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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관장, 그들이 버린 것들

윤태석



울주의 한 술도가

최근 막걸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술을 좋아해서가 아니라 막걸리가 생산되는 과정과 시설 그리고 그걸 켜켜이 감싼 채 잘 발효된 주조장을 어렴풋이 알게 되면서부터다. 최근에 가본 주조장 몇 곳은 한창 잘 익어가는 술독의 기포처럼 필자를 흥분케 했다. 꽤 유명세를 타고 있는 울주의 한 술도가는 건축부터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처음 접한 양조장은 사면을 둘러싼 육중한 검정 콘크리트 벽으로 인해 생명체는 물론 필자의 접근까지도 거부하는 듯 완고해 보였다. 


울주 술도가의 발효건축

그러나 거기에는 파격이 숨어있었다. 콘크리트를 자세히 보니 일정한 간격의 촘촘한 수직선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다름 아닌 짚으로 정성껏 꼰 새끼줄이었다. 양조장을 중심으로 주변의 갖은 기운을 빨아들여 알곡을 영글게 했던 폐 볏짚이 주조장과 만나 또 다른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건축가인 술도가 주인의 아들이 설계한 이 건물은 ‘발효건축’이라는 이름을 부여받고 막걸리와의 교묘한 소통의 징검다리를 놓고 있었다. 그걸 알고 나니 비로소 술도가는 필자를 받아들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맘씨 좋은 남자주인이 술부터 한잔 권했다. 박물관의 소장품처럼 외부인과 직접 대면하는 술맛은 달콤하고 감미로우며 가벼운 데다 탄산기까지 더해져 여성들이 참 좋아할 법했다. 술을 직접 빚는 여주인에게 비법을 물으니, “별다른 레시피(Recipe)는 없고 그저 눈대중으로 빚을 뿐입니다.” 그것이 전부였지만 ‘발효건축’도 분명히 술맛에 가치를 더해 주는 듯했다.


충북 괴산 양조장의 오래된 술독

괴산군 목도리에 있는 양조장에서 맛본 술은 85년 전통이 침전된 짙고 텁텁함을 유전처럼 이어오고 있었다. 새 곡자(曲子)에 붙게 되는 곰팡이는 덕달귀(낡은 집에 붙어 있는 귀신)같이 남아 있다가 누룩을 만나 역사를 더하고, 주인(酒人)이 정성껏 쪄낸 고두밥은 그것과 버무려져 양조장만큼이나 오래된 술독에 자리를 잡으면 술은 작위(作爲)를 넘어선 경지로 익게 되는 것이다. 정읍 태인에서 조우한 한 술 장인은 “술도 주인을 알아봅니다. 제가 자리를 비우면 잘 익지 않을뿐더러 향과 맛도 좋지 않지요”라고 했다.

박물관·미술관(이하 박물관)의 탄생을 보는듯해 필자가 수긍하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최근 경기가 좋지 않다. 경기뿐만 아니라 국내외 정세마저 불안해 불확실성은 증폭되고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것이 부유물처럼 표류하는 형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도 박물관은 매년 60개가량씩 늘어나고 있다. 인구감소 및 장기 경기침체 등으로 도서관, 공연장, 편의점은 물론 치킨집마저도 늘어나기 힘든 상황이다. 콘텐츠의 중복과 균일한 운영시스템, 물리적 욕구충족의 목적 등이 그 이유가 아닌가 한다. 그러나 박물관은 이러한 제약에서 비교적 자유로운 구조다. 콘텐츠가 상이함에 따라 시스템도 차이가 있으며, 좌석 수와 같은 향유의 방식 역시 적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강원도에서 만난 한 컬렉터

필자는 지난 2년여간 박물관 탄생의 근저를 캐보고자 ‘관장명감’이라는 제목으로 관장들의 스토리를 담아보았다. 주조장의 술맛이 주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박물관 역시 관장들로 하여금 수집,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 교육 등의 활동과 시스템, 인적자원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즉, 관장이 곧 박물관인 것이다. 필자가 관장에게 관심을 갖는 이유이다. 

“사람들은 하나같이 얻는 것을 좋아한다. -중략- 그러나 때로는 잃지 않고는 얻을 수가 없다. 크게 버릴 줄 아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 법정 스님의 이 법문은 음미할수록 박물관장과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수집욕을 기본으로 하는 관장들은 법정이 말한 무소유와는 거리가 먼 사람들일까? 아니다. 그것과는 정반대다. 법정이 말한 것처럼 버림의 미학을 실천 했기에 얻음의 가치를 체득한 것으로 봄이 옳다. 그들이 버린 것은 상상할 수 없이 값진 것들이다. 새로운 것, 친근한 것, 가까운것, 보편적인 것, 일상적인 것, 세속(유희)적인 것, 부가가치가 큰 것 등을 버리고 고독과 적막한 험로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각기 다른 2,000여 개의 막걸리병, 셀 수도 없을 만큼의 많은 공중전화카드와 복권, 기차표 등을 수집하고 있는 70대 후반의한 컬렉터를 강원도의 한 소도시에서 만난 적이 있다. 가족들이 사는 곳에서 멀리 벗어나 홀로 지내고 있는 그의 생활은 곤궁했다. 수장고와 전시장, 생활공간을 겸하고 있는 허름한 공장 창고 같은 방은 온기는 간데없고 빈 냄비와 라면 봉지만이 나뒹굴고 있었다. “자식들은 유물에는 관심이 없어요. 아니 이런 제가 싫어 여긴 오지도 않지요.” 유물을 자식으로 자식들은 아버지를 유물처럼 대했고, 그 이상의 가족사는 박제처럼 깊게 팬 이마의 주름 속에 감춰져 있는 듯했다. 지금까지도 필자의 마음을 무겁게 한다.


김달진 관장과 필자 (2009.12.6, 동경국립근대미술관)


필자가 보는 박물관·미술관장들은 참 순박하고 단순한 사람들이다. 초보운전자처럼 뻐근할 정도로 핸들을 움켜쥔 채 무서운 집착과 소유욕으로 전방만을 응시하며 그저 내달리고 있다. 그들에게는 더는 좌우와 후방은 없다. 짐칸에 실린 물건들이 떨어지도록 놓아둔 채 말이다. 이러한 현상은 어려운 시기에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한 수장가일수록 치열함을 알 수 있다. 이들은 자료의 질과 양만이 박물관의 수준을 좌우한다는 이분법적 사고에 매몰된 철저한 자본주의의 신봉자들이다.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에서부터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등 수많은 철학자가 말했던 ‘세속화된 종교로서 자본주의’에 포섭당한 채 지금도 그 무지개를 쫓고 있다. 그들에게 자본주의는 곧 박물관이며 박물관은 곧 세속과 담합한 종교인 것이다. 


2007년 6월 5일 오후, 축 처진 어깨만큼이나 무거운 가방을 짊어지고 그것도 부족해 양손에 묵직한 자료 뭉치를 든 또 한 명의 종교인을 프레스센터 앞에서 만났던 기억이 새롭다. 차를 얼른세워 그를 태웠다. 그는 서울시립미술관의 모네 전 개막식에 다녀오는 길이라고 했다. 차 안에서 필자는 그동안 마음에 담아 왔던 얘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얼마 전에 갖춘 자료실을 보다 체계화해 박물관으로 해보시죠?” 여기서의 박물관은 우선 시스템을 의미하는 것으로 자료실과는 다른 체계임에 따라 그에게 또 다른 희생과 많은 버림을 강요할 것이 빤했기에 그동안 필자는 말을 아껴왔었다. 이후 수차 현장방문과 유선상의 논의가 있었고 그 이듬해에 박물관은 탄생(2008.3.19)을 맞게 되었다.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다. 김 관장도 잃은 것이 참 많았을 것이다.


박물관을 유지하기 위해 세 번 더 이사했으며, 80년대부터 어깨에 무거운 쇼핑백을 둘러메고 다닌 것이 어깨에 문제가 생겨 큰 수술도 받았다. ‘관장명감’, 관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수집한 것보다는 버려야만 했던 것을 알게 한 소중한 기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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