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53)김환기 작품의 최고 경매가격을 보면서

윤범모

고요(Tranquillity) 5-IV-73 #310, 사진제공:케이옥션 ⓒ 환기재단·환기미술관


65억 5,000만 원! 새로운 기록이다. 65억 5,000만 원!! 그림값의 경신이다. 작가는 김환기, 근래 고공행진의 주인공이다. 지난 4월 케이옥션에서 열린 정기경매에서 김환기의 작품 <고요(Tranquillity) 5-IV-73 #310>이 이룩한 기록이다. 55억 원 시작가에서 1억 원씩 호가하다 마지막에 5,000만 원을 올려 낙찰가를 결정했다. 지난해 11월 서울옥션의 홍콩 경매에서 김환기의 작품이 63억여 원으로 기록을 세운 뒤 다시 새로운 기록을 올린 셈이다. 김환기 세상이 도래했는가 보다. 한국 근현대 미술품의 경매 최고가 1위에서 6위까지 모두 김환기 작품이 차지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여세라면 곧 100억 대를 돌파할 날이 올 것 같다. 그림 한 점에 100억! 물론 서민들의 입장에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일 것이다. 가뜩이나 경제 불황이라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림값 이야기는 피부에 와 닿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미술시장과 비교해 보면, 우리 미술시장의 영세성을 자인하지 않을 수 없다. 100억 대 작가가 즐비한 중국 미술계, 하지만 우리의 경우는 10억 원대 작가도 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특히 국제 미술시장에서는 10억 원대 작가를 ‘작가’로 대우한다. 생존 작가의 경우 특히 그렇다. 하지만 국내 미술시장의 ‘선수’는 보기 어렵다. 겨우 이우환이 턱걸이하다 미끄러지고 있는 형국이다.

이번 최고가를 이룩한 김환기 작품은 이른바 점화(點畵)이다. 화면을 수십만 개의 점으로 가득 채운 것. 물론 김환기의 선호색인 파랑으로 이루어졌다. 마치 파도의 물결처럼 일정한 리듬을 이루면서 화면에 정중동(靜中動)을 담았다. 일견 단순하고도 심심한 표현 같지만 나름대로 법칙을 이루면서 조형언어를 들려주고 있다. 특히 이번 작품은 화면의 중심부에서 하단부로 내리그은 하얀 띠가 하이라이트이다. 파랑 바탕에 사각형의 하얀 띠, 일종의 생명력을 자아낸다. 김환기는 종신수처럼 점을 찍었다. 고향의 친구들을 생각하면서, 혹은 밤하늘의 별을 연상하면서, 무수한 점을 찍었다. 특히 이번 작품은 만년의 대작으로 의미가 크다. 화가는 일기에 이렇게 썼다. “3분의 2 끝내다. 마지막 막음은 완전히 말린 다음에 하자. 피카소 옹 떠난 후 이렇게도 적막감이 올까”(1973.4.10). 김환기는 피카소에 대한 애정을 듬뿍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피카소의 죽음은 김환기로 하여금 적막하게 만들었다. 그런 적막 속에서 김환기는 점을 찍고, 또 찍고, 또 찍었다.

김환기의 그림값 등극 이전은 박수근 천지였다. 박수근의 <빨래터>는 45억 2,000만 원에 낙찰되어 최고가격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미술시장은 한동안 박수근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박수근이나 이중섭의 경우, 돌이키기 어려운 약점이 있다. 무엇보다 작품 숫자가 적다. 그것도 소품 위주이고 소재 또한 단순하다. 국제무대용이라기에는 불리한 위치에 있다. 국제무대에서 프로작가라 한다면, 언제라도 개인전을 열 수 있을 정도로 재고 작품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작품 숫자가 적은 작가는 미술시장의 수급조절에 부응할 수 없어 아예 무관심 상태로 방치된다. 프로 작가는 일단 작업량이 많아야 한다. 하기야 전업작가가 작업량이 없다면 그 또한 문제이다. 하시라도 개인전을 개최할 수 있을 정도의 작업량을 보유하고 있는 것, 이런 경우를 ‘작가’라고 부른다. 아마추어와 프로의 경계선은 냉정하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상당수 한국작가의 텅 빈 작업실이 떠올라 민망하게 한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해야 한다. 그래서 전업작가와 미술교육자의 분리를 냉정하게 시행해야 한다. 김환기는 중년 나이에 대학교수자리는 물론 미술협회 대표 자리도 버리고 이국으로 떠났다. 오로지 작업에만 전념하기 위해 결단을 내린 것이다. 논리는 단순하다. 한꺼번에 두 마리의 토끼는 잡을 수 없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