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박수근(朴壽根 1914-1965) 고택

최열

미술유적 답사(1)


생각만해도 가슴저린 사람이 있다. 1914년 2월 살에는 강원도 양구에서 태어난 박수근. 사업실패로 초등학교만 졸업한 채 홀로 생계를 이어가면서도 수채화 도구를 움켜쥔 채 화가의 꿈을 버리지 않았던 사람. 조선미술전람회 낙선에도 뜻을 굽히지 않았던 것은 미술이 신앙이었던 탓이겠다. 1940년 황유엽, 장리석과 같은 미래의 화가들과 어울렸고 1949년에 이중섭을 만났는데 두 사람의 미래가 지금 같을 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지난 3월 황사바람 쌀쌀한 어느날 창신동 박수근 고택엘 갔다. 한국전쟁 기간 동안 미군부대에서 초상화를 그려 번 돈으로 구입한 어엿한 한옥에 입주한 때가 1952년이다. 바로 이집이 오늘날 그렇게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명작 <집>, <노상에서>와 같은 작품들이 태어난 산실이다. 누가 이 그림을 사겠는가마는 그나마 미국 외교관들의 눈에 들어 싼 값에 팔려나갔고 자식을 키우며 고단한 삶을 꾸려나갔다. 1957년 또 다시 낙선의 고배를 마시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뚫린 가슴에 서글픔만 커갔다. 불명예는 곧장 회복되었으되 한번 망친 건강은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1963년 전농동으로 떠났지만 두 해 뒤 세상과 하직해야 했다.





지금은 국밥과 호프집으로 바뀌어 버려 옛 모습은 간데 없다. 이곳을 지나치는 그 누군들 알겠는가. 전후 황폐한 시절, 국민화가의 산실임을. 그나마 지난 해부터 문화재청이 나서서 근대문화재로 지정하고 국가에서 구입하여 복원, 보존을 하겠다고 하므로 잔뜩 기대를 해보고 있지만 그게 간단치가 않다. 재개발 열풍에 휩싸여 주인이 내놓을지조차 의문스러우니 말이다. 하지만 말이다. 국민화가를 국민이 버려서야 되겠는가. 희망을 버리지 말 일이다.

- 日雲美術硏究所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