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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무모한 꿈의 아름다운 대물림 남포미술관 곽형수 관장

윤태석

남포미술관 전경

곽형수는 학교법인 팔영학원의 설립자인 남포(南浦) 곽귀동 선생의 셋째 아들로, 전남 고흥군 영남면 양사리에서 태어났다.그의 부친은 순천만을 끼고 있는 여수에서 갖은 궂은일을 마다치 않고 각고의 노력과 타고난 근면함으로 꽤 규모가 큰 수산업체를 운영하던 성공한 사업가였다. 빈농에서 태어나 배움이 짧음을 늘 아쉬워하던 남포는 고향에 대한 애정 또한 각별했다.

따라서 부가 축적될수록 고향에 기여하고 싶은 생각은 커져만 갔고 그 결과 척박한 환경에 놓여 배움의 길을 찾지 못하던 고향의 후배들에게 미래를 개척해나갈 수 있는 동기를 마련해 주고자 했다. 마침내 1965년 자신의 재산을 쾌척하여 고향에 고등공민학교 형태의 배움터를 마련하고 2년 후인 1967년 학교법인 팔영학원 점암 중학교를 설립하게 된다.

당시만 해도 이 지역은 첩첩산중으로 도로는 물론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오지였다. 개인의 힘으로 학교를 짓는다는 것이 무모해 보였던 지인들은 하나같이 우려를 표현할 뿐이었다. 그러나 완강했던 남포의 의지는 뱃길을 이용해 여수에서 건축자재를 실어 나르게 했고, 포구에서도 꽤 먼 데다 험난한 산길도 제법 긴 부지까지 인부들을 동원해가며 일일이 장비며 자재를 운반하게 했다.

한편, 사업가였던 부친 덕에 서울에서 유학하며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던 형수는 부친의 사업이 기울면서 창창한 미래의 큰 꿈을 접고 고향으로 내려와 학교를 책임지게 된다. 당시 사립학교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전혀 없던 때라 자체적으로 교직원의 월급을 마련해야 했다. 따라서 논밭을 처분하고, 집에서 키우던 가축까지 팔아 아버지의 유지를 받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학교를 운영하면서 크고 작은 역경과 갈등은 계속되었다. 그러나 척박한 땅에 육영정신을 뿌리내리고자 했던 부친의 높은 뜻을 거역할 수는 없어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열과 성의를 다해 학교를 이끌어 나아갔다.

이후 여러 어려운 과정을 겪으며 운영해오던 점암중학교는 행정구역이 영남면으로 변경됨에 따라 1989년에 영남중학교로 교명이 바뀌게 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농어촌 인구의 급격한 감소로 인한 소규모학교 통폐합 정책이 시행되면서 2003년 2월,학교법인 팔영학원이 해산되고 학교는 36회 졸업생을 마지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그래도 형수는 고향을 떠날 수는 없었다.

폐교된 텅 빈 교정과 교정에 세워진 아버지의 공덕비를 볼 때면 본인의 잘못으로 선친의 공적이 허망하게 무너졌다는 죄책감에 사로잡힐 때가 많았다. 이윽고, 선친이 첩첩산중 오지의 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육영사업을 펼쳤다면, 자신은 문화적 소외를 겪고 있는 지역주민들에게 문화향유의 기회를 제공하는 문화 복지로 지역사회에 봉사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다.
학교 경영 당시 미술 교사들과 스케치하러 다니며 서양화에 입문했던 형수는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고미술품과 자신이 평소 수집했던 작품들을 기본으로 미술관 설립을 계획하기에 이른다. 

곽형수 관장

이리하여 낙후된 지역사회의 등불이 되었던 선친의 뜻을 계승하고자 선친이 설립한 학교에 선친의 아호를 딴 남포미술관을 관(2005.2.19., 전남 제1호, 1종)한다. 무모하지만 아름다웠던 선친의 꿈이 아들의 아름다운 도전으로 대물림되게 된 것이다.개관 후 곽형수 관장은 2006년 남도 문인화를 집중 조명한 ‘남도 문인화의 흐름을 찾아서’전을 시작으로, 2007년에는 지역 미술관 최초로 보물 제639호 <기사사연도(耆社私宴圖)> 외 조선시대 민화 85점을 선보인 ‘옛사람들, 그 삶의 흔적을 보다’를,2012년에는 16개국 22명의 예술가가 참여한 ‘국제환경미술전’,2013년에는 예술과 우주 과학, 디지털 기술을 기반을 둔 작가들이 예술문화의 진보를 보여준 ‘은하철도의 밤’전을 개최하였다.

또한, 2015년에는 남도 서양화단의 태동과 정착, 그 성장 과정을 엿볼 수 있는 ‘과거 속에서 미래를 보다’, 동국진체(東國眞體)의 원류 및 전개과정과 호남에서의 집대성 과정을 고찰한 ‘동국진체를 꽃피운 호남의 서맥’ 등 참신하고 질 높은 전시를 계속하고있다.

뿐만 아니라 국립소록도병원(2011), 고흥교육지원청(2012),한국항공우주연구원(2014), 육군 제7391-2대대(2014) 등 지역 주요기관과 업무 협약을 맺고 매년 지역 주민과 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미술교육프로그램과 음악회, ‘찾아가는 미술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는 별개로 2011년에는 소장품 무상 대여사업을 통해 소록도와 인연을 맺어 최초로 현지 기획전 ‘아기사슴-희망을 나누다’(2011)를 가진 바 있다. 

소록도 주민대상 체험프로그램(2013)

소록도의 역사와 주민들의 애환이 담긴 삶을 예술적 이미지로 승화한 대형 벽화 제작 프로젝트 ‘아름다운 동행-소록도 사람들’전(2013)도 성공적으로 완수하여 지역 미술관의 중요성을 널리 알리기도 하였다. 이러한 노력으로 지역미술관으로는 이례적으로 2012년 전국미술관장회의를 유치하여 지역미술계와 언론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바 있으며, 어려운 여건 속에서의 숭고한 활동을 인정받아 전라남도 문화상(2012), 국무총리 표창(2014) 등을수상하게 된다.

“내가 사는 지역의 소외계층을 위해서 문화 복지를 실천하면서 내가 가진 것을 나눠줄 수 있는 대상이 있고,언제나 그들이 나를 기뻐하며 반겨준다면 이 모든 것은 나에게 내려진 신의 축복이라 할 것이다.” 곽형수 관장의 술회는 부친의 뜻을 이어 새롭게 시작한 문화사업의지를 함축하여 표명하고 있다.


국무총리표창 시상식(2014)
좌측부터 곽형수, 주미경 삼육대박물관장, 김종덕 전 문체부장관, 
윤열수가회박물관장

올해 개관 11주년을 맞이한 남포미술관은 4개의 전시장을 비롯하여 공연장, 창작교실 등을 갖추고 있으며, 다양한 장르의 문화예술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생활 친화적 문화공간으로 팔영산자락 아래 수려한 자연경관과 더불어 지역주민뿐만 아니라 외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남도 예맥의 명소가 되고 있다.

10월의 남포미술관은 곰삭은 멸치젓처럼 담백한 아름다움을 풍미하게 한다. 무질서 속에서도 나란한 잡초들은 쓰르라미를 품고, 운동장에는 푸르던 신록이 가을옷으로 갈아입을 즈음이 된다. 먼발치로 보이는 남해와 하나 되는 그대로가 천국이다. 그러나 방문자들에게 남포미술관이 더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은 아버지가 뿌려준 고귀한 터에서 하염없이 문화로 추수하고 있는 초로의 부부가 뉘엿뉘엿 석양을 마주하고 사는 소담한 일상을 마주함일 것이다. 곽형수는 이제 그의 딸을 통해 그보다 더 아름다운 대물림을 준비하고 있다


- 곽형수(郭亨洙, 1950- )
경향미술대전운영위원, 경향미술협회 이사, 한국사립미술관협회 부회장, 전남박물관·미술관 협의회장, 고흥군평생교육관 운영위원장, 한국미술협회 고흥지부장, 고흥군 문화관광 정책자문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우수박물관·미술관상(2006, 한국박물관협회), 사립미술관장상(2011, 사립미술관협회),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2011), 보건복지부장관상(2012), 전남도문화상(2012), 문화예술위원회 표창(2013), 농어촌희망재단 ‘최우수상’(2014), 국무총리표창(2014), 제31보병사단장 감사장(2015), 국립소록도병원 감사패(2016), 육군참모총장 감사패(2016)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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