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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모단(毛斷)과 모던, 도안과 디자인 사이- 과도기의 시각언어에서 읽어야 할 것들

최범

데자인의 시대
제목에 들어 있는 ‘데자인’이라는 말 자체가 ‘모던 데자인(2022.11.23-3.26,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전의 시대적 배경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 영어 ‘디자인’의 일본식 발음인 데자인은, 일본식 용어인 도안(圖案)으로부터는 벗어났지만 아직 완전히 영어식으로 발음하지는 못하는 어떤 시대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 전시가 배경으로 하고 있는 시대는 어떤 시대인가. 한홍택의 1958년 전시 제목에서 가져왔다는 ‘데자인’은 과연 어떤 시대의 시각언어인가. 이 시대를 배경으로 그 시각언어를 읽어내는 것이 이 전시 이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전시는 한국 그래픽 디자이너 1세대인 한홍택과 이완석의 기증 작품과 자료를 바탕으로 기획된 것인데, 먼저 이 두 인물의 과도기적 정체성을 주목해볼 수 있겠다. 두 사람 모두 일제 시대에 태어나 일본에서 전문교육을 받고 식민지 조선에서 경력을 시작했으며 해방 이후 대한민국에 와서까지 왕성하게 활동했다는 점이 공통된다. 그런 점에서 이 두 사람의 시각언어 역시 그렇게 시대를 넘어 걸쳐져 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우리는 이를 통해서 거꾸로 이들이 살았던 시대의 의미와 함께, 그 속에서 이들의 활동과 시각언어가 어떠한 연속성과 단절을 드러냄으로써, 그 과도기적 성격을 보여주는지를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럴 때 이 전시에 대한 독해는 한결 입체적으로 될 것이다. 그것은 두 개의 ‘사이’에 걸쳐 있다. 하나는 모단(毛斷)과 모던이라는 시대, 그리고 또 하나는 도안과 디자인이라는 시각언어. 역시 그런 점에서 이 전시는 한국 근대기의 그래픽 디자이너 두 사람에 대한 보고서를 넘어서 있다.



좌) 제2회 한홍택 모던 데자인전_브로슈어, 1958,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연구센터 소장. 제공: MMCA
우) 이완석, 서울바레단, 1950, 종이에 채색, 75.5×51.5cm. 예화랑 소장. 제공: MMCA


모단(毛斷)과 모던 사이
그러면 이 전시의 시대적 배경이 되는 ‘모단과 모던 사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두 개의 근대화 사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하나는 문명개화라고 불리는 ‘식민지 근대화’이고 다른 하나는 산업화라고 불리는 ‘조국 근대화’이다. 그러니까 이 전시는 이 두 개의 근대화의 과도기에 놓인 어떤 시각언어에 대한 보고인 셈이다.

1999년 출간된 김진송의 『서울에 딴스홀을 허하라』(현실문화연구) 이후 붐을 이룬 한국 근대문화 연구는 1920-30년대의 식민지 조선에 처음으로 근대문화가 등장했음을 증언한다. 물론 그것은 식민지 근대화의 산물로서 주로 도회지를 배경으로, 소비생활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화이다. 식민지 조선의 경성에는 모딴 껄이 거리를 누비고 모딴 뽀이가 댄스를 추었다. 이 시대는 모단(毛斷)의 시대였다.

해방 이후 건국과 전쟁을 거쳐 1960년대에 오면 드디어‘조국 근대화’를 기치로 내건 산업화가 시작된다. 한국에서 본격적인 산업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이 전시는 대부분 해방 이후의 작업이 주를 이루지만 시각언어는 이미 그 전 시대인 식민지 근대로부터 넘어온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전시는 문명개화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본격적인 근대화(산업화)는 시작되지 않은 시대, 모단(毛斷)과 모던(Modern) 사이의 시각언어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도안과 디자인 사이
한편 이 시대의 시각언어는 도안에서 디자인으로 이행한다. 하지만 ‘데자인’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아직 식민지의 음성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있지는 못하다. 하지만 도안과 디자인은 단지 단어의 차이를 넘어서 그 자체로 한국 디자인, 나아가 시각문화의 역사를 표상한다. 도안이 모단(毛斷)의 시각언어라면 디자인은 모던의 시각언어라고 할 수 있다.
데자인은 바로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과도기의 시각언어인 셈이고. 전시에 대한 이해는 결국 어떤 시각으로 보는가, 어떤 개념을 매개로 볼 것인가에 따라 달라진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이 전시는 시대와 시각언어라는 두 개의 ‘사이’라는 관점에서 보는 것이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 최범(1957- ) 홍익대 대학원 미학과 석사. 『월간 디자인』 편집장. 디자인 비평 전문지 『디자인 평론』 편집인. 2017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대통령상 수상. 평론집『한국 디자인을 보는 눈』 (안그라픽스, 2006) 외 다수 저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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