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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역사를 관통하는 인문학자로서의 큐레이터, 박래경

김준기





한국큐레이터협회가 원로에서 중진, 중견에 이르는 큐레이터들을 초청하여 강연과 토론회를 열고 그들의 삶과 일을 헤아리는 자리를 열기 시작했다.

첫 번째 자리에 선 박래경(1935-) 한국큐레이터협회 명예회장의 일성은 역사를 관통하는 인문학자로서의 큐레이터였다. 그는 미술사학자이자 미술관 종사자로 일해온 자신의 삶을 역사의식이라는 키워드로 풀어냈다. 그는 식민지 시기와 해방공간에 이르는 유년기 시절,한국사회가 안고 있던 곤궁한 현실 속에서도 맹아적 형태로 자라났던 문화의 태동을 회고했다. 역사시기를 바라보는 후대의 관점은 반드시 당대의 시각을 견지해야 한다고 전제한 그는 다각적이고 입체적인 연구를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규정된 단일한 시각으로 과거를 바라볼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축적해온 문화적 성취들을 섬세하게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예술을 비롯한 정신과학은 압축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섬세하게 그 경로를 파헤쳐야만 현재의 모습을 파악할수 있다는 그의 역사관은 박래경의 근본 철학이다. 

시대정신을 이해하는 것이 예술 이해의 근본이라는 점을 강조한 그는 내면의 자기성찰이야말로 큐레이터의 기본조건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생각은 판이하게 다른 역사적 층위들을 겪어온 그의 체험에서 나왔다. 일제강점기의 식민지 교육과 해방공간의 혼란, 전쟁시기와 경제개발, 그리고 민주화와 문화적 다양성의 시대를 살아온 그의 과거는 한국사회가 거쳐 온 지난한 역사의 파노라마를 넘나든 근현대시기 한국인의 삶 그 자체이다. 서울대사학과를 졸업한 그는 서독정부초청(DAAD) 장학생으로 뮌헨 대학에 가서 5년 동안 미술사학을 전공했다. 이후 귀국하여 미술사학자로서 수도여자사범대학을 비롯해 여러 대학에서 가르치며 후학을 양성했고,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실 학예연구관(1986-1992)을 거쳐 학예연구실장(1992-1996)으로 일하면서큐레이터십을 다졌다.

초창기 국립미술관의 생생한 역사를 되짚는 그의 회고담에는 미술관의 공공성을 지탱하기 위해 노력해온 원로의 애정과 애환이 섞여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이 과천으로 이전했을 때부터 100명 정원 가운데 큐레이터 14인이 학예연구 일을 꾸렸던 시절을 거치면서 그는 ‘독일현대회화전’, ‘테크놀로지의 예술적 전환’ 등 수많은 전시 프로젝트들을 꾸렸다. 퇴직 이후 1998년에 ‘한국 해학의 현대적 변용’이라는 전시를 열었다. 2010년에 기획한 ‘태극 순환 반전의 고리’는 동양과 서양을 관통하는 문화적 씨앗을 발굴하는 전시, 학술 프로젝트였다. 그는 결론을 내리는 전시가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전시로서 이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토론회와 출판을 추진하고 있다. 역사시기의 사유와 감성을 동시대의 것으로 호출하기 위하여 해학과 태극정신 등의 화두를 풀어나가는 독립큐레이터 박래경의 프로젝트는 현재 진행형이다.

식민지 시대에 태동한 근대성에서 21세기 탈근대 시대의 문화적 종다양성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스펙트럼을 가진 큐레이터 박래경의 삶은 역사의 지평을 관통하는 인문학 정신의 실천에 뿌리를 두고 있다. 미술사학자이자 미술관 종사자이며 전문가 그룹 네트워커로 살아온 그의 삶을 지탱해온 것은 역사의식에 기초한 지식인의 성찰이다. 그는 직장인으로서의 큐레이터를 넘어 지식인으로서의 사명의식을 실천하고자 노력했다.


그는 한국큐레이터협회의 초대 회장을 지내면서 미술관 종사자들의 대소사를 챙겨왔다. 어머니의 마음으로 큐레이터들의 네트워크를 만드는 데 힘써온 그가 보기에 한국사회에서의 큐레이터십은 미완의 가치이다. 전문가 집단의 가치지향이란 어느 한 순간에도 완결에 이를 리 없으니, 집단지성을 향한 가치의 연대가 더욱 절실하다. 큐레이터십의 정립을 향한 원로 큐레이터의 헤아림이 쉼 없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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