존의 모더니즘에 가장 철저히 합법화된 미술가의 작품들만을 선정해 전시를 지속하여 남성중심의 주류 미술만을 대표하며 그 외 다른 미술을 철저히 배제한다는 이유에서 비판되어 왔다. 요 근래 미국에서 유행하는 ‘또 다른 모더니즘(Other Modernism)’의 반영인 듯싶다. 그런데 이런 유의 비판은 우리에게 먼 나라 이웃나라가 아니라 먼 나라 남의 나라 이야기이다.

<우리나라에 열리는 블록버스터 전시가 비판 받는 경우 대개는 주류미술의 대표작들이 포함되지 않는 알맹이 없는 전시라는 이유이다. 이런 주류 미술품이 포함된 경우는 밀레의 <만종>이 포함된 오르세 미술관전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찬사를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듯 상황의 특성이 있는 만큼 현재 우리 미술계에 범람하고 있는 블록버스터 전시에 대한 우려는 기존의 논의와 달리할 필요가 있다.


전시 유치의 타당한 철학이 필요하다
이들 블록버스터 전시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현재 대한민국의 대표 전시 공간에서 그것도 가장 좋은 전시 시즌에 5개월 이상 진행하면서 국내 최초로 서구 모더니즘의 대표작품을 선보인다는 것 외에 전시 의의를 찾아 볼 수 없다. 도대체 현재 대한민국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왜 하필‘빛의 작가’로 제목하여 모네전을 하는지 왜 지금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서 오르세미술관전을 해야 하는 지에 대한 이유가 없다. 현재 우리 문화ㆍ사회ㆍ정치 현상과의 연관성은 차치하고라도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현대 미술계의 이슈와의 관련성을 찾을 수 없다. 미술 전시에 있어 전시품과 전시장소(venue)를 결정하며 시ㆍ공간을 초월한 전시 목적을 갖는 경우는 미술관 존재 자체에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예술의 전당이건 서울시립미술관이건 그 곳이 설령 대관중심이라 할지라도 전시를 유치하는 기준과 원칙이 있을 것이며 그것을 감독할 전문인력과 자문기관이 있을 것이다. 다른 어떤 전시보다도 이들 전시를 유치해야 하는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며 그 이유는 공익을 대표하는 것이여야 한다. 특정 나라의 미술품, 미술사조가 선호되어서는 안 된다. 이번 ‘오르세미술관전’을 홍보하며 강조한 된 것이 밀레 <만종>의 1000억에 달하는 보험가였다. 전시기획자는 이 액수가 이번 전시를 위해 프랑스 정부가 특별히 터무니없이 낮게 책정된 것임을 재차 강조하였다. 물론 이 기획자의 뛰어난 수완과 열정이 이에 큰 역할을 했을 것을 의심치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이들대형미술관들의 국외 순회전 정책의 원칙과 기준을 좌우하는 결정적 요소이기 힘든 것도 사실이다. 덧붙여 서구 미술사에 가장 유명한 시기의 미술품을 직접 감상할 기회를 제공하는 것으로 과연 미술관의 교육적 기능을 수행하였다 할 수 있을까? 많은 국ㆍ공립미술관들이 이런 유의 ‘블록버스터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전시 의의가 제발 무슨 나라와 수교 몇 십 주년 기념이거나, 어느 작가 추모 몇 십 주년이거나, 어느 나라 어느 도시와 결연 등 외가 있기를 바란다.‘죽기 전 꼭 봐야 할 그림’인 까닭을 알고자 하기 때문이다.

※ 김연진씨는 이대 영문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미국 시카고대 대학원 미술사 석사, 박사 수료, 현재 이영미술관 부관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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