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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메타복스(META-VOX)’에서 메타복스가 되다 김찬동 관장

윤태석

영국예술위원회 앞에서(2002)


국립현대미술관장이 지난 9월에 임명됐다. 낙점되지는 못했지만, 최종 심사까지 올라간 후보 중 한 명이 김찬동 전 수원시립미술관장이다. 덕분에 때아닌 유명세만 치렀다. 그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미술반 활동을 했기에 미대를 가야 하는 것이 당연한 줄로만 알았다. 필자가 아는 김찬동은 예나 지금이나 조용하고 과묵해 그가 저항적 미술운동 그룹, ‘메타복스(META-VOX)’를 결성, ‘탈모던’을 기저로 공모전을 거부하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자는 등 기성 미술체계에 맞서왔었다는 사실이 그와 잘 연결되지 않는다.

그는 95년도까지 개인전을 두 번이나 했으며, 메타복스가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자 당시 그의 스승이자 미술비평가였던 이일 홍익대 미대 교수가 기획한 ‘30대 전’에 그룹 전체가 초대되는 등, 이 혁신적 미술운동은 당시 미술계의 인정을 받게 된다. 이후 메타복스는 인터넷 포털의 국어사전과 『한국현대미술 다시 읽기 80년대 소그룹 운동의 비평적 재조명』(청음사 편, 2000), 『20세기 한국미술운동사』(서울현대미술연구소 도서출판 ICAS 편, 2010), 『한국 미술단체 자료집 1945-1999』(김달진미술연구소, 2013) 등에서 확인할 수 있을 만큼 이슈를 만들어 낸 그룹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저항적 미술그룹 _ 메타복스


이후 제도권으로 들어가 더 큰 뜻을 이뤄보고자 택했던 곳이 한국문화예술진흥원(한국문화예술위원회 전신)이였다. 1984년에 진흥원에 들어가 미술 행정과 지원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작가로 활동하며 메타복스를 이끌었다. “마치 동원 예비군처럼 국립현대미술관 ‘’87청년작가전’, 일본 아이치현립미술관(愛知県立美術館) 한일교류 ‘환류전’ 등 국내외 주요 전시에 자주 차출되었습니다. 그땐 정말 치열하게 작업했었는데 당시의 열정이 그립기도 하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실천의 열망이 진흥원으로 가게 된 동기였습니다.”

그렇게 그는 미술 분야 지원사업의 담당자와 책임자, 아르코미술관의 큐레이터와 관장 등을 역임하며 30여 년간을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일했다. 문예 진흥기금과 다양한 예술공간을 운영하는 문예진흥원에서의 업무는 국내외 문화예술 생태계 동향과 심층 정보 파악, 전문가들과의 네트워킹을 가능하게 했으며, 문화예술 특히, 미술 분야의 제도적 변화와 정책 과제를 연구하여 그 결과를 구현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되었다. 국가적으로 중요한 제도나 미술 단체, 작가들에 대한 지원프로그램을 개발·운영은 물론, 아르코미술관을 통해 미술관 정책연구와 운영모델을 개발할 좋은 기회였다. 

“국내 큐레이터 제도 도입 초기인 1989년에 떠난 일본 사이타마현립미술관(埼玉県立美術館)에서의 연수와 방문연구원 자격으로 2002년 런던 시티대학에서의 예술경영과 미술관 제도 운용 연수는 제게 해외 선진 미술관 정책과 경영 운영의 노하우를 터득하게 해준 엄청난 개안의 시간이었습니다. 미술과 미술관에 대한 제 인식의 큰 변화를 준 계기였던 거죠.” 김찬동의 술회다. 특히, 런던 연수에서는 영국예술위원회(ACE: Arts Council England)의 신자유주의적 정책과 급부상하던 yBa(young British artists) 활동, 테이트모던, 발틱 현대미술센터(Baltic Centre for Contemporary Art) 조성과 터너상(Turner Prize) 등 새롭게 변모하는 영국의 미술 정책 현장을 깊숙이 체감할 수 있었다. 런던에서의 경험을 살려 미술관에 전문성과 역동성을 더하며 신진작가들을 국내외 현장 전문가들과 접맥시키는 ‘전문가 아카데미’를 신설 운영하여 큰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후에는 전문위원으로서 베네치아비엔날레 한국관의 운영 등 시각예술 분야 전반의 개선방안에 관련한 조사·연구와 협력 사업을 수행하면서 국제미술계의 동향과 네트워크를 구축할 수 있었다. 이외에도 김찬동은 다양한 국제 비엔날레나 컨퍼런스에 참여하며 미술 행정과 미술관 현장 전문가가 지녀야 할 안목과 국제적 동향을 익혀 나갔다.


김찬동, 떠도는 능기(能記), 한지 등 혼합매체, 1986


아르코미술관에서 그는 큐레이터로서의 사명감으로 강소형 미술관을 구축하고자 전념했다. 처음으로 큐레이터 직제를 신설하고 한국 현대미술사의 재해석과 신진작가 발굴, 국제교류를 목표로 다양한 전시콘텐츠와 국내외 미술관 교류 프로그램을 개발하였다. 이승택, 김구림, 박현기, 이건용 등 당시 비주류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한국 현대미술 초대전’을 통해 한국 전위 미술의 맥을 재조명하였으며, ‘한국현대미술 신세대 흐름전’을 신설해 다양한 주제의 신진작가들을 발굴하고자 하였다. 아울러 대안공간과 레지던시가 활성화되던 IMF 체제 이후 젊은 작가들을 육성하기 위한 대안적 성격의 전시 공간인 ‘인사미술공간’을 조성해 화단의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는 데 일조했다.

재직 중에 광주와 부산비엔날레 등 대형 전시 프로젝트의 큐레이터로 참여했고, 현재까지 대학원을 중심으로 전시기획, 예술경영, 미술관학 등을 강의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 최초의 미술비평 웹진인 「미술과 담론」 창간(1996년)을 주도하여 편집인과 편집 자문위원으로 활동하며 우리 화단의 다양한 담론과 평론을 생산해 오고 있다. 2001년에는 현장 전문가들과 함께 ‘한국예술경영학회’를 설립하여 부회장과 감사, 이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문화예술위원회를 퇴직한 이후에는 그간의 경력을 살려 경기문화재단 뮤지엄본부장, 수원시립미술관장으로 부임하면서 국내외 뮤지엄 정책과 국제 수준의 뮤지엄 발전 방안 연구 및 공립미술관 운영 활성화에 매진한 바 있다. 이 중 경기문화재단의 뮤지엄본부장으로 일할 때는 백남준미술관 등 재단 산하 6개 뮤지엄을 총괄하면서 G뮤지엄의 정체성 발굴에 전념하였다. ‘현대미술 박물관에 스며들다 전’ 등 박물관 미술관 간 융복합을 위한 전시개발, 공사립미술관 협의체인 ‘미술관 포럼’ 결성·운영, 경기도 내 뮤지엄 중장기 발전계획인 ‘뮤지엄 파크 프로젝트’를 기획하기도 하였다. 

수원시립미술관의 초대 관장으로 자리를 옮겨서는 수원이 가진 도시의 역사 문화적 속성을 기반으로 한 전시콘텐츠를 개발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를 위해 사업소 조직을 미술관 체제로 전환하고 신설 미술관의 체계와 국제적 위상의 기틀을 마련하였다. 정조나 나혜석, 혜경궁 홍씨 등 수원과 관련된 역사문화 콘텐츠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기획전과 아시아 최초로 세계적인 미디어 아티스트 ‘게리 힐 초대전’ 등을 통해 경쟁력을 가진 지역미술관의 모델을 구축고자 하였다. “수원은 역사적으로 많은 원천 콘텐츠와 잠재적 경쟁력을 가진 도시입니다만 예산과 전문성, 행정적인 한계가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그의 말에는 그간 쌓은 풍부한 노하우를 구현할 기회를 마련코자 하는 의지가 묻어 있다.

현재는 ‘2024 베네치아비엔날레 특별전’ 커미셔너를 맡아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 현대미술의 흐름과 정체성에 기반한 K-아트의 국제적 위상을 높일 수 있는 전시콘텐츠를 탐구하고 있다 .


- 김찬동(金瓚東, 1957- ) 홍익대 및 동 대학원 서양화과 졸업. 서울시 박물관미술관진흥정책심의위원, 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예술총감독, 수원시립미술관장, 경기문화재단 뮤지엄본부장, 아르코미술관장, 런던 시티대 방문연구원, 광주비엔날레 특별전 커미셔너, 계간 「미술과 담론」 발행인과 편집인 등 역임. 현 소마미술관 운영위원, 베네치아비엔날레 특별전(Singing from dark night) 커미셔너, 홍익대 대학원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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