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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분단과 아시아를 마주 한 그의 선택, 김선정

김준기

1990년대 초반, TV광고에 등장한 젊은 여성이 남긴 유명한 말 한마디. “난 내 선택을 믿어요.” 스카티 광고모델 김선정의 단언이다. 그것은 한국사회에 큐레이터가 어떤 존재인지를 대중적으로 알렸을 뿐만 아니라, 수많은 큐레이터 지망생에게 당당하게 자신의 선택을 신뢰한다고 말하는 전문가의 힘을 보여주었다. 청년 김선정의 이 말은 그 후로도 오랫동안 그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원리로 작동했다. 20대 청년 김선정은 휘트니미술관에서 인턴생활을 마치고 귀국해서 ‘휘트니비엔날레 한국전’(1993)의 게스트 큐레이터로 활동하면서 큐레이터의 길에 입문했다. 이 전시는 ‘민중미술 15년전’(1994)과 ‘광주비엔날레’(1995)로 이어지는 한국현대미술의 새로운 흐름에 첫 물꼬를 튼 사건이었다.

새내기 큐레이터시절부터 그는 분주히 움직였다. 경주의 선재미술관 큐레이터 일을 시작한 그는 다수의 해외전시 연계프로젝트를 추진하며 국내외 큐레이터와 작가들을 만났다. 1995년에 기획한 ‘싹전’도 있다. 고낙범, 박이소, 이불, 최정화, 홍성민 등이 참가한 이 전시에 참여작가들은 전시장이 아닌 장소인 한옥과 마당에서 전시를 꾸렸다. 1998년 아트선재센터가 개관한 후 부관장을 맡은 김선정은 30대 작가들을 등장시키며, 의미있는 개인전들을 열기 시작했다. 당시로서는 흔치 않게 참여작가 제작지원비를 제공하면서 전시 완성도를 높였다. 이불, 정서영 등의 개인전 프로모션을 펼치며 아트선재센터는 미술계의 최전선에 섰다.

2000년 무렵 잠시 휴직기를 가진 그는 아트선재센터로 복귀해서 매튜 바니, 더글라스 고든의 영상 작품을 소개하는 등 서울아트시네마 극장 프로젝트를 지속했다. 김범, 이동기의 작업과 금기를 주제도 다룬 기획전 등의 ‘주차장프로젝트’도 계속 이어갔다. 2004년 아트선재센터에서 나온 그는 기획과 연구를 위한 연구소인 ‘사무소’를 열었다. 이후 그는 독립큐레이터로서도 발군의 활동을 이어갔다.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시작으로 이듬해부터 ‘플랫폼’(2006-10)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2010년에는 ‘미디어시티서울’ 총감독을 맡았고, 2012년에는‘광주비엔날레’ 큐레이터로 일했다. 그는 40대를 넘기기 전에 한국에서 큐레이터로서 할만한 거의 모든 일들을 섭렵했다. 이제 그는 또 다른 선택의 길에 접어들었다.



김선정 사진제공:사무소

모노크롬과 민중미술의 거센 흐름이 지나간 뒤, 1990년대의 새로운 감각이 한국미술계에 뿌리 내리기 시작할 때부터 활동을 시작한 큐레이터 김선정은 미술문화의 종 다양성을 확립하는 데 단단히 제역할을 하면서 중견 큐레이터로 성장했다. 그의 선택은 동시대성과 새로운 감성이 교차하는 큐레이터의 길이었다. 그것은 동시대의 도그마(Dogma)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미래감성을 찾아 동시대성과 미래감성을 혼성하는 과정으로서의 큐레이팅이다. 물론 그 여정에 동시대를 규정하는 역사를 성찰하는 것과 이질적인 문명의 교차점을 찾는 것은 빼놓을 수 없는 일이니, 그가 최근 몇 년 동안 해오고 있는 일들을 보면 알 수 있는 길이다.

한국의 분단현실과 제국주의시대를 거친 아시아의 역사는 밀접한 연관이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그가 추진하고 있는 두 프로젝트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큐레이터로서 외면할 수 없는 숙명적인 문제이다. 2012년부터 시작한 ‘리얼DMZ프로젝트’가 올해로 네 번째를 맞는다. 그는 분단현실을 예술적 의제로 채택하는 동시에 그것을 전지구적인 네트워크로 확장하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것은 글로벌한 문화지형 속에서 예술언어 게임을 펼치는 상징투쟁의 장을 한국의 가장 리얼하고 로컬한 장소로 옮기는 일이다. 2014년부터 그는 새로운 길에 도전했다. 아시아문화전당 정보원에서 아카이브와 도서관, 연구소, 아카데미 관련 일들을 추진하고 있는 그는 아시아라는 거대한 이름에 답하는 문명사적 과제에 파묻혀 있다. 분단과 아시아 50대 초반의 큐레이터 김선정이 대면한 새로운 선택이다


- 김선정(1965- ) 이화여대 서양화과 졸업, 미국 미시간주 크랜브룩미술대학 대학원 졸업. 테이트미술관 아시아퍼시픽컬렉션 자문위원(2006), 한예종 미술이론과 교수(2006-12), 2012 카셀도큐멘타13 큐레토리얼팀 에이전트, 등 역임. 현재 아시아문화개발원 정보원 예술감독. 2004 문화관광부장관 표창, 2003 프랑스대사관 문예공로훈장 슈발리에장, 2002 월간미술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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