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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권옥연, 멋과 풍류 등 예술폭이 넓은 화가

김정

  
김정, 권옥연 드로잉


권옥연(1923-2011) 선생은 함경도 함흥태생이지만, 일본강점기 때 서울로 옮겨와 경복중고교를 다녔다. 그 인연으로 장욱진, 이대원, 유영국 선생 등의 미술반 시절 막내둥이 후배로 성장했다. 그 당시 미술교사는 사토 구니오(佐藤九二男)선생이었다. 사토 선생은 이종우(1899-1981)원로화가와 일본 미술학교 동기로 미술반 학생들의 장래인생을 애써준 장본인이다. 

장욱진,유영국, 이대원, 임완규, 김창억, 권옥연의 인생을 바꿔놓아 주신분이다. 장 선생의 그림버릇을 고쳐 줬고, 이대원 선생이 부친의 미술 반대로 미대에 못 가고 법대에 간 것을 끈질기게 개인 과외지도로 이끌어 주는 등 일화가 많았다.권옥연 선생은 신입생의 어린 나이로 장욱진 선생이나 이대원선생 밑의 말석에서 데생 연습하곤 했다고 한다. 제2고보(경복고) 졸업후 1942년 사토 선생의 안내로 일본제국학교 미술과를 나와 귀국 후 바로 모교인 경복고 교사로 근무하게 됐다. 

그러다 35세에 1957년 프랑스로 연구차 도불, 3년 뒤 돌아왔는데, 그때 그림이 좀 변화됐다. 프랑스 귀국 후부터 권옥연 선생의 화풍이 많이 달라진 것이 오늘날 권 선생 그림 골격이 된 게 아닌가 본다. 많은 세월이 흐른 뒤에도 권 선생에게 늘 묻고 싶었다. 그건 프랑스 귀국 당시의 권 선생 본인 화풍 변화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였다.

그걸 물어볼 기회가 삼세번 있었으나 물어볼 분위기가 안 됐다. 첫 번째는 1987년 미협선거준비 때 모 씨 선거사무소에서 잠시 인사하고 스치는 정도였고, 두 번째는 1992년 11월 S 교대 P교수가 주최한 한일미술교수 학술토론회가 서초동 교대에서 있었다. 

후쿠오카와 삿포로 교수 2명이 참여했다. 그 토론회가 끝나고 저녁 식사 후 노래방에 가게 됐는데 그 자리에 권옥연 선생도 있었다. 그건 P 교수가 함흥 출신으로 고향 선배인 권 선생을 초빙한 것이다. 권 선생은 일본어도 잘하셨고, 약간의 취기가 오르자 마이크를 잡으시곤 노래 한 곡조를 하셨다. 바로 <베사메무쵸>(Besame Mucho. 60년대 국제적 히트한 코스타스의 노래)였고, 가수처럼 표정이나 몸짓도 유연하셨다. 어딘지 연예인 같은맛이 풍기는 권 선생의 특이한 몸짓이 낯설지가 않았다. 움직이는 몸 스타일도 자연스레 리듬감이 흐른다. 나는 말 한마디 건네지도못한 채 헤어졌었다.

그 후 1년 뒤 또 권 선생 노래하는 자리가 있었다. 1994년 11월10일 이중섭미술상 수상기념전시를 끝낸 이만익 선생이 시청 뒷길-무교동 지하에서 뒤풀이를 했다.이 자리엔 권옥연 선생 김흥수 선생 등 십여 명이 동석했다. 나는 빠지려 했으나 이만익 선생의 권유로 참석했지만, 구석에 있었다. 

여기서 또 권 선생은 마이크를 잡고<애수의 소야곡>을 뽑으신다. ‘운다~고~옛사랑~이~오리요마는~~’ (박시춘 곡 남인수노래)을 열연하시는데 자꾸 가사가 끊어졌다. 분위기는 멋진데 도중에 끊기니까 본인도 멋쩍으신 듯 그만 도중하차했다. 역시 연령 때문에 가사를 까먹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나중에 다시 도전하신 듯 마이크를 잡았다. 박수가 쏟아졌다. 곧이어 다시 한 곡조가 흐른다. ‘울려고~내가 왔던가 웃으려고 왔~던가~~’로 시작되는 <선창>(고운봉 노래)으로 장식하셨다. 노래도 노래지만, 폼이 거의 탤런트 수준을 뺨칠 정도였다.이게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님을 본다.

나는 완전히 권 선생 매력에 빠져버렸다. 가사는 문제가 아니다. 노래를 사랑하시는 멋과 인격이다. 나 역시 힘든 역경 세월을 노래를 통해 극복해온 처지라 남다른 감정에 빠졌던 것이다. 그 후 가끔 소식은 듣지만 만나 뵙는 일 없어 끝이 돼버렸다.1992년도 연극인 박정자 여사가 내게 부탁한 독일서 열릴 유럽 연극 예술행사 <햄릿> 포스터에 <김정 아리랑> 풍으로 그려달라는 부탁으로 그려준 적 있었다. 포스터 그림을 통해 연극인 L 씨,K 씨, L 씨 등과 소통했고, 포스터 그림 이후 박 여사 연기를 보러 연극공연 감상을 자주 했다. 그 후 현대극장 대표 운영하던 김의경 선생의 부탁으로 <피터팬> 연극 포스터 그림도 그렸다. 

그러다 보니 권옥연 선생의 사모님인 이병복 여사가 연극계의 큰별이란 사실과 연극계 원로로 활동하는 현역이란 것도 뒤늦게 알게됐다. 결국 미술과 연극의 예술 속에서 평생을 살아오신 권옥연 선생의 무대예술 감각은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되었다. 권 선생의 네 번째의 노래는 과연 어떤 것일까 하고 듣고 싶었으나 결국 영영 듣지 못한 채 아쉬운 세월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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