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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예술감독으로서의 큐레이터, 이영철

김준기

“오늘날 큐레이팅이라는 것은 전문화된 영역으로서의 미술에 국한 되지않으며,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협상, 저항, 조정의 과정을 거쳐 다중(Multitude)의 바다로 나가는 민주주의 학습의 장을 구성하는 능동적인 행위이다.”


큐레이터 이영철의 사유와 실천은 이 한 문장에 집약해 있다. 그는 큐레이터라는 직업의 규범을 근대적 의미의 박물관 종사자 정체성에 묶어 놓지 않고 동시대 전 지구의 의제와 대면하는 ‘능동적인 행위자’로 확장해왔다. 그는 소장품 기반의 미술박물관 학예연구사와는 체질이 다른 큐레이터다. 사회학과 미학을 전공한 그는 지난 30년간 사회구조와 인간감성의 공진화 과정에 몸을 싣고 한국현대미술의 격변기를 지나왔다. 민중미술, 포스트모더니즘 등의 비평용어들이 엇갈리던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미술잡지의 기자와 미술평론가, 출판사 편집장으로서 활동하던 그는 1993년 뉴욕 퀸즈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태평양을 건너서’를 시작으로 큐레이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활동하면서 그는 혼성과 탈주를 자신의 화두로 삼아 동시대의 미술지형을 종횡무진하기 시작했다. 제2회 광주비엔날레 ‘지구의 여백(1997.9.1 - 11.2)’을 기획한 그는 의제설정과 구조획정 방식에서 남다른 면모를 선보였다. 이 전시는 한국현대미술의 관점을 지역적인 것으로부터 전지구적인 것으로 확장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는 화수목금토(火水木金土)를 속도, 공간, 혼성, 권력, 생성의 개념과 연결하여 속도-물, 공간-불, 혼성-나무, 권력-쇠, 생성-흙 등 다섯 개의 섹션 전시를 꾸렸다. 하랄트 제만(Harald Szeemann, 1933-2005)등 쟁쟁한 큐레이터들을 커미셔너로 선정하여 현대문명의 빈틈을 메우는 문명성찰적 작업들을 모은 이 전시는 설치나 비디오뿐만 아니라 사운드와 퍼포먼스 등에 이르는 예술장르들이 혼재했다.


‘도시와 영상-의식주’(서울시립미술관, 1998)는 새로운 언어의 시각예술이 도시의 일상성과 결합한 극적인 무대였다. 그는 일상성을 대변하는 일상의 물품을 전시장에 넣고 당시의 고정관념이 정해놓은 현대미술 범주를 넘어서는 장르의 예술작품들을 뒤섞었다. 삶 속의 미술, 일상 속의 미술을 내세우며 새로운 방식의 전시기법을 강조했다. ‘당신은 나의 태양 : 한국 현대미술 1960-2004’(토탈미술관, 2004. 10.15 - 12.5)는 한국현대미술을 아방가르드 관점으로 재구성한 전시였다. 그는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의 양극단, 즉 모더니즘 진영과 민중미술 진영의 대립구도를 벗어나 아방가르드미술의 관점으로 주요작가와 핵심쟁점을 재구성했다. 1960년대 이래의 전위미술운동과 1980년대의 민중미술운동, 그리고 1990년대의 새로운 감성에 기반한 신세대미술 등을 결합한 이 전시는 한국 현대미술의 진화를 이끌어온 세대에 대한 오마주였다.


2000년대 접어들면서 그는 한국의 주요한 국제행사와 주요기관의 첫 문을 여는 일을 많이 했다. 부산비엔날레의 첫걸음을땐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 국제현대미술전 예술감독을 맡았으며, 안양공공예술프로제트 예술감독으로 일했다. 백남준아트센터 초대 관장과 아시아문화개발원 초대 원장을 맡아 예술기관의 개관 준비 및 개막관 후 초기 운영을 해온 그는 문화행정가로서의 경력을 쌓으며, 큐레이터쉽을 기반으로 하는 디렉터쉽을 실천해왔다.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으로서 그는 미디어아트스트 백남준을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정신문화의 선구자로 재조명하기위해 노력했다. 아시아문화개발원 원장으로서, 이어서 아시아문화전당 창조원 예술감독으로서 그는 전지구화와 지역성 사이에서 질주해온 한국현대미술은 물론 수천 년의 역사 위에 놓인 문명사적인 관점으로 광주와 한반도, 아시아, 유라시아의 횡단을 꿈꿨다. 지금 그는 타의에 의해 그 꿈을 잠시 내려놓고 있지만 우주와 지구를 사유하고 실천하는 그의 도전과 실험은 현재진행형이다.



이영철(1957- ) 고려대 사회학과, 서울대 대학원 미학과 석사, 미국 일리노이주립대 미술사 박사과정 수학.『계간미술』기자,『시각과 언어』편집장, 제2회 광주비엔날레(1996-1997), 부산국제아트페스티벌 국제현대미술전(2000-2001), 안양공공예술프로젝트(2005-2006) 예술감독, 백남준아트센터 관장(2008-2010), 아시아문화개발원 원장(2011-2013), 아시아문화전당 창조원 예술감독역임. 저서『현대미술비평30선』(1987),『상황과 인식』(미술평론집)(1995),『현대미술지형도』(1998),『21세기 문화 미리보기』(1999),『백남준의 귀환』(2009) 등. 올해의 예술상(문화관광부, 2006), 대한민국 문화포장(1998) 등 수상. 현 계원예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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