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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쇠붙이에 핀 꽃, 박물관 연금술사 태정민속박물관, 김창문

윤태석


자물쇠를 다듬고 있는 태정


“역사의 광장에서 이름 없이 사라진 서민들의 ‘작품’을 모아서 그 의미를 새기고…그것들은 용광로로 들어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니, 네가 그들의 솜씨를 자랑해 주라고…”
(특집: 외길을 간다. ‘나의 지게자리’ 김창문,『샘터』1985년 6월호 참조)

김춘수가 그의 시「꽃」에서 말한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와 같은 대목이다. 누군가 그저 엿이나 바꿔먹었을 법한 쇠붙이에 생명을 불어넣어 꽃을 피우게 한다면 그는 곧 창조자일것이다. 목가구류에서 떨어져 나온 장석류에 미학의 심장을 뛰게하여 당당히 유물로 등극시킨 박물관 연금술사, 그가 태정 김창문(苔井 金昌文)이다.

태정은 1923년 경남 함양군 안의면 도림리 944번지에서 김령김씨(金寧金氏), 김덕수(金德守) 선생과 거창장씨(居昌張氏),중천(中川) 여사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은 대대로 농사를 가업으로 이어온 중농이었다. 태정이 여섯 살 때, 평범한 농사꾼이었던 아버지가 동네 사람에게 서준 빚보증이 잘못되면서 집안은 풍비박산 지경에 이르게 되었다. 학교 진학은커녕 하루하루 끼니도 해결하기 어려운 형편이 되고 만 것이었다. 

진주(晉州), 말끔히 차려입고 신작로를 따라 어디론가 사라졌다 돌아오곤 하던 집안 어른들이나, 머리에 광주리를 인 채 가끔 마을에 들리곤 하던 방물장수 아주머니에게 들었던 이름이었다. 일곱 살 태정은 신기루처럼 현묘하기만 하던 진주로 가출을 감행했다. 꼬박 이틀을 걸어서 당도한 진주는 대도시였고 그만큼 낯설고 무섭고 외로운 땅이었다. 어느새 길을 잃어 집으로 돌아갈수 도 없는 신세가 된 태정은 굶어 죽지 않으려면 발버둥을 쳐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했다. 그렇게 2년, 태정은 우연히 고향 사람에게 발견되어 그토록 그리던 가족과 상봉할 수 있었다. 아들과의 기적 같은 재회를 계기로 아예 거처를 진주로 옮긴 부모님과 네 형제의 궁핍한 생활은 장소만 바뀌었을 뿐 그대로였고, 아이스케키, 찹쌀떡 장사 등 식구들의 생계를 위한 태정의 적지 않은 수고 또한 간간이 이어져야만 했다. 계속되는 곤궁한 현실과 접하면서, 또 나이가 들어갈수록 공부를 하지 못한 후회가 태정을 점점 힘들게 하고 있었다. 이것이 동기가 되어 4년제 진주 제3 야학교에 진학한 그는 낮에는 생업을 위한 돈벌이를, 밤에는 그토록 갈망했던 공부에 전념했다. 태정이 13세가 되던 1936년에야 졸업할 수 있었고, 이것은 그가 받은 정규교육의 전부였다. 그 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몇 년 전 일자리를 찾아 부산으로 떠났던 형은 소식마저 두절되어 아버지의 임종조차 할 수 없었다. 태정은 사실상 완전한 가장이 되고 만 것이다. 하지만 공부를 마쳤다는 자신감과 가장으로서의 막중한 책임감은 태정의 삶에 더욱 애착을 갖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다.



김창문의 진주 제3야학교 졸업식(맨뒷줄 좌에서 6번째)

그의 나이 16세에는 같은 동네에 사는 집배원의 제안으로 별사(別仕:장거리 배달에 특별수당이 주어지는)배달원을 하기도 했으며, 17세에는 품삯이 많은 험난한 공사판에서도 일을 해야만 했다. 그러던 중 스무 살이 되던 해, 흔히 말하는 일제 강제징용 입대영장을 받게 되었다. 북해도로 끌려가면 끝이라는 주변사람들의 말은 태정을 더욱 절박하게 했지만, 입대를 피할 수는 없었다. 입대 길에 오른 그는 궁리와 궁리, 우여곡절과 천신만고 끝에 경유지인 일본 시모노세키에서 가까스로 탈출에 성공했다. 이후 지인의 도움으로 고철을 운반하거나 북한에서 수입된 무연탄을 화차에 옮겨 싣는 부두 노역을 하며 지내던 태정이 까마득하게만 느껴졌던 광복을 맞이한 것은 일본으로 끌려 간지 7년 만의 일이었다.

일본에서 악착같이 모은 돈을 가지고 진주로 돌아온 태정은 가족들이 모여 살 수 있는 꽤 큰 집부터 장만했다. 그리고 미역이며 쌀장사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다 영광 피혁이라고 하는 제법 큰 가죽제품회사에 가죽을 납품하는 중간상을 시작했다. 가죽을 서울에서 구입해 진주로 부치면 제법 짭짤한 마진이 생기는 일이었다. 수입이 늘어나자 한방에 돈을 벌어 그 돈으로 자신의 사업을 해봐야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곧,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털어 서울로 올라간 태정은 많은 양의 가죽을 사들여 진주로 내려보냈다. 그러나 진주에서 받은 화물은 깨진 빈 맥주병만 가득 담긴 쓰레기 보따리로 둔갑해있었다. 상상도 할 수 없는 화물운송 사고가 터지고 만 것이다. 하루아침에 빈털터리가 된 태정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 한 번에 큰 것을 이루는 것은 있을 수 없구나, 작은 것 하나하나가 모여야만 뭔가가 되는구나.’ 라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한동안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좌절 속에서도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특유의 성실함은 그를 가만 놔주질 않았다. 궁여지책으로 군화 개조에 눈을 돌렸다. 군화를 농구화 스타일로 만드는 일이었다. 여기저기서 아이디어를 찾던 끝에 신발 밑창을 비행기 바퀴 타이어로 만들면 안성맞춤이겠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관계 당국을 상대로 끈질긴 교섭 끝에 사천비행장에 쌓여있던 타이어를 불하받을 수 있었다. 이른바 ‘김창문 표 농구화’는 대히트였다. 이후 태정은 어느 정도 돈이 모이자 한빛공민학교를 세우고 초대 원장을 맡는 등 교육문제에도 관심을 가졌으며, 24세에는 4살 아래인 아내 권동순(權東順)을 만나 결혼도 했다.

신발 생산에 탄력이 붙자 1956년에 미도양화점을 냈다. 그해 겨울 모처럼 따사로운 햇살이 거리를 가득 메우던 어느 날 가게 앞에서 지게를 지고 지나가던 엿장수를 보게 되었다. 무심코 본 지게 위에는 경첩 몇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 마침 아내가 좋아하던 안방 윗목의 농 문짝 경첩이 고장 난 터라 엿장수를 멈추게 하고 경첩 몇 개를 구입했다.


진주향토민속관에 전시되어 있는 다양한 장석

이날. 태정에게 흑백사진처럼 선명한 이 순간이 바로 경첩을 비롯한 우리전통미술품을 수집하게 된 첫 시작이었다. 이날로부터 평생토록 그가 수집한 자료는 20만 여 점에 이른다. 그는 1982년 진주시 대안동에 조선 시대 가구장식박물관을 설립하였고, 1986년에는 본성동에 태정민속박물관을 신축개관하였다. 1999년에는 진주시에 모든 자료를 기증함에 따라 지금의 진주향토민속관이 문을 열게 되었다.

시인 유안진의 말(유안진의『향기여, 사랑의 향기여』(1991), 자유문학사)처럼 태정은 ‘진흙 속의 옥돌’ 같은 사람이다. 수백 년 전 우리네 멋과 지혜와 아름다움을 가구를 장식하는 조그만 장석에 담아내다 이름 없이 살다 간 천하디 천한 쟁이. 이름조차 남기지 못한 채, 저만 아는 희열로 자기 손끝에 몰두하다 간 공인(工人)…, 바로 태정 김창문이다. 수백 년을 그늘에 살다 간 무명의 공인들. 그들의 예술혼을 오늘의 햇볕아래 부활시켜 준 사람, 태정은 장석에 생명을 담아 박물관에서 꽃피게 한 연금술사로 기억될 것이다.


태정민속박물관



- 태정 김창문 (苔井 金昌文, 1923 - 2003) 경남 함양 안의면 출생. 진주 제3야학교 졸업. 진주 한빛공민학원 설립 참여와 원장 역임, 장석 및 문화재 수장가(1956년 조선시대 가구장석 수집 시작. 총 수집자료: 약 20만 여점-가구장식: 3천여 종에 20만점, 자물쇠: 180여 종에 2천여 점, 바가지: 1천여 점, 기타: 도가니,거푸집, 활비비 등 생활민속품 100여점), 한국 다례회 회장(1969). 유네스코 한국위원회 초청 ‘조선조 가구장식 500년 전’ 개최(세종문화회관,1980), 진주 '조선시대가구장석박물관'개관(1982.3.20). 대한민국 은관문화훈장 수훈(1982). 태정민속박물관 신축개관(1986.12.12). 경상남도문화상 수상(1986).『나의 지게 자리』-朝鮮朝家具裝飾紋樣集과 苔井民俗博物館長의 一生- 진주신문사 발행(1995.12),수집자료 전체 진주시 기증 후 진주향토민속관 개관(1999.10.9), 2003년 노환으로 별세(80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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