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6)이동석의 삶에 존경과 감사를

김준기

이동석(1964-2004)은 만 39세의 젊은 나이에 타계한 큐레이터다. 그는 부산시립미술관의 초창기 멤버로서 큐레이터가 당면한 한계와 모순을 낱낱이 드러내놓고는 홀연히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 그의 삶과 죽음이 남긴 기억의 궁극은 한국사회가 그 목적지에 도달하지도 못한 채 추월해버린 근대성으로 모아진다. 그는 미술관이라는 제도 공간에서 큐레이터로서의 자기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자신의 삶을 돌보지 않은 채 일하다가 건강을 헤쳐 이른 나이에 세상을 저버렸다. 1998년 개관 이후 부침이 심했던 초창기 부산시립미술관의 큐레이터로서, 부산과 서울의 간극을 좁힌 미술비평가로서, 부산미술계에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은 대안공간섬의 공동디렉터로서 너무도 분주하게 한 생을 살았다.

그는 석사논문을 마무리하고, 그 이듬해인 1997년에 조선일보신춘문예에「시각의 세계와 전자테크놀러지의 오로라」라는 글로 미술평론 부분에 당선되었다. 그 해에 그는 부산시립미술관의 학예연구사로 취직했다. '미디어와 사이트'가 그의 첫 기획전이었다. ‘센스&센스빌리티’가 그의 마지막 기획전이었다. 뛰어난 전시기획자로서 뿐만 아니라 연구자로서 뉴미디어아트와 부산지역미술에 관심을 가지고 수 많은 글을 남겼다. 또한 그는 김성연, 이영준과 함께 (대안공간반디의 전신인) 대안공간섬을 만들어 실천적인 예술운동을 펼쳤다. 그의 삶과 죽음을 추모하고 계승하기 위해 만든 이동석전시기획상은 큐레이터들을 위한 거의 유일한 수상제도이다. 2008년 이후 이경민, 김종길, 김학량, 조선령, 김재환, 채은영, 김희진 등 유수의 큐레이터들이 이 상을 수상했다.

큐레이터는 프로모터나 엔터테이너가 아니라 예술적 소통을 갈무리하는 미술관이라는 제도공간의 지식인이다. 이동석은 미술관에 종사하는 지식인의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연구자로서 살기를 갈망했다. 그는 학예연구사(學藝硏究士)가 행정적 절차에 치어 산다는 점을 비꼬아서 ‘잡예사(雜藝士)’라는 말을 쓰기도 했다. 그는 20세기 말에야 비로소 본격화한 대한민국의 공공미술관에서 큐레이터로서의 정체성을 심으려고 노력했다. 그의 꿈은 사회적 소통을 매개하는 공공영역으로서의 예술을 제도화한 미술관제도를 정착시키는 일이었다. 미술관 큐레이터는 소장품을 지키는 창고지기의 역할뿐만 아니라 사회와 개인의 소통을 매개하는 정치가로서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미술관 큐레이터는 인류사적 유산을 다루는 지식인이다. 미술관 종사자로서의 큐레이터는 홀로 빛나는 별이기 보다는 미술관 제도를 통해 소통하는 ‘집단지
성’의 일원이다.

이동석은 미술관 큐레이터로서 희망을 찾았고 공무원 큐레이터로서 절망했다. 그는 예술계에 종사하는 지식노동자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끌어안고 살았다. 이동석이라는 한 큐레이터가 있었고 그가 남긴 위기의식과 절망을 기억하며 살고 있는 우리는 그 절망 너머의 또 다른 꿈을 꿀 수 있다. 이것이 기억의 힘이다. 비록 집단관음증의 아이콘으로 큐레이터라는 직종이 오르내리고, 학예연구사가 아니라 잡예사로서 일하느라 연구는 못하고 잡무에 골몰하고 있고, 해마다 수많은 큐레이터들이 계약직 신분의 벽을 넘지 못하고 본의 아니게 독립큐레이터로 독립해야만 하는 현실이지만, 우리에게 이동석이라는 멋지게 살다간 큐레이터에 대한 기억이 있다는 것. 고마울 따름이다. 큐레이터 이동석의삶에 존경과 감사를!




부산시립미술관 시절의 이동석(우측)과 동료 이진철


- 이동석(1964-2004) 통영과 마산에서 10대를 보낸 후 인하대 전자계산학과를 다녔고, 졸업 후 기업에 근무하다 그림과 문학에 대한 미련이 남아 홍익대 대학원 예술학과에 진학했다. 1996년「시각매체에 있어 테크놀로지의 문제」라는 논문으로 대학원을 마친 한 후 1997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미술평론 분야에 당선되어 비평활동을 시작했다. 같은 해부터 부산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로 근무하면서 7년 동안 ‘미디어와 사이트(1998)’, ‘영화와 미술(1999)’, ‘도시와 미술-부산의 시간과 공간(2001)’, ‘그리드를 넘어서(2003)’, ‘센스&센스빌리티(2003)’ 등 여러 전시를 기획하였고, 무수한 비평을 썼다. 1999년 대안공간섬의 창립을 주도했으며 포럼a, 미술평론가 협회 회원으로 활동했다. 2004년 1월 만 39세의 젊은 나이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