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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윤범모


위) 공문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
아래) 김충현, 경주 통일전 삼국통일 기념비


불광불급(不狂不及),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 정말 그렇다. 어떻게 미치지 않고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화려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한 우물만 파면서 뭔가 일가를 이룬다는 것. 일가(一家)라는 말, 아주 멋있다. 집념, 그 불굴의 의지, 인간승리의 모습, 감동을 자아내게 한다. 불광불급, 이 신조어가 가슴을 흔든다. 세상이 각박해지고, 너무 약아빠진 사람들로 넘치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 우직한 바보가 그립기도 하다. 그래서 나는 우공이산(愚公移山)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바보가 산을 옮겨놓는다. 원래 이 말은 어리석은 사람을 야유하기 위해 쓴 말이다. 하기야 바보가 아니고서야 어떻게 산을 옮기려 할까. 하지만 우직한 집념은 산을 옮겨 놓을 수 있다! 진정한 바보만이 이룩해 낼 수 있는 일이다. 우공(愚公)이 그립다. 약아빠진 세태에서 바보가 더욱 그립다.

예술가는 바보스러울 정도로 집념을 가지고 있다. 오랜 세월의 ‘한 우물 파기’는 빛나는 성과물을 낳게도 한다. 작가에게는 비록 가시밭길이겠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감동을 안을 수 있는 즐거운 자리가 된다. 그래서 일가를 이룬 작가의 전시장은 가슴을 뿌듯하게 한다. 근래 전시장을 순례하면서 나는 몇 명의 ‘바보들’을 만났다. 백악미술관에서 일중 김충현의 현판 글씨 개인전(1.15-2.25)을 보았다. 공공기관으로부터 개인 택호에 이르기까지 일중은 많고도 많은 현판을 썼다. 나는 일중의 글씨를 좋아한다. 특히 그의 예서체를 좋아한다. 힘이 있으면서도 조형적 결구는 정말 예술이다. 게다가 한글 서예까지 일가를 이루어 감동을 안긴다. 추사 김정희는 말했다. 붓글씨 연습하느라고 몽당붓이 무덤을 이룰 정도였다. 아하, 추사 같은 거목도 연습, 또 연습, 정말 미치광이 흉내를 냈다. 한 우물 파기의 극치가 아닐 수 없다. 재미화가 최동열(3.5-3.29, 아트링크갤러리)은 매년 몇 달씩 히말라야 설산에서 체류하면서 그림을 그린다. 해발 수천 미터의 움막에서 히말라야의 정기(精氣)를 화면에 담는다. 추위와 싸우면서 화가는 현장의 생생한 분위기를 화폭에 듬뿍 담는다. 나그네가 아닌 거주자의 입장에서 현장과 씨름하고 있는 모습, 작품 속에서 하나의 울림으로 전달된다.

안종연은 개인전(2.27-3.22, 부산시립미술관 용두산미술전시관)에서 ‘모하의 빛’을 펼쳤다.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그의 작업은 눈길을 끈다. 렌티큘라 작품을 비롯 빛을 이용한 설치작업까지 집념의 집적이다. 안종연은 유리구슬 안에 LED 장치를 넣는 기술을 개발하여 오묘한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 기술은 특허를 받은 것이다. 역시 오랜 세월의 적공(積功)에 의한 결과이다. 사진작가 조문호는 ‘청량리 588’이라는 특이한 소재로 개인전(2.25-3.10, 아라아트센터)을 개최했다. 1980년대의 사창가 풍경이다. 작가는 현장의 진실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창녀촌에서 살았다. 하여 그곳 여자들과 인간적 교류를 트게 되었고, 결국 그들의 협조 아래 카메라를 들 수 있었다. 집념과 의지가 없었으면 이룰 수 없는 작업이다. 박영대는 자타가 공인하는 ‘보리 작가’이다. 그는 평생 보리라는 소재와 씨름하면서 다양한 형식으로 그림을 그렸다. 초기의 사실적인 묘사로부터 후기의 추상적 표현에 이르기까지 변화의 세계를 보여주었다. 보리(麥)는 이제 보리(菩提) 즉 깨달음의 세계에 이르렀다. 평생 집념의 세계는 ‘보리 작가’로서의 일가를 이루게 했다. 이번 개인전 ‘생명의 소리’(3.18-3.24, 인사아트센터)는 이 점을 보여준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홍지동 상명대 입구로 이전하여 개관 기념전을 열었다. 그동안 ‘남의 집 살림’으로 힘들어하더니, 드디어 내 집 마련하여 박물관 문을 연 것이다. ‘바보 김달진’을 위해 미술계의 원로 중진 인사들이 대거 참가하여 개관행사를 축하했다. 김달진 관장은 정말 ‘바보’였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미술자료와 평생 씨름하면서 외로운 길을 걸어왔다. 바로 우공이산의 산 증인이다. 그는 정말 산을 옮겨놓았다. 엄청난 신념이고 사명감이다. 우리 시대 미술계의 대표적 우공 김달진, 나는 같은 시대의 같은 하늘 아래에서 우공과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할 따름이다.

불광불급.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의 주위에 ‘미친 사람들’이 박혀 있음을 알게 한다. 그래서 세상은 살아 볼 가치가 있다. 출세주의자들의 장기판 사회에서 일탈한 괴짜들, 그 바보들이 있어서 우리 사회는 풍요로워진다. 정말 미치지 않고 어떻게 미칠 수 있는가. 광인(狂人) 만세! 불광불급! 아, 나도 미치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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