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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비엔날레의 안과 밖 - 광주비엔날레와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정형탁

이 전시를 평한다(1)

정형탁 / 계간 컨템포러리아트저널 편집장

 

비엔날레의 안과 밖 - 광주비엔날레와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비엔날레 철이 돌아왔다. 9월 7일 막을 연 광주비엔날레를 비롯, 11일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 19일 첫 비엔날레로 출범하는 프로젝트 대전, 20일 대구사진비엔날레, 22일 부산비엔날레, 25일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등이 모두 9월에 시작했다.
1995년 ‘경계를 넘어’란 주제로 시작한 광주비엔날레의 초기는 ‘지구의 여백’, ‘인+간’ 등 넘고, 허물며, 타자로 향하는 시선들로 가득했다. 97년, IMF를 만난 이후 주제들은 ‘멈춤’이나 ‘먼지 한 톨, 물 한 방울’ 등 오히려 내부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지난 10여 년, 광주비엔날레는 새로운 이슈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다.


‘미디어시티서울2000’으로 출발한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는 당시 고건 서울시장의 정책적 후광을 등에 업고 기술과 산업, 예술의 트라이앵글을 그리면서 100여 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을 쏟아 부으며 시작했다. 정치적인 동력을 잃은 2회 대회부터는 예산이 1/10로 줄어들었고 행사 진행은 외부 전시기획사에 위탁하는 경량화를 선택한다.

 





 

12회를 맞이한 광주의 주제는 둥근 탁자, 즉 ‘라운드 테이블’이다. 지구의 편평한 사태에 기댄 것이다. 첨예한 예각이라기보다 그냥저냥 지금 여기, 즉 ‘다원적 목소리(Polyvocality)’만을 배열하겠다는 뜻이다.
무엇보다 이제 비엔날레는 또 다른 예술 견본 시장처럼 보인다. 여기서 시장은 작품을 사고파는 직거래 시장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예술성의 가치를 미학으로 덧씌우는 기제로 작동시킨다는 점에서 그렇다. 작품가가 올라가는 시장인 셈이다. 상업갤러리의 디렉터나 큐레이터라는 경력을 지닌 두 비엔날레의 큐레이터들이 선택한 참여 작가들에서, 견고한 인맥은 더욱 강조된다. 아마 정보화 시대에서 작가들의 리서치 역시 표면적이 된 것일까. 작가에 대한 내밀한 연구나 현실정치의 첨예한 이슈는 빠진 느낌이다. 서구 중심이 아니라는 걸 표방하는 듯 보이는 적절히 안배된 비유럽 작가들의 오리엔탈적 제스처나 그들의 정치적 현실만이 강조된 영상작품은 어떤 미학적·정치적 균열도 가하지 못한다. 이는 비단 광주의 문제는 아닌 것 같다. 올해 카셀도큐멘타13이 월가의 점령 대를 껴안은 모습을 보면 비엔날레가 진짜 현실을 가리는 미학적 이데올로기 시스템이라는 걸 각인시킨 느낌이다.

 

 

서울국제미디어아트비엔날레의 ‘너에게 주문을 건다’는 인터랙티비티가 강조된 주제로 읽혔다. ‘세계적 고통과 희망에 대한 비평적 담론과 인문학적 관점을 미디어아트를 통해 제시한다는 계획’은 담론이 미디어아트가 되는 순간, 기획자의 의도와는 다르게 가상현실의 담론 안에서만 맴돈다. 인터랙티비티와 가상현실이 강조된 작품을 최대한 배제했다는 큐레이터의 말이 모호해지는 순간이다. 가장 젊은 작가인 3전시실의 네덜란드의 로버트 오버백의 회화나 가장 나이 많은 작가인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의 영상은 예술의 거처와 존재를 묻는 작품으로 인상적이었다. 문제는 미디어라기보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또 상암동 DMC의 디지털 크러스터에 설치된 작품들도 정치적 배경이 어떻든 향후 이 비엔날레의 시스템에 대한 적절한 문제 제기로 읽힌다.


광주비엔날레 본 전시장보다 광주 동구 대인동 대인시장에서 일어나고 있는 삶 속의 예술 풍경이나 양림동의 작은 공동체 공간에서 열리는 양림동 지역의 문화·역사전은 비엔날레가 이제껏 뿌려둔 성과들이 삶 속에 연착륙해가는 장면들이다. 이제껏 비엔날레의 성과라면 성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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