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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근현대미술교과서의 또 다른 가치

김용철

미술교과서는 공교육에서 이루어진 미술 교육의 내용을 알려주는 문헌자료,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꿈을 키워준 통로였고 도달해야 할 목표였으며 때로 별천지였다. 지금은 익숙해진 ‘미술’이라는 개념이 처음 수용되어 뿌리를 내린 과정 역시 미술교과서라는 소중한 창을 통해 알 수 있다. 1894년 갑오개혁을 거치며 ‘도화’로 불린 이 미술 과목은 이전시대와 결별하고 식산흥업시대의 기초를 이루는 분야로 자리를 잡아갔다. 대한제국기를 거쳐 미술교과서는 ‘도화임본’으로 불리며 새나 물고기와 같은 동물 등을 베껴 그리기 위한 견본이 실렸다. 자연경치의 묘사에는 시점이 하나로 통일되고 서양의 투시원근법을 바탕에 둔 묘사를 통해 현실에 다가갔다. 베껴 그리기가 중심을 이룬 점은 유감스러운 대목이지만, 당시로서는 새롭고 낯선 방식을 통해 현실 속의 형체를 파악하고 묘사하는 훈련이 미술교과서를 매개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아쉬운 것은 일본을 거쳐 수입된 도화 과목의 학습내용이 거의 그대로 사용된 사실이다. 모필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 연필을 중심으로 할 것인지의 논쟁을 거쳐 뿌리를 내린 모필 중심의 일본 도화교육이 거기에 옮겨져 있었던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1910년대 이후 해방이 될 때까지 미술교과서에는 조선의 생활과 관련된 각종 정물이나 동물을 통한 미감교육이 이루어졌고 그것은 일본의 미술교육을 토대로 한 것이지만, 구성이나 디자인 등의 분야에 드러난 미국 등 서양의 미술교육이 영향을 준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중일전쟁 이후 내선일체의 구호 아래 황민화정책이 이루어진 시기에는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황국신민의 충성스러운 생활모습이 그려졌다. 해방 후 서양의 미술교육이념이나 그 내용이 직접 수용되기 시작하였으나 이내 한국전쟁의 여파가 초등학교 미술교육에도 반영될 정도로 각 시대마다 미술교과서는 민감하게 시대를 반영하였다. 



물론 교과서는 어두운 흔적으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교과서 속의 도판을 통해 미술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다. 그들이 동경했던 미술가에는 다빈치나 미켈란젤로가 있었고 피카소나 밀레가 있었다. 정선이나 김홍도, 이중섭과 박수근, 권진규가 그 대상에 더해진 것은 나중의 일이지만, 각 층위의 정체성이 무엇보다 중요한 미술 분야의 사정을 감안하면 그나마 중요한 진전이 있었던 셈이다. 1960년대를 지나며 유럽이나 미국의 추상미술, 현대미술의 다양한 전개양상과 더불어 한국미술사의 비중이 조금씩 커지고 미술교육에서도 학생들의 민족적 정체성의 확립에 도움을 주려는 시도가 늘어난 것은 눈에 띄는 변화다. 서양미술을 절대시하는 시각에서 벗어나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려는 움직임은 오랜 식민지 시대의 잔재로부터 벗어나 정체성이 분명한 미술가의 양성을 지향한다는 점에서 분명 고무적인 현상이이다. 오랜 시행착오와 진화의 과정이 바로 미술교과서의 역사가 적나라하게 드러내주고 있는 셈이다.


소중한 자료박물관의 미래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개최한 이번 한국근현대미술교과서전시는 김달진 관장이 평생을 바쳐 다각도로 수집해온 미술자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소중한 결실이다. 그의 노력을 통해 모아진 수많은 미술자료들이 이런 전시들을 통해 그 가치를 인정받고 새롭게 해석된다면 한국의 미술계는 보다 풍부하게 조명될 것이다. 특히 이번 전시는 미술교육의 역사 그 자체는 말할 것도 없고 미술 개념이 수용되고 뿌리를 내린 과정을 이해하는 데도 대단히 중요한 의미가 있는 전시다. 통시적인 시각에서 지난날에 이루어졌던 미술교육을 조망하고 반성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주는 이런 전시야말로 새로운 미술교육의 이정표를 세울 수 있는 중요한 전기가 될 것이다. 미술교육 전문가는 물론이고 미술사 전공자, 디자인 전공자들에게도 중요한 정보와 인식을 제공하게 될 전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이 박물관이 세운 여러 계획들에 차질이 생겨 그 미래가 불투명해진 사실이다. 교양을 가진 다수가 물량주의에 매몰된 블록버스터 전시회의 그늘에 가려져 있는 이런 의미 있는 전시에 주목하고 소중한 박물관의 미래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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