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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우정총국

최열

조선 정부가 1884년 4월 22일 우정총국(郵政總局)을 설립하였는데 여기에 안중식이 사사(司事)로 사했다. 안중식은 여기서 우표도안과 같은 업무를 담당했던 것 같다. 1881년 9월부터 한 해 동안 청나라에서 서양미술, 사진술, 제도법을 배우고 귀국해 기계국에 근무하고 있던 터였으므로 국에서는 이러한 기량을 지닌 인물이 필요했을 것이다. 정부는 다섯 가지 종류의 우표를 발행하기로 하고 작에 들어갔으며 10월 17일 새로 지은 건물 낙성식(落成式)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이 날 옥균을 비롯한 개화당이 정변을 일으켰다. 바로 이 갑신정변으로 우표 또한 사용하지 못했는데 정변 과정에 힘을 쏟은 오세창과 안중식은 3일 만에 정변이 실패하자 도피생활에 어들었다. 오세창은 10월 27일 경기도 광주에서 체포 당했다가 석방되었지만 안중식은 아예 일본으로 망명을 떠나고 말았다.
정변이후 우정총국이 폐쇠당해 버렸지만 지금까지 한 채가 남아갑신정변의 유적임을 알려주고 거니와 미술사를 공부하는 나로서는 그 보다는 안중식이 우표를 도안하고 있었던 과거가 더욱 소중하다. 정세가 바뀌자 귀국한 안중식은 정부의 기록화 사업에 참가하여 관료로 전전하다가 중국, 일본행을 빈번하게 하여 다시는 이 우정총국 건물에 발을 들여놓을 새가 없었다.





우정총국 건물은 그 뒤 한어학교(漢語學校), 중동학교(中東學校)로 사용했는데 1972년 12월 체신부가 인수해 체신기념관으로 단 장 하 였 다 .1987년 5월에는 건물을 크게 보수하고서 기념관(郵政記念館) 으로 활용하여 오늘에 이르렀다. 안중식이 그 때 도안한 우표를 지금은 볼 수 없으나 20세기 술계의 태두였던 안중식의 숨결이 남아 있는 유일한 건물이니 이곳을 지날 때마다 그를 뵙는 듯 하여 감
개가 절로 흐르곤 한다.

※ 안중식(安中植1861-1919)은 20세기 미술계의 태두였다. 뛰어난 사회활동가였던 안중식은 오세창과 더불어 개화당에 참가하였고 대한제국 시절 국가 회화사업에 적극 참가하였으며 고종 어진을 제작해 당대 어용화사로 명성을 드높여 갔다. 1904년 무렵 자신의 집에 경묵당(耕墨堂)을 열고 제자를 아들처럼 받아들였으며 대한자강회, 대한협회에 참여하여 자강운동가로도 적극 나섰다. 하지만 국이 일제에 강제합병 당하면서 일제에 협력하는 가운데 실력양성운동노선을 취하여 서화미술회 장으로써 후학양성에 전력을 기울였다. 그 요람에서 자라난 후예들이 20세기 미술계를 주름잡는 대가로 성장하였으니 그는 위대한 스승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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