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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칼과 시계는 예술이자 기술입니다. _타임앤블레이드박물관, 이동진 관장

윤태석

파주 헤이리에는 이름만으로는 그 정체를 알기 쉽지 않은 박물관이 있다. 타임앤블레이드박물관(THE MUSEUM TIME&BLADE)이다. 시간(Time)과 날(Blade)을 소장하고 있다는 것인지 궁금증이 앞선다.



타임앤블레이드박물관 전경


‘Time’은 시간을 말하는 영어 명사다. 사전에서의 정의는‘과거로부터 현재와 미래로 이어지는 무한한 것’이라 되어있어 마치 동사 같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또한, 일반적으로 칼의 날을 ‘Blade’라 한다. 그러나 블레이드는 칼에게만 머물지 않고 각종 공구나 도구, 물을 헤쳐 배를 나아가게 하는 노, 스케이트 등에 있는 날도 이렇게 지칭하며, 엔진이나 헬리콥터 등의 날개깃과 한 가닥의 풀잎도 블레이드라 한다. 
그래서일까 박물관의 이름에서 진중한 현학적 의미와 전시품의 중의적 성격은 물론 박물관학(Museology)적 전문 활동에서도 신선함이 배어 있다. 눈치챘겠지만 이 박물관의 주요 소장품은 시계와 칼이다. 지하 1층과 지상 3층으로 되어있는 박물관에 들어서면 정면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1층 좌측부터 시작되는 상설전시장보다 이상하게 지하로 먼저 내려가야 할 것 같은 충동이 들게되는 것은 여러 차례 방문해 본 필자의 경험에서 나온 공통된 현상이었다.

지하로 내려가다 중간 꺾어지는 계단을 돌 무렵 다시 내려갈 만큼의 우측 아래를 보면 커다란 모루와 망치, 여러 개의 무쇠 집게에 쇠를 달구는 가스 가마가 자리 잡고 있다. 그 옆에는 방열(防熱)을 위한 가죽장갑과 마스크 그리고 그 주변엔 누군가가 벌겋게 달궈진 쇠를 두들겨 만들다 만 미완의 칼들이 기술자의 손길을 기다리며 널브러져 있다.

다시 좌측으로 고개를 돌려 내려온 만큼의 계단을 타고 내려가면 우측에 여닫이 출입문이 나타난다. 교육 겸 체험이 가능한, 작지 않은 규모의 강당이다. 높은 층고에 50평은 족히 되어 보이는 교육실 가장자리에는 체험할 때 필요한 집기와 비품들이 정돈되어 있다. 그 가운데 음식을 조리할 수 있는 고급스러운 도구와 싱크대도 눈에 들어오지만, 바비큐를 할 수 있는 그릴과 고풍스러운 난로도 예사롭지 않아 보인다. 강당 가운데는 정면을 향해 의자가 놓여 있는데 특이한 점은 여타의 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단상이 아니라는 점이다. 드럼과 기타, 앰프와 스피커 그리고 조명을 보니 이는 분명 강의 전용이 아닌 공연을 위한 전문 설비다. 한편, 무대에서 뒤편을 보면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뒤쪽 3분의 2지점에 크고 작은 금속 원형 안에 무언가로 장식된 작품들이 진열되어 있다. 자세히 보니 누군가의 손을 거친 조형작품임이 분명하다. 이렇듯 구석구석 설립자의 개성을 짐작게 한다.



이동진 관장(좌측, 2013, 브라질)


이 박물관은 공학도이며 음악가 겸 아마추어 조형 예술가인 이동진 관장이 설립했다. 이 관장은 고희를 훌쩍 넘겼음에도 기타와 하모니카만 있으면 어디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포크나 컨트리 장르의 팝송 몇 곡은 흥겹게 부를 줄 아는 로맨티시스트다.

이동진의 부친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에서 유학했다. 생활비는 늘 빠듯해 학교 근처 방앗간에서 아르바이트를 통해 충당했다. 돌아와서는 서소문 옛 체신부 주변의 적산가옥 한 채를 매입해 자리를 잡게 되었다. 200평이 넘는 제법 널찍한 집이었다. 지체 높은 일본인이 거주했던 이 일식가옥 1층에는 비밀스러운 공간이 하나 있었다. “그곳에 뒤주 하나가 있었는데, 그 안에는 일본도(日本刀) 두 자루와 회중시계 세점이 들어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타임앤블레이드박물관의 단초가 들어있었던 것이지요.” 이동진 관장의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6.25가 일어나고 이동진의 가족들은 칼과 시계를 비롯한 세간 살림을 남겨둔 채, 부산으로 피난을 떠나야만 했다. 서울수복과 함께 돌아왔을 때는 북한군의 군 기지로 썼던 흔적이 그을음처럼 남아 있었다. 전쟁으로 실직자가 된 아버지는 유학 시절에 일했던 방앗간이 떠올랐다. 타고난 성실함으로 주인에게 인정받아 운영방식을 꿰고 있던 터라 방앗간을 해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일본에서 방앗간을 움직였던 건 내연기관인 발동기였다. 우리나라에는 없던 시절이라 이를 들여오면 충분히 사업성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다. 우선 두 대를 들여왔다. 한 대는 방앗간에서 떡 생산에 활용했고 한 대는 어떤 이가 사겠다고 해 팔게 되었다. 아버지의 첫 무역업이었던 셈이다. 입소문을 타고 주문이 이어지자 염천교에 가게를 내고 발동기 사업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온 가족이 만든 떡은 매일 새벽, 손수레에 실려 도매로 남대문 시장에 납품했다. 떡도 발동기 사업도 순풍을 만난 듯 대성공이었다.

발동기가 만들어낸 회전동력이 떡방아 기계들을 움직이게 하면 쌀가루가 빻아지고 가래떡이 나오는 일련의 프로세스는 소년 이동진에게 신기함과 더불어 공학적 궁금증을 유발케 하기에 충분했다. 남대문 시장과 이동진의 아버지에 의해 형성되기 시작한 염천교 공구 거리에서 만난 칼은 이동진에게 묘한 매력으로 다가왔다. 전쟁 직후라 신기한 물건들도 많았지만 유독 이동진에게 칼과 시계는 더 큰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그러면서 한점 두점, 어린 이동진을 수집의 길로 유혹하고 있었다.



단조로 칼을 제작하고 있는 이동진 관장


1964년 맏누이가 미국 유학생과 결혼하게 되면서 이동진만 남겨두고 가족 모두가 미국에 이민을 떠나게 되었다. 이때 방앗간도 문을 닫게 된다. 이동진은 공대에 진학했고 졸업 후 건설회사에 입사해 해외 부서에서 일했다. 일본, 인도, 미얀마, 스리랑카 등도 이때 찾게 되었고 터키, 아랍, 실크로드, 이탈리아 등 칼이 있는 곳이라면 나서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세월이 흐르면서 서소문 집과 아버지가 남겨두고 가신 청담동 건물에 유물이 쌓여가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헤이리에 우리나라 최초의 시계와 칼 전문박물관을 열게 된 것이다. 종교와 역사, 기능과 제작 방식, 거기에 내재된 스토리와 의미를 비롯해 칼과 시계의 모든 것을 틈틈이 연구하게 되었고 아버지와 형제들도 미국에서 좋은 자료를 찾아 보내 주곤 했다.

세계에서 가장 규모가 큰 바젤시계주얼리박람회(Basel world)도 매년 가게 되고 기독교와 유대교, 이슬람교 문화가 공존하는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Toledo), 일본과 미국의 여러 박물관도 방문했으며, 시리아의 수도를 딴 세계 최고의 칼 다마스쿠스 공장도 찾게 되었다.

“칼과 시계는 정직하고 정확하며 모든 권력은 칼에서 나왔습니다. 따라서 칼과 시계를 잘 만드는 나라는 부강했습니다. 시계는 인류만이 갖는 신뢰의 상징입니다. 칼과 시계는 기초이자 소재 산업이기에 이를 통해 우리는 과학 강국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꼭 가르쳐야 할 이유이지요. 또한, 칼과 시계는 예술이자 기술입니다.” 이동진의 인터뷰는 칼처럼 단호했다. 이 모든 것으로 만들어낸 박물관이 타임앤블레이드다.



- 이동진(李東震, 1946- )
서울 출생. 한양공대 졸업. 벨기에브뤼셀장난감박물관 안드레 램돈마크 관장과 조형작품 2인전(한국, 스페인, 인도), 메탈아트전 출품(코엑스, 2013년). 세라믹 제조업체 Heatec 30년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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