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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이인범, 좋은 뮤지엄 제도를 향한 공화주의자의 꿈

김준기



큐레이터 이인범(1955- )을 실천적 지식인으로 만든 힘은 ‘좋은 뮤지엄 제도를 향한 공화주의자의 꿈’에서 나온다. 그는 지난 수십 년간 한국의 뮤지엄 제도의 변화와 발전 과정과 동행하며 자신의 성취와 좌절을 그 속에 묻어 두었다. 그 시작은 3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공군 정훈장교로 일하던 시절 멸공관 사업을 전환해 10전투비행단기념관 설립을 추진했다. 이후 1986년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개관준비팀에 참여하며 본격적인 큐레이터의 삶을 살았다. 그가 참여한 ‘독일꼴라쥬’, ‘바우하우스’, ‘백남준’, ‘젊은 모색 92’ 등의 전시기획에서 현역 큐레이터 이인범의 체취가 묻어난다. 초기 활동은 전시진행이었지만 이후 그의 관심사는 컬렉션 매니지먼트와 한국근현대미술자료 아카이브로 이어졌다.

1993년 국립현대미술관을 나와 본격적으로 뮤지올로지 연구자의 길을 걸으며 정책의제를 발굴하는 한편, 다양한 프로젝트를 실행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건물 조기이전 및 해체반대운동에 나서면서 문화영역의 국가정책에 대한 문제제기를 시작했고, 일본국제교류기금 초청을 받아 오키나와예술대학 비교예술학연구소, 도쿄 일본민예관, 동경예대 미학연구실 등에서 연구했다. 삼성현대미술관건립 기초계획수립(1995), 광주국제비엔날레 개혁TF팀(1998) 등에도 참여했다. 1998년부터 한예종 한국예술연구소에서 일하며 발간한 『미술관제도연구』(1998)는 그의 뮤지엄 관련 실천적 활동과 연구 성과의 중간 기착지 성격을 지닌다. 그 이후 2007년까지 한국예술아카이브 설립에 가담하여 운영을 맡았고, 한국근현대예술사 구술채록사업(2002-2007)이라는 성과를 일궈내며 국립예술자료원 설립에 모멘텀을 제공했다.

그는 늘 뮤지엄 제도 관련 정책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발언하는 실천가의 면모를 보였다. 1999년엔 이른바 박미법 6조 박물관미술관학예사 제도 채택을 위한 문관부의 학예사제도운영위원회에 참여하여 그 제도화의 문제점들을 지적했다. 뮤지엄 종사자 관련법의 왜곡에 문제의식을 갖고 그는 2000년 한국큐레이터포럼(회장 나선화, 현 문화재청장, 당시 이대박물관 학예실장) 창립을 주도하여 부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수 년 간 뮤지엄 프로페셔널로서 큐레이터들의 자기정체성 확립운동에 주력했다. 2004년에는 문화기관책임운영기관화 TF팀에 참여하여 국립현대미술관 책임운영기관화을 적극적으로 반대했으며, 국립중앙박물관 개혁 TF팀에 참여하여 박물관 운영 식민잔재, 유신잔재 청산, 국립서울박물관으로 명칭변경 등을 제안해 논란을 빚기도 했다.

2000년대에 들어 그는 주목할 만한 뮤지엄프로젝트와 국제미술행사를 조직하고 기획했다. 2002년 유영국문화재단 설립에 참여하며 관련 전시들을 기획하고, 『유영국 저널』 편집인으로 활동했고, 2004년 치우금속공예관 설립에 참여한 후 초대관장으로 2009년까지 활동하며 현대공예와 예술의 재편가능성을 모색하는 전시들을 기획했다. 2007년 이후 현재까지 상명대 조형예술학과에 재직하며 ‘신사실파 창립 60주년 기념전’(2007)을 기획했으며, ‘2009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을 맡아서 ‘만남을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인공의 지평’, ‘오브제, 그 이후’, ‘생활세계 속으로’ 등의 전시를 조직했다. 이후 ‘2011 경기세계도자비엔날레’ 총감독을 맡았으나 중도 사퇴하고, 그 대신 ‘세라믹스코뮌’(아트선재센터, 2012)을 개인 기획으로 개최했다.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그의 선택은 늘 적당한 타협이 아니라 이상 실현을 유보하는 쪽이었다.

큐레이터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이래 그는 뮤지엄 관련 기고와 강연, 논문발표, 교육프로그램 설립 운영 등을 지속하며 그 언저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그의 활동은 뮤지엄 관련 연구자나 종사자의 위치에 머물지 않고, 오히려 지식생산과 현장활동을 병행하며 뮤지엄 제도의 지형 변경을 도모하는 뮤지엄 운동 차원으로 확장해갔다. 이에 관한 그의 확고한 태도에는 근대 ‘예술개념의 수용과 성립사의 일천함’을 극복하고자 하는 대안적 문제의식이 드리워져 있으며, 그 과정에서 마주한 수많은 난관을 대처한 그의 선택들에는 지식인의 양심과 자신의 사적 이익을 내려놓는 선비정신이 배어있다. 뮤지엄이라는 공화주의 이상을 향한 그의 도전과 실험은 지난 30년 세월의 성취와 좌절을 넘어 지속가능성을 향해 열려있다. 인류사적인 유산을 갈무리해서 공공영역의 자산으로 등재하고 그것을 만인과 함께 나누는 뮤지엄의 이상에 그의 삶이 오롯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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