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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허준과 겸재의 현몽을 실증한 산파, 김병희 원장

윤태석

제5회 겸재문화예술제(2019)에서 개회사하는 김병희 원장


허준박물관 특별전 관람(중앙 우측 김병희 원장, 좌측 정면 김쾌정 관장, 2018)


삼성 이건희 회장이 수집한 미술품이 사회로 환원되면서 우리 국민은 뜻하지 않는 눈 호강을 하고 있다. 이를 소장하게 된 박물관과 미술관은 물론 우리나라 전체 문화 수준이 확 높아진 느낌이다. 한 명의 컬렉터가 우리 사회에 미칠 수 있는 긍정의 에너지가 얼마나 큰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가 아닐 수 없다. 서울 강서문화원 김병희 명예원장도 이런 분이다. 이른 나이에 고향 상주를 떠나 강서구에 자리를 잡은 그는 크고 작은 역경을 이겨내고 자수성가한 사업가로 이 지역에서는 꽤 알려져 있다.

 “외국에서는 ‘돈이 많다.’는 것 자체가 존경의 대상이지만 우리나라는 ‘돈 좀 있다.’ 하면 ‘어떻게 벌었지’라며 부정적인 시각을 갖습니다. 여기에는 기업인 잘못도 크다고 봅니다. 기업가도 사회적인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합니다. 어렵고 소외된 사람들을 도와야 합니다. 문화도 같은 맥락입니다. ‘문화예술은 잘 사는 사람만 즐기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함께 공유해야 합니다.” 2022년 초 모 언론에 그가 한 인터뷰다. 그는 이런 기업가 정신을 바탕으로 강서문화원을 설립하는 데 앞장서게 된다. 그리하여 1994년에 발족한 문화원을 이끌며 강서구에 공립(구립) 허준박물관과 겸재정선미술관이 건립되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개관과 함께 기초자치단체의 열악한 재정여건과 불안정한 인사·조직 체계를 안정화하는데 우선하고자 뮤지엄 운영을 구청으로부터 문화원으로 이관받게 된다. 가장 먼저 그는 그 분야 최고의 전문가 관장을 영입하고 임기를 보장하는 조치를 해 나아간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공립 박물관에서는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안정적인 인사체계를 구축할 수 있었다. 2005년 개관과 함께 위촉해, 18년째 허준박물관을 이끌고 있는 김쾌정 관장, 겸재정선미술관 故 이석우 관장(재임 중 2017년 2월 별세)과 뒤를 이어 관장직을 수행하고 있는 김용권 관장이 바로 그들이다. 

허준의 김 관장은 1964년에 우리나라 최초의 의약 전문박물관으로 문을 연 한독의약박물관에서 학예사와 관장으로 30여 년을 봉직했으며, 재단법인 의성허준기념사업회 이사를 거치는 등 이 분야 최고의 전문가로 통한다. 1976년 한국박물관협회 창립 멤버일 만큼 폭넓은 영향력으로 재임 중 한국박물관협회 회장 등을 역임할 수 있었던 것 역시 김 원장의 든든한 뒷받침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술사학자로 모 대학의 명예교수로 있던 이석우 교수를 겸재의 초대 관장으로 영입했거나 역시 미술사가(史家)이자 민화 연구가인 김용권 박사를 제2대 관장으로 초빙한 것은 전문적인 기반구축의 좋은 예로 여타의 공립 박물관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확고한 기반 다지기가 아닐 수 없다. 

김병희 원장이 기탁한 정선의 <겸재망원>
18세기, 지본담채, 19.5×17cm


이렇게 두 기관이 안정되자 김 원장은 허준 축제와 겸재 문화예술제를 비롯해 명사·석학 미술 인문학 강좌, 학술 세미나, 겸재 학술논문 현상 공모 및 겸재연구회 운영, 겸재 진경 미술대전, 겸재 전국 사생대회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후원하며 지역을 넘어 우리나라 문화예술발전에 진력한다. 그와 동시에 그는 예산과 절차 등의 제약으로 작품 수집에 애를 먹고 있던 상황을 직시하고 허준 관련 자료와 겸재 당사자는 물론 당대 화가들의 작품까지도 수집에 나서게 된다. 이렇게 투여된 적지 않은 사재와 열정으로, 흩어져있던 겸재와 당대 미술품이 무려 140여 점에 이르고 있다. 이 작품들은 꾸준히 미술관에 기탁해 겸재 예술의 지평을 획기적으로 넓힘과 동시에 시민들에게 공개해 미술관의 역량을 확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겸재의 진본 기탁품 14점을 비롯해 조영석(趙榮祏), 박동보(朴東普), 김두량(金斗樑), 심사정(沈師正), 이인문(李寅文) 등 우리 미술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조선 후기 작가들의 작품과 이와는 별도로 소장하고 있던 고화(古畫) 중에서 선별한 60여 점 등 총 200여 점을 망라한 소장품 도록『혜안』을 2022년에 발간한 바 있다. “우리는 여유 있는 재벌급 기업인들이 미술품을 수집하는 경우를 보아왔다. 하지만 김병희 원장은 예술의 수확물을 모으는 데서 멈추지 않고 직접 그 텃밭을 가꿔 주민들과 문화원을 건설하고 허준박물관과 겸재정선미술관 설립을 추진·건립하였다. 게다가 전시할 작품 수집도 사재를 털어서 했다. (중략) 기업인으로서 문화예술계를 위해 이토록 헌신한 분이 아직 내 기억에는 없다.”라고 초대 문화부 장관을 지낸 故 이어령 선생은 도록의 축사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2021년 문화유산유공자 정부 표창을 받는 자리에서 김 원장은 “뮤지엄이 그 나라의 문화 수준이다. 강서구가 문화적으로 낙후돼 있었는데 강서의 문화 수준을 끌어올릴 방법을 찾다가 박물관과 미술관 건립에 나섰다.”고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집에서 혼자만 감상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어요. 미술관을 찾는 분들과 함께 보는 것이 좋지요. 강서구는 서울 자치구 중 살림이 가장 어려운 곳입니다. 따라서 구 예산만으로는 작품 수집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미술관에 기탁할 생각으로 한 점 두 점, 사 모으기 시작했죠.” 사회적 책무와 지역 공동체로서 뮤지엄이 갖는 선한 영향력을 엿보게 하는 수집의 동기다. 허준박물관과 겸재정선미술관의 외형은 기초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딱 그 정도 규모의 뮤지엄이다. 그러나 이들 뮤지엄에서 발현하는 영향력은 앞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실로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 해당 분야의 석학과 연구자들에게는 폭넓은 연구와 학술의 장을 마련해주고 있으며, 작가들에게는 창작과 발돋움할 다양한 기회를 꾸준히 제공하고 있다. 그 성과는 어느 저명한 학술단체와 예술기관의 그것에 견주어 전혀 부족함이 없다. 전시와 교육프로그램(체험과 공모전 등) 역시 대단히 다채롭고 입체적이어서 지역주민은 물론 학생들에게도 호응과 참여도가 대단히 높다. 작은 공립 뮤지엄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대단히 모범적이고 선진적인 활동이 아닐 수 없다. 일차적으로는 전문가 관장의 안정적인 역할과 이를 믿고 함께하는 구성원들의 책임감 있는 수고가 곁들여진 결과이겠으며, 여기에 현 김진호 문화원장의 높은 문화 인식과 리더십이 더해지며 의성(醫聖) 허준의 약성(藥性)과 화성(畵聖) 겸재의 묵향이 갈수록 그윽해 지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향원(香原)을 찾아가다 보면 그 정점에 늘 김병희 선생이 서 있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김병희(金秉喜, 1948- ) 
고려대 법대 졸업, 서경산업(주), 금강레미컨(주), 효신교통(주) 등의 기업 경영자, 서울남부지방법원 인사조정위원회 위원장, 법무부 서울남부지역 ‘법사랑’ 장학재단 이사장, 백야장학재단 이사장, 서울상공회의소 강서구상공회 회장 역임, 서울시 강서문화원장 역임(제2대, 제5-8대), 제22회 자랑스런 박물관인상 특별공로상 수상(2019, 한국박물관협회), 2021년 문화유산국민신탁 활동 유공자 문화재청장상 수상, 국민훈장 동백장(2001) 및 모란장(2016) 수훈, 제5회 안평안견미술문화대상 수상(2022, 안평안견현창사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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