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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자연스럽게 수집병(病)이 저에게로 옮겨붙은 듯합니다_박물관휴르, 이숙일 이사장·여송하 관장

윤태석


여송하 관장과 이숙일 이사장

“부엉이를 찾아 스위스에 갔을 때 일입니다. 하루는 수염이 멋진 노(老) 신문사 기자가 운영하는 가정집 형태의 숙소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분을 따라 현관으로 들어가는 데 정원 잔디밭에 부엉이 조각상 하나가 눈길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분은 다음 날 아침, 집으로 식사 초대를 해주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자연스레 부엉이 이야기를 하게 되었지요. 한국에서 자그마한 부엉이박물관을 한다고 하니까 잠시만 기다리라고 하더니 그 부엉이를 가져오는 게 아니겠어요. 직접 사인까지 해주시며 제게 기증하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자가 결혼할 때 장인 장모가 지역 유명 작가에게 제작을 의뢰해 결혼 선물로 주신 거라고 하면서요. 본인보다는 박물관을 하는 분이 보관하는 게 좋겠다며 아무 대가도 바라지 않았지요. 그저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돌로 만든 거라 가져오는 데 여간 애를 먹은 게 아니었지만, 이 살뜰한 사연까지 더해 부엉이는 우리 박물관에 잘 보관되어 있습니다.” 여송하 관장의 말이다.
이렇듯 박물관휴르의 자료 수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휴르’는 올빼미과의 솔부엉이, 수리부엉이, 칡부엉이 등을 통틀어 이르는 부엉이의 옛 이름이다. 

이 박물관의 설립자인 이숙일 박물관휴르 이사장은 30대 초반부터 일제 강점기 그릇을 모으기 시작했다. 수집의 동기는 명확하지 않다. 다만, 필자가 만나본 컬렉터들에게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수집의 DNA와 그가 화가였기에 그런 게 아닌가 싶다. 40대에는 본격적으로 민속품 등으로까지 눈을 돌려 수집의 범위를 넓혔다. 떡살, 도자기, 자수, 민화, 반닫이의 장석 등에 부엉이의 형태나 문양이 자주 눈에 들어왔다. 이때 부엉이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처음에는 단지 부엉이의 생김새가 좋아 모으다가 점차 상징적 의미나 역사에 빠져들면서 부엉이에 대한 애정을 키우게 되었다. 길상과 의미를 중시하는 조선시대 수공예품과 규방 도구에도 부엉이가 등장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는 예로부터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부엉이 울음소리가 마치 ‘부흥(復興)’으로 들려 재물을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으며, 밤에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부엉이의 천부적인 특성 역시 일조했다. “수집 과정에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동양은 물론, 서양에서도 부엉이는 밤의 전령사, 지혜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전시품 앞에서 이 이사장은 짧게 화답했다.

또 부엉이는 먹이를 물어다 둥지에 모으는 습성이 있는데 이 또한, 부를 상징하는 동물로 인지된다. 특히 ‘관(觀)’은 부엉이 환(雚)자와 볼 견(見)자를 합친 말로, ‘마음이 머무는 대상을 지혜로서 관찰하는 것에, 부엉이처럼 밝은 눈이 필요하다.’라는 철학적 의미도 부엉이를 매력적으로 다가오게 했다.

모창여수(母唱女隨)라고 해야 할까? 이숙일 이사장의 장녀 여송하 박물관휴르 관장 역시 어머니의 뒤를 이은 부엉이 컬렉터이며 같은 대학을 나와 작가의 길을 걷고 있다. 여송하는 어릴 때부터 외출한다 싶으면 스케치북부터 챙겨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다.

20대 초반부터 해외여행을 많이 다녔다는 여송하는 현지 박물관과 골동품 가게에 들러 그 나라와 민족의 특성을 파악하고 그들의 정체성이 묻어있는 것들을 수집하기를 즐겼다.

“처음부터 부엉이를 모은 것은 아닌데, 수년이 지나 모았던 것을 펼쳐보니 이상하게도 부엉이가 많았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도 부엉이가 상징하는 의미가 좋은 것이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그 뒤로 부엉이를 본격적으로 모으기 시작했다. 여 관장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가 오래된 사기그릇 모으는 것을 보다 보니, 자연스럽게 수집병(病)이 저에게로 옮겨붙은 듯합니다.”라고 말한다.



스위스 기자가 기증한 부엉이 작품


그동안 여송하가 한국, 중국, 일본,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유럽, 미국 등 20여 개국을 돌며 수집한 부엉이 관련 자료는 1,000여 점에 이른다. ‘웅덩이가 있으면 물고기가 모인다.’고 했던가. 소문이 나자, 지인들의 기증도 이어졌다. 이렇게 자료가 쌓이자, 박물관에 대한 꿈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2017년 10월에 우리나라 최초의 부엉이 전문 박물관인 ‘박물관휴르’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어머니와 남편은 부엉이 관련 자료의 수집부터 박물관 건립까지 물심양면으로 저를 도와주셨고 지금도 그 도움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숙일 이사장은 불교의 <나한도(羅漢圖)>로 잘 알려진 화가다. 서양화 기법으로 나한을 그려서 주목받아 온 이 이사장은 오랫동안 그려낸 작품 518점을 2000년대 초에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이에 더해 여행 시 그 도시에 있는 박물관을 둘러보았던 경험이 축적되면서 모녀는 박물관을 직접 운영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한 가지 주제를 밀도 있게 탐구할 수 있는 작고 편안한 공간을 만들어 많은 이들과 소통했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박물관 용도에 맞게 건물을 설계, 건축하고 현재 운영하기까지 8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처럼 박물관은 단순히 외형만 갖추는 것이 아닌, 유물을 모으는 것에서부터 알맞은 온습도를 유지하여 효율적으로 관리해야 하는 등 지리한 수고가 수반되는 일이다.

박물관휴르는 넓지 않은 공간이지만 전문 도자공예 시설과 영상실까지 완비하여 일반 대중에게 부엉이 도자기 만들기, 부엉이 세라믹 페인팅과 같은 다채로운 강좌, 강연, 상영, 공연 등의 공공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전문인력 양성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박물관 학예인력은 물론 부엉이가 사라진 현실에서 환경 전문인력 양성도 모색하고 있다.

열린 교육을 목적으로 한 초, 중, 고등학교의 체험학습 강화로 박물관과 같은 문화시설에 대한 수요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러나 개인이 운영하는 박물관이라는 한계로 인해 이를 충족시키기엔 역량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박물관휴르는 강소형 박물관을 지향하고 있다. 소장자료를 보다 가까이에서 시민과 공유하고 박물관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장시켜 나아가는 것이 그것이다.



박물관휴르 전경, 2022


개관 이후 관람객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이에 더해 적극적인 홍보로 외국인들도 찾아올 수 있는 문화의 명소로 거듭나고자 한다. 그뿐만 아니라 관람객의 재방문율을 높이는데도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관람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콘텐츠의 보강과 창의적인 방식의 전시 구성을 통해 상설 전시실을 새롭게 개편할 계획에 있다. 시민들의 문화 역량을 결집하고 소통의 주체로써 관람객과 함께 호흡하며 지속해서 시민들과 유대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힘씀과 동시에 부엉이의 환경적 가치와 인류와의 공생적 위치를 재인식케 하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고자 한다.

“소장품을 재정리하고 부족한 부분은 보강하여 미학적, 환경적 측면에서 폭넓은 연구를 수행하고자 합니다. 부엉이의 가치를 여러 측면에서 분석하여 일반 대중에게 교육, 향유, 감상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함이지요.” “스위스의 노신사가 환귀본주(還歸本主: 물건이 본래의 임자에게 돌아감) 했듯 저도 시민들에게 돌려주려고 합니다.” 조용한 음색의 여관장의 짧은 말에 의지가 실려 있었다.



- 이숙일(李淑日, 1956- ) 박물관휴르 이사장. 계명대 서양화과 졸업. 한국미술협회 회원, 한국국제미술협회 회원.
- 여송하(呂松河, 1980- ) 박물관휴르 관장. 계명대 미술사학과 박사 수료. 계명대 디자인과 외래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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