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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이중섭 전시장에서의 아쉬운 마음

윤범모

이중섭, 가족과 비둘기, 종이에 유채, 29x40cm


현대화랑이 자신의 본명을 되찾았다. 대환영한다. 1970년대 중반 인사동 사거리에서 화랑을 열었을 때, 미술계는 즐거웠다. 평소 보기 어려웠던 전시를 계속 제공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 현대화랑’이 언젠가부터 ‘갤러리현대’로 개명했고, 장소까지 사간동으로 옮겼다. 초심이 중요하다고, 나는 ‘현대화랑’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한다. 이번에 옛 이름을 회복하고 커다란 전시를 개최했다. 이름하여 ‘이중섭의 사랑, 가족’, 역시 현대화랑다운 전시이다. 썰렁한 겨울에 미술애호가들에게 안복(眼福)을 안겼으니 더욱 그렇다.

이번 전시는 이중섭 작품 가운데 가족 소재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것이다. 가족이기 때문에 주제는 당연히 사랑이다. 이중섭이 연인 야마모토 마사코(이남덕)에게 보낸 그림엽서, 어찌 연서(戀書)에 글 한 줄 쓰지 않고 그림으로만 채웠을까. 전시는 드로잉, 은지화, 유화 그리고 친필 편지 등으로 꾸며졌다.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편지이다. 이들 편지는 1953-55년 사이 일본의 처자에게 쓴 것이다. 이들 미공개 편지 15점이 전시장을 화려하게 장식했다. 이중섭은 편지지에 본문과 더불어 가족애의 그리움을 그림으로 첨부시켰다. 그러니까 이중섭 회화의 원형을 이해하는데 훌륭한 자료가 된다. 뉴욕현대미술관(MoMA) 소장의 이중섭 은지화 3점은 이번에 국내 처음으로 소개되는 것이다. 1956년 아서 맥타가트가 구입하여 미술관에 기증한 것, 이를 서울에서 볼 수 있다니, 놀라움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이중섭 전시장에서 나는 만감이 교차했다.

이중섭과 박수근을 흔히 ‘국민화가’라고 부른다. 왜 그럴까. 이들 작가 이외 김환기까지 묶어 ‘미술시장의 3대 거장’이라고 부른다. 아니, ‘보증수표’라고 부른다. 사실 이들 3인 작가는 개인 이름을 딴 미술관까지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왜 한국의 대표 작가로 추앙받고 있을까. 무엇보다 학문적 연구성과의 별무(別無)라는 사실을 지적하고 싶다. ‘신화적 존재’에 앞서 학문 연구의 대상으로 이들 예술세계가 분석되고 검증되는 절차의 생략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미술계의 척박한 학문 풍토를 지적하고자 함이다. 자본 논리와 대중적 가십은 난무해도 이들 관련 논문은 보기 어렵다. 국민 대표화가에 대한 전문 연구가는 어디에 있는가. 이들의 작품을 감정하면서 논문을 쓸 수 있는 전문가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답답함을 지울 수 없다.


박명자 회장, 살아있는 역사책
국립현대미술관의 ‘직무유기’도 문제라면 문제이다. 말만 국민화가이지 이중섭, 박수근 같은 화가의 본격적 연구와 전시를 추진한 바 있는가. 이번 MoMA 소장 은지화의 국내 소개를 어떻게 상업화랑이 대신할 수 있는가. 국민이 국민화가라고 부르고 있는 현실에서 국립미술관은 이 용어의 타당성 유무에 대한 본격적 검토 마당을 마련했어야 옳다. 물론 국내공립미술관의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다. 나는 다수의 소장가로부터 이런 말을 들은 바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누구를 믿고 작품을 빌려줄 수 있어요?” 전문성과 더불어 큐레이터로서의 신뢰성까지 확보할 수 없다면, 이는 커다란 문제이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공립미술관장 쯤 되면 멋진 소장가나 후원자들의 명단을 파악하고, 또 이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하지만 현재 어떤 관장이 이런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을까. 그래서 이중섭이나 박수근 전시는 공공 미술관이 아닌 열정으로 뭉친 개인 차원에서 실현되고 있나 보다. 이를 어떻게 해석하면 좋겠는가.

이번 이중섭 전시의 기획자는 사실 현대화랑의 박명자 회장이다. 한마디로 그는 한국현대미술사의 살아있는 역사책이다. 박 회장처럼 주요 작가와 작품 관련 이해도를 넓게 가지고 있는 인사가 얼마나 있을까. 만약 박 회장이 현역에서 물러난다면, 대형전시의 기획은 정말 쉽지 않을 것이다. 3대 거장을 비롯하여 주요 작가의 유작 소장처 목록, 이를 누가 작성할 수 있겠는가. 아니 목록 확보는 가능하다고 치자. 누가 이들 소장자를 설득하여 전시장까지 작품을 대여받아올 수 있을까. 답답한 일이다. 여기서 나는 박명자 회장에게 공개적으로 부탁 하나를 하고 싶다. 이제 회고록 집필을 착수할 때라는 점이다. 더 이상 사양만 하지 말고 구술사라도 활용하여 자신의 산 역사를 후세에 남겨야 할 것이다. 나는 현대화랑의 건물보다 『박명자 회고록』을 더 중요한 재산가치라고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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