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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우리는 왜 2017년 ‘do it’ 서울 전을 하는가?

심현섭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do it 2017, 서울’전(4.28-7.9)의 의도는 도발적이다. 끝이 나지 않는 전시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1993년, 파리에서 한 명의 큐레이터와 두 명의 작가가 모여 영원히 끝나지 않는, 유연하고 결말이 열린 전시를 구상했다.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나이, 25세였다.

오쿠이 엔위저, 막시밀리아노 지오니와 함께 세계적인 스타 큐레이터로 꼽히는 오브리스트는 작가와 관람자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데 기여해왔다. ‘do it’ 전은 미술 내의 그물망 관계를 중요시한다. 세계 미술계를 열린 시스템으로 보고 관람자의 참여를 매개로 끊임없이 변형하는 연쇄적인 전시 모델이다. 이 모델은 몇몇 작가의 기본적인 지침에 따라 한 지역의 작가들이 작업을 수행한다. 이때 문화의 혼성이 일어난다. 전시장소가 변함에 따라 그 지역의 구조 속에서 예술작품과 그 맥락이 새로운 의미구조를 생산하는 것이다. 일민미술관에서 열린 ‘do it’ 전은 2017년, 서울 버전이다. 





do it 2017, 서울’전시 전경, 제공: 일민미술관, 촬영: 나씽스튜디오

이번 전시가 지금, 서울에서 열린 것을 보면 젊은 큐레이터 오브리스트의 도발적인 전시개념은 24년이 지난 아직까지도 유효한 듯하다. 그러나 이러한 도발은 작가와 그가 제작한 작품의 경계를 불분명하게 한다. ‘do it’의 플랫폼은 예술작품이 매번 다른 형태로 활성화될 수 있도록 작가들이 직접 쓴 작업 매뉴얼, 지시문, 게임 또는 프로토콜을 기반으로 한다. 플랫폼은 정주보다는 이주와 유목을 위한 곳이다. 이 전시에서 이주와 유목의 주체는 완성된 작품도 작가도 아니다. 작품 제작을 위한 아이디어가 세상을 떠돌며 각 장소에 거주하는 작가들의 해석을 요구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조 내에서 그때 거기(1993년 파리)의 의미는 지금 여기(2017년 서울)에서 어떻게 인식되는가? 문화 번역의 목적이 각 장소의 사회·정치·문화적 특수성의 차이를 도출하는데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주어진 차이’일 뿐이다. 과거 제국주의가 그러했듯, 오늘날 세계화의 이름의 제국이 그렇듯 그것은 위계적 담론질서를 위한 토대이다. 1955년‘인간가족’전이 그러했고, 롤랑 바르트는 뉴욕현대미술관(MoMA)이라는 거대미술 제도가 주입하는 가족이라는 이름의 보편성을 비판했다. ‘do it’ 전은 장소들의 차이를 위계적 질서에 포섭한다. 이는 배나 비행기를 탈 필요도 없이 보편성을 담보한 전시 개념만으로 상대를 타자의 위치에 종속시키는 세계화 시대의 진화한 관광주의이다.

오브리스트는 큐레이터로서 예술가에게 유용하고 그들을 돕는 존재가 되고 싶다고 했다. 이러한 열망을 가진 그는 작가를 위한 참여와 네트워크를 강조하는 열린 형태의 전시를 추구하였다. 그러나 예술가를 소통과 참여의 마당으로 끌어낼 때 우리가 잃어버리는 것이 있다. ‘do it’ 전이 축소시키고, 결국 우리가 잃은 것은 창작의 주체성이다. 작품의 근원은 예술가의 창작이다. 그 근원을 얻기 위해 예술가는 때로 가족이나 비평가 등 사람들로부터 고립된다. 소통은 그다음의 일이다. ‘do it’ 전의 해석이 창조적인 모방일지는 모르나, 스스로 견뎌야 할 껍질을 벗어나는 우화(羽化)의 고통을 너무 쉽게 포기한 것은 아닌지, 예술가의 그 고유한 영역에 너무 섣불리 개입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작품들 대부분이 흥미의 수준에 머물면서, 지금 우리의 삶과 현실의 의미에 대해 침묵하는 이유는 감각의 원천에 얽혀있는 신비한 것을 뽑아내는 창작 진통의 결핍과 관련 있다. 작품은 작가의 개성과 의지, 존엄성을 표현한다. 이를 위해 예술가는 고통스럽더라도 고립과 마주 서야 한다. 소통과 관계의 세상이 미술의 세상일지는 모르나, 미술가가 추구할 세상은 아니다. 미술가에게 소통과 관계는 고립 이후에 덤으로 주어지는 선물이다. 2017년, 우리는 왜 서울에서 ‘do it’ 전을 하는가. 이번 전시는 세계화의 시대, 한국의 작가와 미술이 가야 할 길을 묻는다.



심현섭 / 미술평론가 hsshimz@hanmail.net
- 심현섭(1963- ) 상명대 미술이론과 박사과정. 열린미술연구센터 책임연구원, 두루지역디자인 대표, (사)지역재단 편집위원.「 상호소통과 공동체적 방법론에 의한 공공미술」『( 미학예술학연구』, 2016),「 권미원의 장소특정적 이론에 나타난 공동체의 불가능성과 장소해제의 문제」『( 한국예술연구』, 2017)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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