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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전승보, 일상의 정치와 큐레이터

김준기

전승보의 큐레이팅은 마을 속 문화공간에서부터 기념비적인 공공건축물과 국제비엔날레 행사에 이르기까지 시각예술로 소통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장소와 영역에 걸쳐있다. 그는 주로 미시적 차원의 일상성을 예술적 소통의 주제이자 방법으로 삼아왔다. 또한 그는 특정장르에 천착하기 보다는 다양한 장르의 작품들을 아우르며, 세대와 지역, 성별, 국가 등의 경계를 넘어서는 폭넓은 동반 작가군을 형성해왔다. 낱개로 흩어져있는 개별 작품들을 엮어서 새로운 해석의 여지를 만들기 위하여 큐레이터는 분석과 재해석을 거듭한다. 전승보는 바로 이 지점, 그러니까 전시를 조직하는 과정에서 큐레이터의 해석 능력에 따라 결정적인 차별성이 발생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다음은 수용자 중심의 전시개발을 염두에 둔 그의 말이다.

“세상이 다양해진 만큼 큐레이터들의 관점과 활동들이 보다 풍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큐레이터는 관람객들이 전시를 통해 무엇을 얻어 가는지를 우선적으로 고민해야 합니다. 식당의 존재 이유가 밥을 먹는 손님에게 있음을 다시 한 번 각성해야 하듯이, 미술관과 큐레이터가 종래의 전시 스타일에 자족한다면 더 넓은 바다를 잃어버리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전승보 ⓒ photo 박상필

『 가나아트』 기자 및 편집장으로 일해 온 그는 광주비엔날레에서 전시부장으로 잠시 일하다가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그는 독립큐레이터로서 전시기획을 시작했다. ‘아시아의 지금 : 에피소드’(청주예술의 전당, 2004)을 통하여 그는 사소한 이야기들에 주목한 일상성의 문제를 다뤘다. 정치와 경제의 결정력 저변에 존재하는 “일상의 변화야말로 세상의 변화를 견인하는 힘”이라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일상을 찬찬히 들여다보게 함으로써 새로운 성찰을 이끌어내는 것. 큐레이터 전승보의 일관된 정신이다. 그는 광주문화중심도시 프로젝트의 중요 거점으로 새로 태어나기 전의 구 전남도청건물에서, 광주 사람들의 기억에 대한 오마주로 ‘열다섯마을이야기’(2005)를 기획했다. 도청건물이 1980년 5월 광주의 역사성을 대표하는 장소라는 점을 염두에 둔 이 기획은, 광주의 저항과 희생의 문제를 동시대의 일상성을 매개로 풀어냄으로써, 과거와 미래의 결별의례가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주선하는 축제로서의 씻김굿을 만들었다. 이후 그는 ‘2007 창원아시아미술제’(2007)의 예술감독으로서 ‘복숭아꽃, 살구꽃’이라는 감성적인 주제로 고향을 떠난 삶, 이주와 정주에 대한 성찰을 이어갔다.

‘2008 부산비엔날레 바다미술제’에서는 ‘비시간성의 항해’를 주제로 26개국 77명 작가를 초대하는 대형 기획전을 꾸렸다. 야외설치미술과 실내전시를 병행한 이 프로젝트에서 그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상대적 관점”을 도입하여 주체 중심의 이해를 넘어서는 타인에 대한 이해를 지향하면서 장소의 정체성에 대해 묻고 답했다. 이후 그는 국제교류재단, 코엑스, 킨텍스, 요코하마레드블릭, 두산아트센터, 국회헌정기념관 등에서 독립기획을 지속했으며, 한 뼘미술관 큐레이터로서 도심 속 문화공간의 작지만 알찬 전시공간을 꾸리기도 했다. 최근에는 ‘김용태와 함께한 미술인들의 출판기념전시회 : 함께 가는 길’(3.26 - 3.30, 가나아트센터)을 기획했다. 시한부 암투병 중이던 대선배를 위해 단행본출판과 기념전시회를 동시에 맡았던 그는 1980년대 이래 지난 30여 년간 현실과 발언, 그림마당민, 코리아통일미술전, 중국문화교류, 민미협, 민예총, 문예아카데미,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등 민주화운동과 문화예술운동의 최전선에 서 있었던 고인이 남긴 ‘사람에 대한 믿음’을 책과 전시로 엮어냈다. 격동의 한 시대를 대변하는 인물을 기리고 그이를 보내드리는 일의 진행을 맡은 것은, 1980년대 초반부터 민중미술 운동의 현장을 체험하면서 쌓아온 지식과 네트워크를 가진 큐레이터 전승보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전승보(1964- ) 세종대 회화과, 영국 런던대 골드스미스칼리지 대학원 큐레이터학과 졸업. 미술전문지 『가나아트』기자 및 편집장(1992-1996), 광주비엔날레 전시부장(1996), 아르코미술관 수석큐레이터(2005), 2008부산비엔날레(바다미술제) 전시감독 등 역임.『 미술관 전시, 이론에서 실천까지』(학고재, 1999),『 과연 그것이 미술일까?』(아트북스, 2003) 등 번역, 현 세종문화회관 전시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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