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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신양희, 사회를 사랑하는 예술

김준기

21세기에 접어들어 사회생활을 시작한 40대 초반의 청년 큐레이터에게 예술은 어떤 의미일까?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 이후, 우리는 청년들을 심지어 ‘아픈 청춘’으로 규정하기까지 했다. 신양희는 한국미술계에서 대표적인 청년세대 큐레이터 중의 한 사람이다. 햇수로 19년 차를 맞이한 그의 이력은 대안공간반디에서 출발한다. 목욕탕 건물을 개조한 부산 광안리의 독특한 공간 반디에서 그는 그 시대의 조건에서 마주할 수 있는 최선의 예술적 실천들과 함께 성장해왔다. 도시, 신체, 여성, 지역 등의 주제를 풀어내는 것이 반디 시절 큐레이터 신양희의 중심이었다. 이 시기에 미술문화잡지 <B-ART> 편집장을 역임한 그는 이후 경향 아티클에서 기자 일을 했다. 2015년 이후부터 지금까지는 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다. 

인문학부 출신으로서 신양희의 핵심 업력은 조사연구와 편집이다. 학부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문화기획을 전공한 그는 석사학위 논문 「1980년대 이후 부산의 미술운동-형상미술과 민중미술을 중심으로」(2012)를 썼다. 미술문화잡지 편집장 출신답게 그는 다수의 에디터 경력을 가지고 있다. 대안공간반디 관련 기록화 작업을 진행했으며, 안창홍, 신학철 등의 에술가 아카이빙 작업도 함께 했다. 문학 전공자답게 문해력을 바탕으로 한 집필과 편집, 교정 교열에 이르기까지 큐레이터의 가장 기본적인 덕목을 바탕으로 실력을 쌓아온 것이다. 



신양희


신양희는 마르크스 이론을 공부하고 그것을 토대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큐레이터다. 그는 지난 10년 간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공부하고 있다. 이 책이 어떤 책인가? 한 때는 금서였던 책이다. 1980년대에는 사회변혁운동의 관문에서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학습의 꽃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아무도 마르크스를 들춰보지 않는다. 신양희는 이러한 시대적 흐름과 역행하며 의도적으로 퇴행하고 있다. 마르크스 읽기를 시도해보았으나 만족할만한 공부에 도달하지 못했던 1인으로서 나는 신양희의 학습을 응원한다. 그의 공부는 마르크스를 토대로 서양과 한국의 고전으로 확장하고 있으며, 그것을 토대로 탄탄한 전시와 글이 나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가 기획한 전시들은 자본주의의 모순, 혁명, 계급적대, 계급투쟁, 노동, 사회, 지대 등을 주제로 한 것들이다. 그는 혁명의 현재성과 인민의 잠재성을 다루는 것에서 공동체의 이상과 염원이 담긴 석탑을 현대미술로 재해석한 하는 것에 이르기까지 정치학과 경제학, 역사, 고전 등을 두루 섭렵한다. 그가 생각하는 마르크스주의는 부정과 파괴가 아니라 긍정과 생산에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따라서 고전을 바라보는 시각도 지금의 관점이 아닌 당대의 관점으로 회귀하는 것에서 재출발하기 시작했다. ‘당대의 물질과 정신에 조응하면서도 이상을 지향했던’ 고전의 힘을 제대로 인지하고 그것을 동시대의 것으로 재생산하려는 것이 큐레이터로서 신양희가 전근대미술을 다시 보는 이유이다. 

이동파에서 구축주의, 생산주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으로 이어지는 러시아미술을 연구하고 그 의미를 새로운 차원으로 되새겨보는 것이 그가 갈 길이다. 이와 함께 한국의 전근대미술에 관심을 두고 사찰, 폐사지 등의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그는 사회와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역사적 두께 위에 얹어놓고 들여다보는 심층 연구를 하고 있다. 그것은 서구의 영향을 받고 성장해온 자신의 지적 토대를 확장함으로써 더욱 단단한 큐레이터정신을 갈고 닦는 과정이다. 마르크스 사상과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함께 공부하는 그는 고전의 성취와 동시대의 정동을 담대하게 마주하는 청년 큐레이터다.

19세기를 지배했던 자유주의 기반의 자본주의 질서는 21세기 들어 신자유주의 경향의 자본주의 체제로 탈바꿈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이 꿈꿨던 세계는 오지 않았고, 자본주의 세상은 훨씬 더 견고하게 전지구를 휘감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대안적 사유와 실천을 이끌어내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19세기의 영웅적 서사가 직접적인 해답을 가져다 줄 리는 만무하지만, 나는 신양희 큐레이터가 꿈꾸는 예술과 사회에 대한 융합적 시도가 유의미한 과정을 거쳐낼 것이고 생각한다. 큐레이터의 이름으로 세상을 뒤흔드는 혁명을 꿈꾸는 일은 신양희의 꿈만이 아니다. 그것은 예술의 이름으로 우리가 함께 꿈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양희정신의 핵심은 사회를 사랑하는 예술을 탐구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를 비판하는 예술로서만이 아니라 비판 대상으로서 사회의 조건 아래서 예술이 어떻게 자리매김해야 하는지에 대한 보다 구체적 사유와 실천에 근접하는 일이다. 부정하고 반대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 대안을 내놓고 새로운 합의를 도출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과정으로서의 예술에 대해 그는 광폭의 시야를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신양희라는 청년 큐레이터를 지켜본 나는 향후 20년간 더 그의 길을 지켜볼 것이고, 그것을 토대로 장문의 신양희론을 써볼 생각이다. 세계를 뒤흔든 마르크의의 사상과 혁명에 대해 이처럼 진지하게 파고드는 연구자/기획자라면 향후 더욱 반듯하게 자신의 사상을 정리하여 굳건한 신양희정신을 세우고 큐레이터로서의 단단한 길을 걷고 있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 신양희(1982- ) 경성대 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 문화기획 석사 졸업. 대안공간반디 큐레이터, 미술문화잡지 『B-ART』 편집장, 경향 『아티클』 기자 역임. 2015-아마도예술공간 큐레이터. 2007 ‘기억의 더께를 넘어서-1980년대 부산의 형상미술’·2011 ‘이별과 애도’(대안공간반디), 2017 ‘옥토버(OCTOBER)’(아르코미술관), 2016 ‘Antagonistic Monument’·2019 ‘사회적 조각을 위한 방법 연구’·2021‘21세기 기념비-절대적인 것에 대하여’(아마도예술공간) 등 전시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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